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일 미국 오리건 주의 대학 캠퍼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학생 9명이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콜로라도 주에서 총격 사건이 또 터졌다. 10월31일 공군사관학교가 있는 콜로라도 스프링스 시내에서 20~3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과거 군용으로 쓰던 AR15 반자동 총을 난사해 남성 1명과 여성 2명이 희생되고, 본인은 경찰의 반격으로 사망했다. 미국에서 총기 소유는 수정헌법 제2조에 명시된 권리이지만, 이를 악용한 사람들 때문에 총격 사건이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사건을 원천봉쇄하려면 총기 규제가 필수적이지만, 열쇠를 쥔 정치권, 나아가 이들의 배후에 있는 총기 로비 단체들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다.

미국에서는 2012년 12월 초등학생 20명을 포함해 26명이 희생된 샌디훅 총격 사건 이후 2년10개월 동안 크고 작은 총격 사건이 무려 142번이나 터졌다. 매주 한 번꼴로 발생한 셈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과거 대형 총격 사건처럼 오리건과 콜로라도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인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있다. 특히 총기 규제의 열쇠를 쥔 정치권은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공화당은 예나 지금이나 총기 규제 움직임에 부정적이다.

ⓒAP Photo10월1일 미국 오리건의 엄쿠아 커뮤니티칼리지에서 경찰관들이 학생들을 검문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총기 규제 현황을 보면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허술한 구조다. 연방 규정에 따르면 범죄자와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불법 이민자, 불명예 제대자 등은 총기를 소지할 수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투성이다. 예를 들어 판매업자는 법원이나 당국에 의해 ‘정신질환자’라는 공식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만 팔 수 없다. 따라서 중증 정신질환자라도 그런 판정을 받지 않았으면 얼마든지 총을 살 수 있다. 실제로 과거 총격 사건의 가해자는 대부분 정신질환자다. 게다가 총기 규제와 관련한 각 주의 시행 실태도 천차만별이다. 가령 뉴욕·캘리포니아·뉴저지·메릴랜드처럼 총기 규제를 엄격하게 실시하는 주가 있는 반면, 로드아일랜드처럼 총을 감춘 채 공공장소를 활보할 수 있도록 한 주도 있다. 이처럼 총기 규제가 제각각이지만 지금껏 제대로 보완되지 못한 데는 무엇보다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대형 총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치권에서 지탄의 목소리는 크게 나와도 막상 총기 규제에 대한 실천 의지는 약하기 때문이다.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총기 문제에 관한 한 중앙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로비 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가 정치권을 사실상 ‘볼모’로 잡고 있어서다. 오리건 사건이 터진 직후 〈워싱턴 포스트〉가 사설에서 “NRA에 비굴하게 복종해온 의회가 건전한 총기규제법 제정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통렬히 비판한 것이나,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주자로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지금 우리가 잘못하는 일은 NRA와 총기 제조업체들에 맞설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힐러리는 특히 “공화당이 미국 가정보다도 NRA를 중시한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AP PhotoNRA의 반대로 총기 규제 관련 입법은 번번이 실패했다. 위는 뉴욕 무기수집자협회의 총기 전시회.

NRA는 어떻게 의회를 쥐락펴락하는 것일까? 1871년 창립한 NRA는 1975년 이후 총기 문제와 관련한 각종 입법에 맹렬한 로비를 해왔다. 비영리 연구기관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NRA는 현재 450만명에 달하는 유료 회원을 확보했다. NRA가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엄청난 회원 수다. 이들은 총기 문제에 상당히 민감해서 NRA의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 총기 규제를 옹호하는 의원들을 겨냥한 낙선운동을 펼칠 수 있다. 미국 정치권이 NRA의 입김에 벌벌 떠는 까닭이기도 하다.

수백만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내는 회비 덕분에 NRA는 풍부한 재원을 자랑한다. 이들은 연방의원 선거는 물론 주지사와 주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의 성향을 면밀히 분석해 총기 규제에 긍정적인 후보에 대해서는 낙선 운동을 펼치는 등 적잖은 효과를 거둬왔다. 또 NRA는 전통적으로 공화·민주당 후보들에게 수천 달러에서 1만 달러 이상의 선거자금을 후원해왔다. 지지 후보만 보면 공화당 후보가 단연 압도적이다.

규제 찬성 여론 높아도 입법 안 되는 까닭

이처럼 선거 때 NRA의 도움을 받은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바람에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 이후 지난 7년간 벌여온 총기 규제와 관련한 다양한 입법 시도가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초대형 총격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서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이 들끓어 관련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일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총기 구매자의 신원조회를 대폭 강화한 이 법안은 하원을 통과하고도 2013년 4월 상원의 문턱을 넘지 못해 폐기됐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에서도 NRA 눈치를 본 의원 5명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통과에 필요한 60표를 얻지 못했다.

문제의 총기규제안이 상원에서 부결된 지 2년6개월이 흐른 지금, 의회는 김이 완전히 빠진 분위기다. 2013년 당시 법안을 공동 발의한 민주당의 조 맨신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팻 투미 상원의원조차 해당 법안을 재발의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발의해도 찬성표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맨신 의원은 〈블룸버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공화당이 찬성 표결을 하지 않는 한 해당 법안을 재도입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차기 공화당 대선 주자로 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총기 규제 움직임에 부정적이다. 반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꽤 적극적이다. 그는 지난 10월5일 뉴햄프셔 주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도일 맥마누스는 “힐러리의 제안이 대담하지만, 설령 당선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며 비관적 반응을 보였다. 유권자들이 총기 규제에 부정적인 의원을 대거 당선시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오리건 총기 사고 직후인 10월1일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유독 강조한 대목도 바로 이 점이다. 오바마는 “총기 규제를 강화하려면 국민 여러분이 공화당원이든 민주당원이든 무소속이든 상관없이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키는 총기 사고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라면서 총기 규제에 부정적인 의원들을 다음 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핵심은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호소를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인데 상황은 녹록지 않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미국인 대다수는 총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총기 소지자의 신원조회를 강화할 것을 바란다. 샌디훅 사건이 터진 직후 여론조사를 보면 92%에 달하는 사람이 총기 구매자의 신원조회 강화에 찬성했다. 하지만 정작 총기 규제를 현행보다 대폭 강화하려는 움직임에는 대부분이 거부감을 보였다. 게다가 총기 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다 보니 미국인들이 “무감각해진 것”도 문제다. 의회나 NRA 못지않게 총기에 관한 미국인의 의식 전환이 없는 한 총격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많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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