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교육 없는 세상이 아니라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김준희씨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이 같은 설명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사교육 업체에서 10년 넘게 CEO를 지낸 그가 사교육 탈출 경험담을 전하는 첫 번째 강사로 강단에 선 이유다. 사교육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그는 왜 자녀 넷을 사교육 없이 키웠을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기획한 ‘길을 찾다 길이 된 사람들’ 강좌를 5회에 걸쳐 지상 중계한다(강좌 수강 문의는 noworry.kr).

능률교육과 웅진씽크빅 대표를 할 때 몇 번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가 있었다. 계속 사양했는데, 회사를 그만둔 뒤로도 다시 요청해와 인터뷰가 성사됐다. 제목이 “학원 안 보내고 ‘자식 넷’ 수재로 키운 아빠”인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아이들이 어릴 적 시골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학원 안 보내고 과외 안 시킨 건 맞는데, 그중 몇 놈은 수학 공부가 부족하다며 고2에서 고3 올라갈 때 단과학원을 한두 달가량 다녔다. 아이들이 수재인 것도 아니다. 다만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스스로 책임지게 했더니 알아서 다 잘 해나갔을 뿐이다.

올해 2월 시집간 둘째가 언젠가 아내에게 물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여섯 살짜리 손자를 왜 친구 대하듯 해? 걔가 뭘 안다고?” 그랬더니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쟤도 어른들 하는 걸 옆에서 보고 배우기에 작은 머릿속에 나름의 생각이 있고 자기주장이 있어. 그게 얼마나 기특한데. 너희도 다 그렇게 키웠어.”

실제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그렇게 키웠다. 첫째가 유치원을 겨우 한 학기 다니고 더는 안 다니겠다고 고집을 피울 때 우리는 이틀 동안 아이를 설득한 뒤 그럼 네 뜻대로 하라고 했다. 아이들이 “피아노 치기 싫어” 할 때도 한두 번 물어본 뒤 바로 학원을 끊어버렸다. 애 넷 키우려면 돈도 많이 들지 않나(웃음). 밥도 안 먹겠다면 그냥 놔둔다. 걔가 평생 굶겠다는 게 아니니까. 이런 식으로 하니까 우리 집 아이들은 말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시사IN 신선영김준희 전 능률교육·웅진씽크빅 대표는 사교육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거의 사교육 없이 자녀 넷을 키웠다. 대신 부부가 아이를 대할 때 ‘자기 말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한다’ 등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자기 말에 대해 책임을 지게끔 했더니 장단점이 다 있더라. 단점이라면 고집이 지독하게 세진다는 것이다. 대신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해서는 부모를 원망하는 법이 없다. 둘째도 편지에서 “제가 내린 결정이라 결과가 조금 나빠도 남 탓할 일이 없어서 덜 억울하고 제 결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런 삶의 방식과 행복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썼더라. 대학도, 진로도 우리는 아이들이 결정한 것을 그냥 통보받기만 하는 식이다.

아내는 동창회에 갈 때마다 “넌 한 것도 없는데 아이들이 그렇게 대학에 척척 붙느냐?” 하는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내게 하소연했다. “왜 한 일이 없다고들 하지? 나도 간섭하고 싶은 것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걔들이 알기나 할까?” 하면서. 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키우는 것만큼이나 “네가 알아서 해” 하고 지켜보는 것도 속이 타는 일이다. 남들 보기엔 아무 일도 안 한 것 같지만 실은 참느라 격렬하게 애쓴 것이다.

두 번째로는 책을 많이 읽혔다. 첫 직장에서 10년 가까이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일하면서 남들한테 한 말이 있다. “책을 잘 읽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라고. 겁 없이 그런 말을 내뱉긴 했지만 내가 한 말은 지키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 용돈도 줬다. 읽는 척만 하면 어떡하느냐고? 다행히도 아이가 넷이면 담합이 절대 안 된다. 누군가 책을 설렁설렁 읽을 양이면 다른 녀석이 “쟤 좀 보래요” 하면서 곧바로 견제에 나선다(웃음).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센델 교수가 “좋은 일을 할 때 돈으로 보상을 하면 의미가 없어진다”라고 지적했던데, 아이들이 책 읽었다고 평생 돈을 주기야 하겠나? 책 읽는 습관이 들 때까지만 하면 된다. 웬만큼 속도가 붙으면 아이들이 알아서 책을 읽는다. 책 종류도 굳이 가리지 않는다. 큰애는 하이틴로맨스 소설을 굉장히 많이 읽었다. 아이들 말로는, 고등학교쯤 가니 책 읽은 효과가 나타나더란다. 선생님이 이런저런 설명을 할 때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접한 내용들이 연결이 되면서 절로 이해가 되더라는 것이다.

성적이 목적이 됐을 때 생기는 부작용

세 번째로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가르쳤다. 아이들이 원하는 걸 그냥 해준 법이 없다. 찢어진 청바지처럼 부모 마음엔 안 들지만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일 경우 부모 부담분이 50%, 아이 부담분이 50%라는 식이었다. 자전거처럼 아이 몸에 좋은 것일지라도 부모가 80%를 부담하면 아이는 20%를 부담하게 했다. “새 자전거를 사면 아빠가 16만원을 낼 테니 넌 4만원을 내면 돼. 중고 자전거를 사면 아빠가 4만원, 네가 1만원을 내면 되고. 어떻게 할래?” 물으면 아이들이 대부분 후자를 택하더라. 이런 방식을 택한 건 나름의 철학 때문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대가나 희생을 치르지 않고 뭔가를 얻어내려 하는 것이 어려움의 원천인 것 같았다. 청문회 때 보면 편법을 써서 남들보다 앞서간 것을 자랑하던 분들이 결국엔 망신을 당하지 않나.

다음으로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다. 특히나 초등학교 때는 지식을 배우기보다 지식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면 미쳤다고들 생각하는데, 공부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아하’ 하고 깨우치는 순간이 있다면 말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동네 형들이 구구단을 외우는 걸 보고 멋도 모르고 흥얼흥얼 따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친척 형이 ‘2+2+2+2+2+2+2+2’가 얼마냐고 했다. 당시 덧셈밖에 모르던 나는 절절맸다. 그랬더니 형이 “너 구구단 외웠지? 2 곱하기 8은 뭐야?”라고 물었다. 내가 “16”이라 답했더니, 형이 말했다. “그게 바로 2를 여덟 번 더했다는 뜻이야” 그 순간 도가 트였달까. ‘아, 이게 이거로구나’ 싶으면서 모든 공식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의미를 깨닫는 기쁨을 느끼는 순간 공부는 절대 지겹지 않다.

노력하면 나아진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수학 문제를 틀려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들은 틀린 이유를 설명해주려 애쓴다. 여기서 끝나면 좋은데 꼭 응용문제까지 내려 든다. 아이가 문제를 틀렸다는 건 뭔가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아직 익히지 못했고, 따라서 이를 익혀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기다려줘야 하는데 부모들은 아이가 틀리는 과정을 못 참고 고통스러워한다. 우리 애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 싶어서 두려운 것이다.

ⓒ시사IN 자료부모가 아이에게 어느 수준으로 개입할지는 부모와 아이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중요한 건 일관성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다. 〈광야의 샘〉이라는 책을 보면 누에가 고치에서 빠져나오려 애를 쓰는 게 안타까워 끄트머리를 잘라줬더니 누에가 몸통은 쉽게 빠져나왔는데 날지를 못하더라는 얘기가 나온다. 고치에서 빠져나오려고 용틀임하는 과정에서 날개가 튼튼해지는데 그 과정을 생략해버리면서 오히려 날지를 못하게 된 것이다. 아이가 문제를 틀리는 건 좁은 데서 빠져나오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깨달음의 기쁨 또한 커진다. 헬렌 켈러 또한 설리번 선생을 만나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차가운 펌프 물을 ‘워터’라 쓴다는 실체와 상징의 관계를 깨달았고, 그 뒤 일반인보다 훨씬 빠르게 학습 속도를 높여가지 않았나.

이렇게 고생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학습을 소화시킨다. 이것이 나중에 공부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그런데 아이에게 영양을 빨리 섭취하게 하려고 죽만 먹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필요한 영양분은 섭취했으되 소화력이 없어지게 된다. 현행 사교육의 문제가 이것이다. 나는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제적이지 않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한다면 말릴 이유가 없다. 문제는 사교육을 통해 부모들이 아이에게 쉽게 정답을 가르쳐주고 싶은 욕심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정답을 알려주는 게 뭐가 어렵겠나? 그러나 아이들이 입만 벌리면 죽을 딱딱 넣어주는 식의 사교육에 의존하다가는 장기적으로 지식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기게 된다.

선행학습도 마찬가지다. 선행학습에서 모르는 내용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틀릴 때마다 엄마가 “학원비가 아깝다”며 화를 내니 아이는 주눅이 든다. 나는 묻고 싶다. 성적이 결과인지, 목적인지. 초등학교 6년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려면 석 달만 공부하면 된다. 그러니 성적에 연연해하지 말고, 실수에 관대해지셨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는 무책임한 부모일까?

요즘 ‘타이거 맘’ 또는 ‘스칸디 맘’ 얘기들을 많이 한다. 시간표를 엄격하게 정해놓고 아이들을 호랑이처럼 키우는 게 타이거 맘이라면,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쓴 가수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씨처럼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지켜보고 도와주는 것이 스칸디 맘인 모양이다. 양자가 정반대인데도 시중에는 각자의 성공신화가 떠돌고 있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이냐? 결론적으로 나는 그 어느 쪽 부모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제가 있다. 부모와 자녀 성격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래 호랑이 같은 성격의 엄마가 스칸디 맘 흉내를 내려다가는 제 성질에 말라 죽는다. 모진 말 한마디 못하는 부드러운 엄마한테 타이거 맘을 강요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아이 기질도 중요하다. 순응적인 아이가 있는가 하면 똥고집인 아이들도 있다. 죽어도 제 고집만 피우는 아이들은 제 스스로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하게 해주는 편이 좋다.

결국 아이에게 어느 수준으로 개입할지는 부모와 아이 성격에 따라 다르다. 굳이 타이거 맘, 스칸디 맘을 구분할 일도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 아니라 일관성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주일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봐”라며 스칸디 맘처럼 굴다, 그다음 일주일은 “불쌍해서 봐줬더니 안 되겠네” 하면서 다시 타이거 맘으로 돌아서면 아이만 헷갈릴 뿐이다. 어느 쪽이 되든 적정한 룰을 정하고 일관성을 지켜나가는 게 양육 태도로서는 가장 좋다고 본다. 타이거 맘, 스칸디 맘 따위 정보는 대부분은 학자가 아니라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올린다는 것도 기억하자.

자녀를 키우면서 문제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욕심과 두려움 사이의 갈등인 것 같다. 욕심은 보통 선행학습으로 연결된다. 그런가 하면 별 욕심 없이 아이를 인간답게 키우고 싶던 부모들도 주변 간섭과 타박을 받다 보면 불안에 흔들리게 된다. 이 문제를 푸는 데 무슨 왕도가 있겠나. 그럼에도 각자 선 자리에서 ‘내가 혹시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이 방향이 분명히 맞는데, 내가 혹시 두려움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뒤 ‘이 정도면 할 수 있어’라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꾸준히 걸어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20여 년간 기업 CEO를 하면서 신입사원 최종 면접을 본 대학 졸업생만 1000여 명은 될 것 같다. 이 친구들을 뽑을 때 뭘 보고 뽑을까. 취업의 최종 관문을 지켰던 사람으로서 경험칙을 말씀드리자면, 기업이 원하는 것은 대학 때 전공 지식을 달달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향후 새롭게 해결해보고자 하는 분야에서 적응력을 발휘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배운 사람’이 아닌 ‘배우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지구를 차지하게 된다”라고 에릭 호퍼는 말했다. 세월이 지나면 기존 지식은 쓸모가 없어진다. 모든 공부의 궁극적 목적은 모르는 것에 부딪혔을 때 그것에 대해 깨우치고 배우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취업 관문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보는 것이 인성이다. 인성의 핵심 내용은 존중·책임감·공정·배려·시민의식·신뢰성 등이다. 기업은 책임질 줄 아는 사람,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을 뽑기 원한다. “친구가 노트 빌려달라면 빌려주지 마”라고 아이에게 가르치는 부모는 결국 자기 아이의 앞날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내 육아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냥 나는 이렇게 아이들을 키웠고, 아이들이 다행스럽게 잘 커주었을 뿐이다. 다만 ‘저렇게 아이를 키워도 망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정도로 오늘 강의를 들어주시면 고맙겠다.

기자명 김준희 (전 능률교육·웅진씽크빅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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