우드로 윌슨. 미국 제28대 대통령(1913~1921)으로 우리에게도 매우 낯익은 인물이다. 그는 윌슨주의 또는 윌슨 이상주의 (Wilsonian Idealism)라는 미국 외교정책의 사상적 기조를 만든 인사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고립주의와 불개입주의로 일관하던 소극적 대외정책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확산을 위해 미국이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펴야 한다는 그의 가치 외교는 아직까지도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뿐 아니다. 윌슨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 평화의 청사진을 14개 원칙에 담아 제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유럽의 질서는 1815년 빈 회의 이후 자리 잡아온 세력균형 논리에 의해 움직여왔다. 윌슨 대통령은 여기에 반기를 들며 도덕주의, 국제법 그리고 국제기구에 근거한 세계 질서를 주창하면서 그 대안으로 국제연맹 창설을 제안했다. 그 덕에 그는 191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윌슨의 민족자결 원칙은 한국의 3·1 운동과 중국의 5·4 운동 등 당시 식민지 지배하에 있는 약소국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표방하는 진보주의 정치 지도자의 표상인 우드로 윌슨. 그런 그가 요즘 때 아닌 구설에 오르고 있다. 윌슨 자신이 총장으로 봉직했던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서 ‘반(反)윌슨’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종차별주의자 윌슨 대통령의 유산을 더 이상 프린스턴 대학에 남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이름을 딴 ‘우드로 윌슨 국제 및 공공정책대학원’과 학부생 기숙사인 윌슨 칼리지(Wilson College)에서 ‘윌슨’이라는 이름을 지우라고 대학 당국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단초는 미국 리치먼드 대학의 에릭 엘린 교수가 쓴 〈미국 공직 사회의 인종주의〉라는 저서가 제공했다. 이 책에 따르면 1913년 우드로 윌슨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미국 행정부는 연방정부 흑인 관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갔다.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의 인권이 개선되면서 많은 수의 흑인이 공무원 시험을 통해 연방정부 관리로 채용되었고 이 중 상당수는 중견 관리직까지 올라갔는데, 윌슨의 차별주의 정책 때문에 일시에 해고가 되거나 좌천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저서가 출간된 이후 윌슨의 인종차별주의 조치 때문에 희생된 인사들의 후손들이 들고나왔다. 그중에서도 고돈 데이비스라는 흑인 변호사는 〈뉴욕 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자신의 조부가 어떻게 희생되었는가를 상세하게 증언한다. 미국 연방정부 인쇄국에서 중견 간부로 일하면서 연봉 1400달러를 받던 자신의 조부가 윌슨 대통령의 ‘흑인 숙청’ 조치 때문에 연봉 720달러의 사환으로 전락하고 급기야는 파산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윌슨은 단순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백인우월주의를 정부 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수십 년간 진전을 이룬 인종정책을 역행시킨 장본인이었다.”

물론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윌슨이 남부 버지니아 출신인 데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인종차별주의가 하나의 시류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두고 윌슨의 다른 업적을 도매금으로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21세기의 잣대로 당시 행태를 재단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사려 깊지 못하다’는 반대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 사설과 학생들의 시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그러나 〈뉴욕 타임스〉 11월24일자 사설은 프린스턴 대학 당국과 이사회 측에 학생들 요구를 수용하라고 권고하며 학생 편을 들어주었다. 이 사설은 윌슨이 시류를 소극적으로 수용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도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윌슨이 ‘흑인은 온전한 시민이 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졌을 뿐 아니라 당시 남부 흑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백인우월주의자 비밀단체 KKK(Ku Klux Klan)를 찬양했던 인사였기’ 때문에 더 그렇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고 느낀 것은 어느 누구도 역사의 검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윌슨 대통령이 누리는 세계적 명성으로 보아 그런 과오를 얼마든지 용인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사료에 비추어 그를 냉혹하리만큼 엄격히 다루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윌슨의 공적을 인정하지만 과에 대해서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는 태도. 우드로 윌슨의 두 얼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자는 미국인들의 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역사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 역사의 진실은 항상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난다. 이번 윌슨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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