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놀까

‘괜찮은 어른’으로 살고 있나요

‘대체 불가능한 배우’로 성장하다

 

 

영국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빅벤, 엘리자베스 여왕, 비틀스, 셜록 홈스, 프리미어리그 그리고 해리포터까지. 이 모든 아이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전통’이다. 〈007 스카이폴〉이 대놓고 ‘올드 브리티시’를 내세울 만큼 영국의 ‘과거’는 여전히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먹힌다. 영국을 먹여 살린다는 관광산업도 사실 이 ‘전통’의 정서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해외에서 호응을 얻는 문화 콘텐츠에는 대부분 이 ‘영국적인 것’이 가미되어 있다.

그런데 영국 E4 채널이 2007년부터 7년간 방송한 드라마 〈스킨스〉는 이 문법을 철저히 무시한다. 영국 서부 브리스톨을 무대로, 10대 청소년의 방황과 좌충우돌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젠틀하고 질서정연한’ 영국은 찾기 어렵다. 자사고 입시 경쟁을 〈발칙하게 고고〉처럼 하이틴 로맨스로 포장하는 한국 방송국 시각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기행’이 〈스킨스〉에는 넘쳐난다.

〈스킨스〉는 일단 눈이 즐겁다. 검은 레인코트와 우산을 든 신사의 모습 대신 형광빛 아이템과 스냅백, 턱밑까지 잠가 올린 피케셔츠와 후줄근한 티셔츠로 영국 10~20대의 모습을 그려낸다. 〈킹스맨〉에서 콜린 퍼스가 두들겨 패던 동네 깡패들과 주인공 에그시가 입었던 옷을 상상하면 딱 맞다. 영국 방송국 특유의 화려한 색감까지 더해지면서 시각적인 쾌감이 끝없이 이어진다. 〈스킨스〉뿐만이 아니다. 현재 시즌2까지 제작된 〈유토피아〉나 공영방송 BBC가 만든 〈셜록〉 시리즈만 보더라도, 영국 미디어가 얼마나 ‘색’에 민감한지 알 수 있다. 수많은 미드(미국 드라마) 덕후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영드(영국 드라마) 덕후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 바로 이 영상미다.

드라마 <스킨스>는 지금의 영국을 이해하기 위한 단 하나의 드라마로 꼽을 만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젠틀하고 질서정연한’ 영국은 없다.

눈만큼 귀도 즐겁다. 배경음악을 빼놓고 〈스킨스〉의 인기를 설명하기 어렵다. 시즌1만 하더라도 1990년대부터 인기 있던 아티스트의 다소 익숙한 곡이 중심에 있었던 반면, 시즌2부터는 아예 영국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신의 곡을 적재적소에 휘저어놓는다. 장르도 뒤섞는다. 더브스텝과 트립합, 힙합과 개러지, 포크와 메탈이 묘하게 어울린다. 〈스킨스〉의 음악은 2000년대 후반 영미권 음악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 평가받았다. 영국의 대중음악 잡지 〈NME〉가 커버스토리로 〈스킨스〉를 다룰 정도다.

사실 〈스킨스〉가 보여주는 가장 큰 ‘동시대성’은 영국 사회의 이중적인 단면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영국은 금융 강국이자 일찌감치 사회복지 시스템을 구축한 선진국이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영국 사회는 패자부활전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어두운 사회다. 가장 먹먹한 지점은 ‘어른의 부재’다. 주인공들 대부분은 무너진 가정과 권위주의적인 사회(학교)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떤 어른도 적극적으로 이들에게 그늘이 되어주지 못하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정서적으로 또래 집단에 의존한다. 그만큼 친구 사이에서 생긴 상처와 고통은 크다. 슬프게도, 매 시리즈 〈스킨스〉는 ‘친구의 죽음’ 또는 ‘친구를 망친 원죄’를 다루면서 성장통의 가장 아픈 부분을 다룬다. 전체 시즌의 ‘에필로그’ 격인 시즌7의 세 스토리(Fire·Pure·Rise)는 주인공들이 10대 시절에 겪은 상처를 어떻게 짊어지고 어른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들의 상처가 드러낸 사회의 약한 고리

〈스킨스〉가 처음 등장한 2007년은 물론, 지금까지도 청소년 문제는 영국 사회의 가장 취약점이다. ‘후드를 뒤집어쓴 10대’에 대한 공포가 사회를 지배하고(이는 〈가디언〉과 〈뉴욕 타임스〉가 2011 ‘올해의 책’으로 꼽은 〈차브〉에도 잘 나타나 있다. 국내에는 2014년 번역됐다), 왕왕 일어나는 폭동의 주인공도 대부분 10~20대 젊은 세대다. 영국 BBC는 2011년 런던 토트넘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동을 두고 긴축재정으로 인한 복지 축소와 인종 간 불만, 청소년 갱스터 문화 등을 이유로 꼽았다. 세련된 금융 강국이지만, 동시에 기간산업은 취약해졌고 가족도 덩달아 불안정해지는 사회. 〈스킨스〉는 그 ‘영향’을 보여준다. 원인 분석 대신 상처를 보여주면서 사회의 약한 고리를 드러낸다.

쾌락과 고통이 교차하는 이 드라마가 그래도 결국 좋은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순전히 캐릭터 덕분이다. 각각의 캐릭터는 자기 방식대로 어쨌든 성장하고, 돌파한다. 사고 후유증을 이겨내려는 토니, 런던이라는 큰 세계로 떠난 캐시와 시드, 결국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는 알로, 사랑을 인정하고 함께하기로 결심한 레즈비언 커플 나오미와 에밀리까지. 죽음과 원죄도 어떻게든 끌어안고 어른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스킨스〉의 가장 큰 미덕이다.

〈스킨스〉는 10대의 이야기이지만, 오히려 어른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이다. 당신은 어떤 10대를 보냈나, 당신은 괜찮은 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 있나. 어른이 부재한 이 이야기에서 그나마 시청자에게 힌트를 제공하는 인물은 파키스탄계 무슬림 앤워의 아버지다. 집에 찾아온 맥시를 두고, 앤워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 맥시는 게이예요.” 들은 척 만 척, 맥시를 반기며 앤워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난 나의 신을 모신다. 어떤 일들은 내가 어쩔 수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지. 알겠니? 그것이 틀린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언젠가 내가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야. 바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지. 난 참 운 좋은 사람이야. 들어오렴 맥시, 음식이 다 됐단다.”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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