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계추가 거꾸로 가고 있다. 광풍이 부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2008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 외국 언론이나 조사기관의 분석이다. 지표상으로도 그렇고 개인들의 행태도 그렇다. 극우 인사들은 아무리 말의 행패를 부려도 끄떡없는 것이 지금의 한국이다. 민주주의가 한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지속적인 감시와 노력이 필요한지를 실감나게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역진의 배후에는 대통령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10일 국무회의에서 “현 역사 교과서는 우리 현대사를 정의롭지 못한 역사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잘못되고 균형 잃은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나라로 인식하게 되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라면서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역사 교과서는 한국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한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부끄러운 나라로 묘사했기 때문에 보아서는 안 될 불온서적인 양 비난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도 역사 교과서 탓이고 친일파 비판도 역사를 잘못 가르친 좌파 교사들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이렇게 배운 학생들은 종국에는 “혼이 비정상”인 사람이 되어 정상의 국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건 역사를 ‘하나’로만 쓰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권력자 입맛에 맞게. 역사적 사실은 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것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인간사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가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와 주체사상을 비판하고 일본의 우경화한 역사 교과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권력에 의해 강요되고 만들어진 사상이고 역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국민 여러분께서도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주시고, 앞으로 그렇게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택해야 할 후보자에 대한 지침을 내리고 있다. 열 일 제쳐두고 국정교과서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 누구인데, 이제는 민생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심판해서 국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한다. 요컨대 대통령의 정치를 비판하면 정쟁이고, 잘 따르면 진실되거나 혼이 정상인 사람이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역사를 사유화할 권한까지 주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현재 헌법상의 권한을 넘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이 국가 발전을 위한 방향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박 대통령의 정치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검찰총장을 임기 전에 물러나게 했고, 국회의원들이 선출한 여당 원내대표를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분고분하지 않는 후보를 떨어뜨리고 대신 장관과 청와대 비서진들을 출마하게 해 후반기를 넘어 퇴임 후까지를 고려한 정치 개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효도 정치인지 모르겠으나 바탕에는 박정희 향수를 간직한 대구·경북 중심의 보수 세력을 결집해 정치적 구심점으로 계속 남겠다는 포석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2017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슈가 될 게 분명하다. 이념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시대착오적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층을 결집시키면서 모든 이슈를 흡입하는 블랙홀 같기 때문에 박 대통령과 보수층으로서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어젠다다.

박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변형된 이념 논쟁을 일으켜 국민을 애국자와 비애국자로, 혼이 정상인 사람과 비정상인 사람으로 나누었다. 사회를 양분한 것이다. 외교나 경제 문제 등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존이 걸린 중요한 현안과 국회의원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역사 교과서를 정부가 만들어 학생들에게 하나의 해석만을 주입시키는 것이 그렇게 시급하고 중요한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떠나 인간의 본성에 맞는다. 인간의 본성을 야단치고 자기가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따를 것을 지시하듯이 하면 본성이 저항한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민을 상대로 역사를 사유화하고 자기 식으로 가르칠 권한까지 주지는 않았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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