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는다. 녀석들은 교문 앞에서 동무를 기다리다가 만나면 팔짝팔짝 뛴다. 친한 동무, 신기한 꽃이나 나뭇잎, 유리나 사금파리류의 반짝이는 ‘쓰레기’들은 예나 지금이나 관심 대상 1호다. 개구쟁이 아이들 몇몇은 5분이면 족한 등굣길을 30분 넘게 걸리기 일쑤다. 운동장의 모래, 곤충이나 벌레들, 주변 공사 현장 등 온갖 사소한 변화와 움직임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런 ‘호기심 천국’의 아이들은 대개가 밝고 건강하게 성장한다.

아이들 생각의 힘은 대부분 발끝이나 손끝에서 나온다. 등굣길은 그 자체가 사유와 놀이와 자립의 시간이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고 이런 것들이 모여 유년기 삶의 ‘히스토리’를 구성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아이들은 어깨와 표정도 딱 그만큼 무겁다. 눈을 마주치면 마지못해 딱딱한 인사를 건넨 후 땅만 보며 걷다가 교실로 직행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예외 없이 주변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움직임 하나에 아이가 지닌 모든 상황과 특성이 거의 다 담겨 있는 셈이다.

제일 안타까운 일은 자가용 등교다. 학교 앞 도로가 자가용 등교 차량으로 엉키기 일쑤다. 날이 궂은 날은 위험한 상황이 많다고 자제를 부탁해도 교문 앞까지 정성껏 ‘모셔주고’ 싶은 지극한 사랑을 막지 못한다. 경험의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잘못된 양육 문화의 한 단면이다.

ⓒ박해성 그림

대학생 자녀의 학점을 교수에게 따지고, 취업한 자녀의 직장 상사에게 청탁을 넣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이런 데서 싹튼다. 교사를 자녀로 둔 부모가 교실 청소와 환경정리를 대신 해주고, 교장·교감에게 학년과 담임 배정 문제를 청탁하거나 항의하는 이상한 상황도 벌어진다. 대졸자의 51%가 캥거루족이라는 통계 또한 청년실업의 어려운 현실 못지않게 이러한 양육 태도와도 관련이 깊다.

더욱이 ‘한번 삐끗’하면 헤어나기 어려운 불안한 사회에 대한 위기의식은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가족 관계를 애정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미성숙한 어른아이를 다룬 영화 〈영 어덜트〉(2011)의 주인공처럼,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놓치고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결여된 고장 난 감정체계를 가진 성인이 자꾸 늘어난다.

〈부모의 자존감〉(양철북)의 저자 댄 뉴하스는, 건강한 양육이란 ‘아이를 잘 보살펴 키우고, 그런 다음 자유롭게 놔주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물론 그 반대는 ‘아이를 잘 돌보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려는 아이의 노력을 묵살해버리는 것’이다.

제대로 ‘못 놀아봐서’ 생기는 일들

과도한 간섭과 통제는 공부의 즐거움도 앗아간다. 유년 시절의 모든 공부는 반짝이는 호기심과 풍부한 감성이 기본이다. 자신의 경험 세계를 기반으로 직관 혹은 직감적으로 느낌을 얻는 일이며, 그렇게 깨달은 분별을 개념화하는 것이 그들의 공부법이다.

아이들이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는 과정을 가만히 보면, 논리적 사고 과정이나 반복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그냥 오감을 통한 느낌으로 ‘탁’ 알거나 ‘아!’ 하고 느껴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느낌을 지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의 공부는 지루하지 않다. 타자 또는 대상과의 감정적 교류 경험으로 터득한 생생한 감성의 힘이 센 아이일수록 자발성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주도성이란 결국 결핍과 욕구를 스스로 느끼고 이를 채우고자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과 감각 속에서 느끼지 못하고, 끝내 추상적인 용어만 억지로 외우는 공부는 깊이도 재미도 확보하기 어렵다. 감각적 느낌이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는 두렵거나 지겹거나 둘 중의 하나다. 감성의 힘이 약한 아이들은 궁금함이나 신기함·놀람·호기심 등을 스스로 생산하지도 못한다. 새로울 것도 놀랄 것도 없다. 제대로 ‘못 놀아봐서’ 그런다.

방학이 싫다는 아이들이 꽤 많다. 학원 순례 때문이다. 컴퓨터와 문제지와 과잉보호자들이 넘치는 ‘건물’에서 ‘밖의 세상’으로 아이들을 좀 내몰았으면 좋겠다. 마음껏 뛰고 노는 아이들이 동네마다 넘쳐난다면, 장담컨대 대한민국의 미래는 한층 더 밝다.

기자명 안순억 (성남 운중초등학교 교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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