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미얀마 군부가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 진압하면서 이를 방관한 중국에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미얀마 군부 독재 정권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해결사가 중국이라는 시각이 많다.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은 10월11일자 기사에서 중국과 미얀마 간의 오랜 관계를 분석했다. 협약에 따라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미얀마 군사정부의 강제 진압 이후 중국 정부는 미얀마 문제에 이미 개입했다. 〈아주주간〉의 정보에 따르면 유엔 특사 이브라힘 감바리가 성공적으로 미얀마를 방문하고 탄 쉐 장군과 면담에 성공한 것도 사실은 바로 중국 정부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 동남아 외교관이 〈아주주간〉에 전한 말을 살펴보자. 그는 중국 정부가 미얀마 군부에 사태 해결을 위해 은근히 충고를 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감바리 특사가 미얀마 입국 비자를 무난히 얻을 수 있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미국과 ASEAN이 미얀마 정부의 시위 초강경 진압을 비난했기 때문에, 마침 북한 핵 관련 6자회담으로 정신이 없었던 중국 외교부는 무척 당황했다’고 전했다. 이런 반응은 중국이 미얀마 문제에 대응할 장기적 전략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이징이 미얀마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장 급한 불을 끄는 이른바 ‘불끄기 외교’가 될 수밖에 없다.”

시위 군중과 승려들에 대한 유혈 진압은 미얀마의 가장 확실한 정치적 맹방이자 경제 동반자인 중국에게도 이처럼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이뿐만 아니다. 중국을 국제사회의 화풀이 대상으로도 만들었다.
세계적 슈퍼 파워 국가로서 명예와 성가를 지키고 1년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중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이른바 불량 국가들에 대해서도 적극 개입 정책을 실시할 듯하다. 과거 중국은 수단 다르푸르 관련 정책으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적지 않게 비난을 받아왔다. 북한과 미얀마 군정과도 긴밀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미지에 나름의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 외교는 드디어 이성적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자회담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르푸르 사태에도 적극 해결 태도를 보였다. 여기에 미얀마 문제에서도 조정자 구실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6월 중국 정부가 막후 공작을 통해 미국 국무부 대표와 미얀마 고위 관계자 간의 회담을 주선한 것이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Reuters=Newsis미얀마 군부는 중국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웠다. 위는 시위 유혈 진압 이후 발견된 승려 시신. 폭행당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반적으로 중국과 미얀마는 형제 관계로 불린다. 이런 친분은 1950년 6월8일의 정식 수교이래 계속됐다. 양국 지도자들은 상호 방문의 오랜 전통을 이어왔다.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9차례나 미얀마를 공식 방문했고 미얀마 국부로 불리는 네윈은 무려 12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더구나 미얀마는 석유와 천연가스 따위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국가이다. 향후 선진 공업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에게는 이런 조건이 군침을 돌게 만들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중국이 미얀마 군사정부에 국경 지역 게릴라 반군을 소탕하기 위한 무기를 제공하고 각종 군사훈련을 도와주지 않았나 싶다. 중국은 그동안 전통적인 내정 불간섭 원칙에 따라 미얀마의 민주화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왔다.

미얀마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등에 큰 투자

방콕에 망명 중인 미얀마 학자 산 아웅 박사는 양국의 관계와 관련해 최근 〈아주주간〉에 비밀 하나를 귀띔해주었다. 때는 중국 남부 지방에 대홍수가 발생한 지난 1996년이었다. 당시 무려 200만명에 이르는 중국 노동자·농민이 홍수를 피하기 위해 중국과 미얀마 간 국경 지대와 만다레이 등지로 피난을 떠났다. 이후 피난민은 미얀마 현지에 정착하고 새로운 차이나타운을 건설했다. 이에 놀란 미얀마 당국은 중국 정부에 난민 귀환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 건의를 묵살했다.
산 아웅 박사는 이에 대해 충격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 정부는 고향을 떠난 난민이 이미 미얀마 소수민족 반군과 결탁해 있으므로, 이들이 돌아오면 마약 밀매·도박장 개설·불법 도벌 등의 사업에 나설 것을 우려해 송환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얀마 화교들이 자국의 사회 안전에 위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는 얘기다.

이 사실에서 보듯 산 아웅 박사는 중국과 미얀마의 관계가 실제로 서방세계에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밀접하지 않다는 주장을 편다.  언젠가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아직은 서로 이용가치가 있는 듯하다. 중국은 윈난(雲南)성에서 동남아로 통하는 길을 열기 위해 중국 텅충(騰衝)과 미얀마 미치나를 잇는 도로를 올해 4월 개통시켰다. 이 중 미얀마 쪽 도로 길이가 96km에 이른다. 중국은 이를 위해 8억 위안(약 960억원)의 거금을 미얀마에 원조했다. 현재 이 도로는 미얀마의 도로 가운데 가장 긴 노선이자 시설이 가장 좋다는 평을 듣는다.
미얀마의 지리적 이점은 중국이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 도구이며, 중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할 만한 전략 항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은 미얀마에서 석유·천연가스·보석·목재 채굴 개발 사업을 놓고 인도와 치열한 경쟁 중이다.경쟁 와중에 양국은 무기 판매와 군사훈련이라는 미끼를 주며 미얀마 군사정부를 유혹하고 있다.

곧 현실로 나타날 프로젝트도 있다. 예컨대 중국은 이미 미얀마 서부 루오카이에서 중국 윈난성에 이르는 2380km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을 확정해 미얀마 정부와 공동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이 경우 중국은 중동·아프리카·베네수엘라에서부터 수입하는 에너지를 수송하는 루트를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내심 이를 강렬히 열망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15억 달러를 투자해 벵골 만 다카카 섬에 85m 규모 방파제도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사실상 중국 당국의 동남아 군사기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섬 위에서는 군함의 임시 정박 부두가 있고, 인도와 미국 군함들의 움직임을 위성 감시하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중국은 안다만 해의 알렉산더 해협에 유사한 정찰 관측소 설립도 준비 중이다.

최근 10년 동안 중국 정부는 미얀마에 10억 내지 20억 달러 규모의 군사 장비를 제공해왔다. 이를 통해 미얀마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무기체계인 각종 함정, 전투기, 레이더와 지대지·지대공 미사일 등을 대량으로 보유하게 됐다. 또 군 병력 역시 처음 군사정부가 들어섰을 때 18만명에서 지금은 50만명으로 늘어났다. 동남아에서는 베트남에 필적할 만한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다.

내 속에 네가, 네 안에 내가 있는 관계

익명을 요구하는 베이징의 한 관리는 중국에서 미얀마의 중요성은 경제(천연가스와 자원) 분야라기보다 지리적 전략 차원에서 더 절실하다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양국은 이웃 국가로 무려 2100km의 육로 국경선을 공유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이웃 국가의 존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또 미얀마는 말라카 해협에서 창궐하는 해적을 소탕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 경우 중국의 송유관은 바로 인도양으로 통하는 것이 가능하다.

중국과 미얀마의 끈끈한 인연에는 이른바 ‘혁명 수출’이라는 것도 있다. 중국의 지식 청년들이 문화대혁명 당시 대거 미얀마로 넘어가 미얀마 공산군의 핵심 세력이 됐다. 이들은 이후 미얀마에서 가장 용맹하고 군기가 강한 군대가 됐고 한때는 마약의 집산지인 황금  삼각지대의 패권을 쥐기도 했다.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양국의 인연은 간단치 않다. 이때는 역으로 미얀마 지식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와 혁명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미얀마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승려들이었고, 그들은 쑨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대표인물이 우오도파였다. 미얀마의 독립 영웅인 오우도파는 1909년에 쑨원의 부름을 받고 당시의 조선을 거쳐 중국 동북 지방에까지 발을 디디기도 했다. 이후 그는 베이징을 거쳐 상하이와 샤먼(厦門)으로 이동, 각지에서 중국 혁명에 참가했다. 미얀마와 중국 엘리트 사이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앞서 언급한 베이징 관리는 “중국과 미얀마의 관계는 ‘내 속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라고 말했다. “일반 국가들은 잘 이해하기 어렵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번역=홍순도 통신원

기자명 홍콩 아주주간=류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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