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에 대해 냉소적으로 말하는 분들이 있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고 잠을 잔다. 교사들도 과거와 달리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기보다는 다양한 보조교재들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갈 경우 바로 검색을 해서 다양한 견해를 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교과서를 바꿔봤자 실제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하겠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도 국정교과서를 통해 공부한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역사에 대한 인식을 싹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교과서와 반대로 서술된 것이 더 믿음직하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다. 반대로 국정교과서가 폐지된 다음 시대의 청소년들이 그 이전보다 더 보수적이라고도 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 이유를 교과서는 그 자체로 신뢰와 불신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들었다. 즉 시대 인식에 따라 교과서를 대하지 교과서를 통해 시대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교과서는 힘이 세다. 이것은 교과서가 말하는 ‘견해’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측면만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견해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다. 그 말이 공식 언어가 되어 큰 힘을 발휘한다. 5·18 광주항쟁을 교과서가 ‘민주화운동’이라고 말하는가, ‘폭동’이라고 말하는가, ‘민중항쟁’이라고 말하는가는 교과서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에 대해 학생들이 믿는가, 믿지 않는가와 달리 힘을 발휘한다. 그 사건을 지칭하는 공식 ‘언어’이기 때문에 그 말이 입에 붙게 된다.

 

ⓒ박해성 그림

생각 없을 때 교과서의 언어로 말하는 아이들

이 공식 언어가 힘을 발휘하는 두 번째 맥락이 있다. 공식석상에서는 바로 그 언어를 무의식적으로든 전략적으로든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점은 학생들이 생각하기 귀찮을수록, 대답하기 난감할수록 바로 교과서의 언어로 말해버린다는 점이다. 이때 그들에게 그 교과서의 견해를 믿거나 지지하느냐고 물어보면 난감해한다. 믿는지, 지지하는지 별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물어보면 별달리 할 말이 없는데 굳이 말을 시켜서 뭔가를 말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교과서의 힘이 있다. 교과서의 힘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데 있지, 교과서가 가르치는 대로 생각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나치의 유겐트와 같은 전위조직을 만드는 데 교과서의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이미 교과서를 통해서 그런 존재를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반대로 교과서의 힘은 생각하기 귀찮은데도 불구하고 뭔가를 말해야 할 때, 바로 그 생각의 빈 공간을 채우는 데서 힘을 발휘한다. 자신이 그 사건에 대해 특별한 견해가 없거나, 굳이 그 사건에 대해 견해를 가지고 싶지 않을 때 교과서의 언어는 ‘편리’하고 ‘안전’하게 그 시공간을 모면하게 해준다. 교과서‘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교과서로 생각(없음)을 대체한다.

여기에서 교과서의 세 번째 힘이 나온다. 교과서의 힘은 ‘생각 안 해봤음-할 말 없음’을 ‘생각 안 해봤음-말했음’으로 바꾸는 데 있다. 생각이 없고 할 말이 없었으면 말하지 말아야 하고 그 말하지 않음을 통해 자신이 할 말이 없다는 걸 생각하게 해야 하는데, ‘교과서의 말’(공식적이자 상투적인 말)로 말을 해버림으로써 사태가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그는 이미 말한 사람이기에 그 말은 자기의 말이 되며 동시에 말을 했기에 할 말 없음에 대해 사유하지 않아도 된다. 이중으로 결박되는 것이다. 자신의 입으로 말함으로써 자신의 견해가 되어버리는 첫 번째의 결박과 말을 했기 때문에 언어 없음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두 번째의 결박 말이다. 그러니 교과서는 여전히 힘이 세다.

기자명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