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에게 가장 소중하면서도 무서운 것이 무얼까. 부모님? 성적? 게임? 스마트폰? 아니다. 단언컨대 ‘친구’다.

얼마 전 ‘틀린 어문규범 찾기 수행평가’를 했다. 아이들이 3~4일 전에 미리 SNS나 거리 간판, 상품 이름 같은 데서 어문규범이 틀린 걸 찾아오는 숙제를 해야만 모둠을 이루어 수행평가를 할 수 있는 수업이다.

내가 들어가는 반 중 유난히 성적도 낮고 수업태도가 좋지 않은 반이 있다. 예상했던 대로 숙제를 해 온 아이는 겨우 절반을 넘었다. 다른 반은 무사히 해낸 그 수업을 망치게 생겼다. 그렇다고 수행평가를 미룰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6명이 한 모둠씩을 만들었다. 그렇게 모둠별로 앉아 사인펜을 꺼내고 큰 종이에 잘못된 어문규범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러 아이들이 서서 떠든다. 앉아서 하라고 해도 엉거주춤 시늉만 할 뿐이다. 알고 보니 쓸데없이 떠드는 게 아니라 활동지를 작성하는 아이 곁에 모여 의논하느라 서 있었던 것이다. 숙제를 안 해온 아이들까지 열심히 모둠활동을 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신기했다.

이번엔 저 뒤쪽이 소란스럽다. 다가가 보니 아이들이 말다툼을 하고 있다.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가 “제가 교과서에서 그건 맞춤법 틀린 거라고 찾아서 얘기해주었는데 제 의견은 무시하고 안 써주잖아요!” 항의를 하거나 말거나 사인펜을 쥐고 있는 아이는 예쁜 글씨로 자기들이 찾아온 숙제만 옮겨 적는다. 이래서야 부족하든 잘하든 서로를 배려하면서 서로에게 배우라고 구성해놓은 협동학습을 하는 의미가 없다. 기초학력이 낮은 탓인지 평소에 둘이 수업시간마다 조잘조잘 떠들어 지적받기 일쑤에, 모둠활동을 하면 기여하는 바 없었던 ‘민폐 소년’들에게 쌓인 원망 때문에 공부도 좀 잘하고 숙제를 충실히 해온 아이들이 텃세를 부리는 모양이다.

ⓒ박해성 그림

사이가 안 좋은 아이들을 억지로 한 모둠에 붙여놓아 봐야 갑자기 힘을 합칠 리도 없고, 그렇다고 두 아이가 아무것도 안 하고 한 시간을 보내게 할 수도 없다. 아기 하마처럼 생긴 녀석 둘을 따로 빼서 조그만 모둠책상을 만들어주고 새 종이도 주었다. “너희는 책에 나온 틀린 표현을 정리하는 것으로 수행평가를 대신하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더라도 최선을 다하기다.” 그런데 한 바퀴 돌고 그들에게 다가가 보니 두 아이는 볼살이 닿을 듯 머리를 맞대고 저희가 알고 있는 대중가요 가사나 채팅 용어, 게임 용어의 잘못된 표현을 열심히 생각해내느라 애쓰고 있다.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둘러보니 다른 반보다 소란스럽기는 하지만 단 한 명도 수행평가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가 없었다. 기초학력이 약한 아이들이지만 함께 공부하는 시간만은 즐거웠던 것이다. 아이들은 게임과 운동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공부가 게임처럼 즐겁지는 않아도 친구와 함께라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교사보다 친구에게 찍히는 게 더 두렵다

교사가 아무리 완벽하게 수업 준비를 해와도 아이들이 100% 참여하는 수업을 하기는 어렵다. 내 경험상 아이들이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공부에 참여한 수업은 학습지를 풀든, 모둠이 모여 책을 만들든 협동학습을 할 때였다. 그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보니 원인은 ‘친구’인 듯하다.

이제 아이들은 솔직히 선생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사에게 찍히는 것보다 친구들에게 찍히는 게 더 두렵다. 물론 좋아하는 친구들과 서로 토닥여주고 함께 공부하는 것을 재미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고 협박해도 꿈쩍도 않던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옆자리의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교육에 희망이 없다,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함께 즐거운 배움을 나누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고작 그것으로 학교가 회복될 거라고 믿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이것이 산불이 났을 때 작은 날개에 물을 묻혀 나르던 꼬마벌새의 날갯짓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날 수업에서 나는 지적(知的)으로 가난한 그들이 나름대로 머리를 맞대고 공부라는 것을 해내려 애쓰는 현장을 보았다. 그 단순하고 치기 어린 우정, 어설픈 노력이 내 눈에는 한없이 귀하게 보인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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