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놀까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법


청춘FC는 ‘축덕 가이드’

 

 

길이 105m, 폭 68m의 잔디 위에서 선수 22명이 90분간 공을 놓고 다툰다. 머리나 발을 사용해 상대편의 골망에 공을 넣는 팀이 승리한다.

세세히 따지자면 오프사이드부터 시작해 많은 규칙이 따르지만, 축구라는 스포츠의 뼈대는 이게 전부다. 잔디밭이 없으면 골목길에서, 골대가 없으면 깡통 두 개를 세워놓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봐도 주차된 자동차 밑으로 축구공이 굴러가 끼이는 불상사만 아니라면, 장비가 부족해서 축구를 못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하 청춘FC)〉도 이처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축구팀을 꾸려나간다. 참가자 대부분이 한때는 청소년 대표팀이나 고교 무대를 주름잡던 유망주였지만, 지금은 풀타임을 뛸 체력부터 만들어야 하는 신세다. 청춘FC의 안정환·이을용 감독 역시 코치, 피지컬 트레이너, 심리상담의 1인 다역을 동시에 해내며 악전고투한다.

 

‘일반인 참가자들이 멘토를 만나 꿈에 재도전한다’는 이야기 구조는 이미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변주돼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청춘FC의 두 감독은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의 멘토들처럼 굴지 않는다. 매주 마이클 잭슨의 재림을 만난 사람처럼 황홀경에 빠진다거나 반대로 가혹한 독설을 퍼부으며 참가자를 극한으로 몰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태한 선수를 향해서는 엄중한 경고를 주지만, 선발 명단에 들지 못한 선수나 훈련 중 부상을 입은 선수에게는 다음 기회가 열려 있음을 상기시킨다. 강팀과의 경기를 앞두고는 “우리가 제일 약팀”이라며 잃을 것이 없으니 마음껏 자기 플레이를 하라는 주문을 하기도 한다.   


스포츠는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식상한 비유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헬조선’을 둘러싼 논란이 떠오른다. 일부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가 불평만 늘었다며 화산처럼 분노한다. 사실 ‘헬조선’의 청년이 두려워하는 것은 도전 그 자체가 아니다. 아무리 힘껏 공을 차올려도 골을 넣을 수 없는 현실의 ‘기울어진 그라운드’다. 게다가 이 현실의 그라운드에서는 후보 선수가 되거나 부상을 당하면 누구도 “내일이 있으니까”라고 말해주지 않는다.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22명은 ‘페어플레이’의 원칙하에 선수 대 선수로서 동등하게 경쟁한다. 때로는 약팀이 강팀을 잡고, 후보 선수에게 교체 출전의 기회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안정환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에서 나만 도태되는 것 같은 때”도 있다. 부상, 백혈병, 동일본 대지진, 가정 형편, 팀 해체, 에이전트 문제까지. 청춘FC 참가자들이 축구를 놓았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지난 시간은 삶에서 분명 ‘노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짐작게 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KBS 〈청춘FC〉 화면 갈무리〈/font〉〈/div〉청춘FC는 프로 구단 성남FC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이겼다.

모두 프로가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다

방송을 보면 이제 겨우 20대 초·중반인 청춘FC 선수들이 마지막 기회라며 운동화 끈을 조이는 모습이 문득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방송 출연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청춘FC는 10월14일 K리그챌린지 선발팀과의 시합을 끝으로 공식 활동을 마감했다. 프로 선수와의 대결에서 청춘FC는 현격한 실력 차이를 드러냈고, 팀을 구하지 못한 선수는 다시 학교나 직장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사실 이들이 청춘FC에 지원할 때부터 예정된 결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끝이 보이는 도전이었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당장 어떤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전부를 쏟을 수 있는 것. 청춘의 특권처럼 여겨지지만, 동시에 ‘헬조선’을 살아가는 청년에게는 분명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최종 관문까지 함께하지 못했지만 유일한 여성 도전자 심연희 선수나, 부상으로 눈물을 삼킨 오성진 선수를 향한 시청자의 반응이 유독 뜨거웠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모두가 프로가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다. 다만 각자가 인생에서 후회 없이 도전했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한 번쯤 있었다면 혹독한 현실의 그라운드에서도 조금 더 당당히 뛸 수 있지 않을까? 청춘FC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법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이다.

최종 관문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유일한 여성 도전자였던 심연희 선수(위).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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