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싸우고 있다. 지난해와 판박이다. 국회에서 여야가 절충안을 낸다는데 이 역시 중앙정부가 예비비를 제공하고 교육청은 지방교육채를 발행했던 지난해 일회용 카드일 듯하다. 그러면 내년 이맘때 또 누리과정 파동이 생길 것이다. 중앙정부와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을 가지고 핑퐁을 벌이고, 어린이집 원장들은 빨리 대책을 마련하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언론은 부모들의 불안한 인터뷰를 전할 것이다.

누리과정 사태는 박근혜 정부 첫해부터 예견되었음에도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제 양비론의 훈수는 유효하지 않다. 누구에게 근본 책임이 있는지를 분명히 가리고 첫 단추부터 새로 끼워야 한다. 지난 누리과정 논란의 진행을 보면 금세 책임 소재가 드러난다.

누리과정은 만 3~5세 어린이를 위한 통합과정이다. 과거에는 동일한 연령임에도 유아교육(유치원)과 보육(어린이집)으로 분리돼 있었다. 프로그램도 다르고 예산 편성과 관리 주체도 교육청과 보건복지부로 구분되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2012년에 만 5세 과정을 통합했고, 박근혜 정부 들어 3~4세 과정으로 확대해 올해부터 만 3~5세 프로그램은 누리과정으로 완전 통합되고, 예산 책임도 교육청으로 일원화되었다. 그동안 프로그램, 예산 책임, 관리 주체가 달라서 혼란스러웠는데, 일단 프로그램과 예산 책임이 통일되었으니 누리과정은 전향적인 개편이다.

남은 순서는 예산 조달이다. 교육청이 누리과정을 전담하면 당연히 필요 예산이 늘어난다. 중앙정부는 교육청에 제공하는 교육교부금 자연증가분으로 이를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청 처지에서는 교육교부금으로 비용을 해결할 수 있다니 굳이 누리과정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예기치 않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교육교부금은 중앙정부가 거두는 내국세의 20.27%로 정해진다. 금액 규모가 교육청의 예산 수요와 무관하게 세입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중앙정부는 교육교부금이 2012년 약 39조원에서 매년 약 3조원씩 증가해 누리과정이 완성되는 2015년에는 약 49조원에 달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내내 경기 침체로 내국세가 늘지 않아 교육교부금이 2013년, 2014년 41조원에 불과했고, 2015년에는 오히려 39조원으로 줄었다. 지난 3년 누리과정이 교육청으로 통합되었건만 교부금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니, 교육청은 이 교부금으로 일반 교육 지출의 자연증가분을 해소하기 어려웠고 새로 떠안게 된 어린이집 누리과정 몫은 더욱 감당할 수 없었다. 지난해 어린이집 예산을 둘러싸고 억눌려온 불만이 폭발했던 이유이다. 올해는 중앙정부가 예비비를 지원하고 교육청은 1조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겨우 봉합되었다.

누리과정 사태로 인한 갈등 지자체까지 확산

지금 2016년 누리과정을 둘러싸고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청은 누리과정 어린이집 몫 약 2조원을 중앙정부에게 요청했고, 거부당하자 내년 어린이집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는 배수진을 친다. 여야는 올해처럼 예비비와 지방채로 해결하는 일회성 카드를 또 꺼낼 모양이다. 교육청이 이 방안을 수용할지는 알 수 없으나 교육청 빚을 늘리는 게 해결책일 수는 없다. 2012년에 2조원에 불과했던 교육청 지방교육채가 올해는 11조원에 육박한다.

최근에는 지자체까지 누리과정 사태에 연루되고 있다. 어린이집 예산 조달은 교육청이 맡지만 실제 이를 어린이집에 전달하는 관리 주체는 지자체이다. 당장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의 우려를 생각해 다수 지자체들이 일단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했다. 나중에 교육청으로부터 해당 금액을 받는다고 가정한 조치다. 심지어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경남도가 교육청에 줘야 하는 지방교육세·지방세·담배소비세의 법정 전출금을 아예 누리과정 비용으로 상계하겠다고 한다. 이러면 누리과정 갈등이 지자체와 교육청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책임은 분명하다. 중앙정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그런데도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내수가 살아나면 지방 재정에 여유가 생길 것이다’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단계적으로 해결된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국회는 또 한 해만 넘기자며 미봉책을 만지작거린다. 도대체 이 소모적 갈등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누리과정은 중앙정부가 결정한 정책이고, 예산 부족은 계속 되풀이될 구조적 문제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몫만큼 교육교부금을 증액하는 게 정도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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