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된 늦가을이다. 별일 없이 앉아 있으면 어쩐지 휑할 것을 선배들은 알았던 걸까. 점심 송별 회식에 이어 저녁에 몇몇이 모여 또 밥을 먹었다. 국물이 보글보글 끓는 냄비 앞에서 나의 미래를 걱정하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쉬는 동안 뭘 하면 가장 건설적이지?” “덕질.” 아…, 이들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들이었다.

퇴직금과 통장 잔고를 놓고 머리를 굴려본다. 무얼 하며 놀아야 할까. 일단 일과를 통째로 알아서 조율할 수 있다는 해방감이 나를 충만하게 만든다. 이제 원하는 시간에 있고 싶은 장소에 있을 수 있다! 돈과 시간과 체력을 안배해 잉여 시간 활용의 깃발을 세차게 흔들었던 나는, 당분간 돈만 잘 안배하면 된다. 행복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라디오를 켜두는 것에서 시작한다.

절대 명반, 절대 명연은 없다지만 무수한 작품은 우주의 별과도 같고 제각각의 해석이 존재하니 나침반이 필요하다. KBS 1FM 〈명연주 명음반〉은 가장 쉽게 클래식을 가까이할 수 있는 훌륭한 가이드다. 이 프로그램은 음악평론가 정만섭이 20년 넘게 진행을 맡고 있는 본격 서양 고전음악 방송이다. 전곡 방송을 원칙으로 삼는다는 이유로 멘트를 자제하기 때문에, 방송에서는 핵심을 간추린 작품 소개 외에는 줄곧 음악만 흐른다. PC-Fi 시대를 맞이해 다시 듣기의 음질을 대폭 향상했다는 건조한 안내 멘트 정도가 뒤따른달까(그런데 왜 정겹게 들릴까). 새벽 3시 재방송도 있다.

ⓒ연합뉴스동시대 훌륭한 아티스트의 라이브는 들을 수 있을 때 들어야 한다.

선곡표에는 중요한 앨범의 재킷 사진과 별표가 함께 기재되고, 게시판의 꾸준한 조회 수는 그의 안목을 증명한다. 실제로 신보가 방송을 타면 해당 시리즈는 빠른 속도로 품절 사태를 빚기도 한다. 이쯤 되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물리적·정서적 유산이 없다 해도 클래식을 즐기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듣다 보면 표현이 풍부한 연주자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비교적 깨끗하고 섬세한 편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명연과 졸연을 가르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일단 본인의 선호를 천천히 찾아가자. 흥미란 신비로운 것. 정말 좋아하는 한 곡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꼬리를 물고 주변의 작품들이 찾아온다. 게다가 대부분 길기 때문에 자꾸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효율이 좋은 방법은 아티스트 팬질하기다. 과연 알게 되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보인다. 동시대 훌륭한 아티스트의 라이브는 들을 수 있을 때 들어야 한다. 그것은 큰 행운이다. 빛나는 뮤지션을 잃고 나서 그들을 회고할 때 우리가 늘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진정한 덕후가 되려면 그만한 수고가 필요한 법. 1년에 쓸 수 있는 정해진 휴가를 쪼개고, 콘서트 티켓은 물론 (덕통사고가 심각할 경우) 비행기표와 숙소도 모색해야 한다. 러셀의 말처럼 현대인에게 오락(!)은 일처럼 수고로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세기의 거장이 될 몸에게 꽃을 선사하고 여한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될 수도 있다(조성진의 어느 팬처럼 말이다).

조성진에게 악장이 보낸 활박수의 의미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우리는 독립된 삶의 방식을 찾고 싶어 한다. 호구지책에 얽매이고, 생애 주기에 맞춰 엄청난 동질성의 압박이 불청객처럼 찾아든다. ‘평생 좋아하는 것에 헌신하며 삶을 열어가는 사람.’ 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거나 대리만족이어도 좋은 것이다. 지순하게 단련한 끝에 성취한 개인의 탁월함은, 옆집의 향기로운 꽃밭처럼 사회에 기여한다. 이 커다란 지구에서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기쁘다. 경우에 따라 예상치 못한 귀여움이 터지거나, 인터뷰에 임하며 여유 넘치는 농담 한마디를 곁들이는 바람에 잠을 설칠 수가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연합뉴스11월7일 조성진씨가 프랑스 파리 공연 후 팬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 종종 공연장에 가는 거다. 예술가와 청중에게 무대는 일종의 만남이다. 일반적으로 음악은 시간예술로 분류되지만 연주자가 음반에서 공연장으로 나와 객석과 동시에 공존하는 순간, 공간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대형 오케스트라가 정교하게 쓰인 교향곡을 수십 종의 악기와 수많은 연주자가 각각 연주하여 완성하는 것은 차라리 하나의 기적에 가깝다. 좋은 공연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시향이 있다. 독주회나 실내악 편성뿐만 아니라 대규모 오케스트라 공연 또한 시향이 있기에 막연한 짐작보다 훨씬 부담 없는 가격의 티켓을 구입해 월드 클래스 수준의 실황을 접할 수 있다. 세금은 그렇게 쓰여야 마땅하다.

생일·결혼식·야구 경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소원을 빈 촛불이 꺼지고, 신랑 신부가 첫 발걸음을 떼고,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퇴장할 때 우리는 박수를 친다. 생각해보면 지금 누군가 무엇을 잘 해낸 바로 그곳에서 마음껏 갈채를 보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좋은 날 있을 거라고, 행복을 갈구하며 살아가지만 우리가 말 대신 몸으로 응원하고 축하하는 날은 이따금 찾아오는 남의 잔칫날과 스포츠 경기 현장 정도인 것이다. 이번 쇼팽 콩쿠르에서 조성진이 연주를 끝내자마자 악장이 활짝 웃으며 활박수(손바닥 대신 활로 보면대를 퉁퉁 치는 것)를 치던 장면을 인상 깊게 본 이들이 많다. 그는 프로이며, 협연한 사이지만, 그것을 모니터 너머로 지켜보았던 온라인 청중의 마음도 비슷했으리라.

우리는 악보로 완결된 작품이 비로소 무대에서 완성되는 것을 보며 힘을 얻는다. 준비된 모든 것이 끝나고, 수고한 연주자들을 향해 환호하는 행위는 종종 객석에 앉아 있던 자신에게도 위안이 된다. 음악은 삶의 환희와 절망, 긍지와 고독을 담은 편지이기 때문에. 또한 노력과 겸손, 숙고하고 정진하는 미덕은 클래식 스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우리는 대부분 게으르고 아는 체하기를 좋아한다). 음악은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고, 들을 때마다 매번 더 넓은 곳에 이르게 해준다. 진솔한 소리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당신이 귀를 기울인다면.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9번 아다지오 ‘님로드’는 친구의 헌신적인 우정에 대한 보답으로 쓰인 작품이다. 그러나 모든 배경 지식을 감상 전에 알지 못한다 해도 동일한 감동을 받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를 전혀 모른 채로 들었을 때 ‘오랜 고마운 사람과 해 질 녘 듣고 싶은’이라 메모했기 때문이다. 저스트 리슨(JUST LISTEN).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