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아이들은 뒷전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정부 여당은 강변하지만, ‘정치적 고려가 앞선 무리수’(10월28일 서울대 교수 성명) 속에 교육 현실은 갈수록 만신창이 신세다. 그런데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꼭 온다’고 말하는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의 자신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10월20일 진행된 ‘2015 등대지기학교’ 마지막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20년 전만 해도 평범한 학부모였다. 내가 살던 서울 노원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교육이 번창한 지역 중 하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엄마들이 이 학원, 저 학원 몰려다니며 정보를 섭렵하는 게 일과였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나 스스로 불안과 공포가 커져갔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벌써부터 이랬다간 12년 뒤 내가 어떤 악마 같은 엄마로 변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교육〉 〈녹색평론〉 같은 간행물을 구독하고,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연구회나 어린이도서연구회 등도 기웃거렸다. 학부모운동 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에 회원으로 가입했다가 노원구 지부장까지 맡게 됐다. 지부장 시절 한 해 신규 회원을 200명까지 끌어들였는데 그런 활동이 인상적이었던지 본부에서 일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 뒤 본부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촌지·체벌·부당 찬조금 문제 등을 공론화했다.

ⓒ시사IN 윤무영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 개선 못지않게 의식의 변화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다. 지금이야 체벌 금지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당시 방송 토론 같은 데 나가면 패널 중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이 나 혼자였다. 나머지는 “체벌은 어쩔 수 없는 훈육 수단”이라며 나를 난타하곤 했다. 촌지나 부당 찬조금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문제를 거론하면 배은망덕한 학부모인 양 손가락질받던 시절이었다. 혹시나 아이가 피해를 입을까 봐 내가 참교육학부모회 회원임을 드러내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는 더디 오지만 반드시 온다’는 확신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은 당연하게 누리는 여성 참정권도 1940년대 들어서야 획득한 것 아닌가. 흑백 차별 철폐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기필코 달라진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 믿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왔다. 사교육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 사교육비 부담이 1년에 30조~35조원으로 추산되는데, 언젠가는 ‘그런 무지몽매한 시기도 있었구나’ 하며 지금을 회상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성적 비관으로 죽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는 세상’ ‘불필요한 입시 사교육비를 단 1만원도 지출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2008년 6월12일 창립했다. 고3이던 장하다군이 “어른이 되기 전에 지금 바로 우리들에게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자유를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긴 채 자살한 것이 1994년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르는 동안 베트남 전쟁에서 죽어간 한국군(5099명 추산)보다 더 많은 8000여 명의 아이들이 성적 비관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가 하면 세월호 참사 이후 한 고등학생은 “나는 내가 배 밖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능시험을 보면 돼지처럼 등급이 매겨지고, 점수가 내려가면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부른다. 우리도 죽어가고 있다”라고 다음 아고라에 썼다. 그런데도 이 같은 교육 현실을 심각하게 여긴 대통령이나 교육부 장관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나? 당장 이 전쟁 같은 상황을 멈추기 위해 우리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호소한 사람이 있었느냐는 말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최근 ‘수포자 없는 입시플랜’을 위한 1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다(위).

그렇다면 결국 아이들의 생명과 행복을 가장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우리 부모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 송인수 공동대표와 나의 뜻이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민간 교육부’를 자처했다. 학부모운동을 하면서 교육기관·대학 당국·교사단체 등 힘 있고 전문성 있는 단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이들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육부 또한 학생 입장에 충실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학원총연합회·사학법인연합회 같은 이해단체에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국회의원도 힘 있고 돈 있는 이들 단체에 눈도장 찍느라 바빴다. 이런 현실을 보며 더는 교육부나 국회, 교사단체에 의존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스스로 민간 교육부가 되기로 한 만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문제 제기에 멈추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한 예로 사교육과 관련된 교육부 해법을 보면, 사교육을 학교로 끌어들이거나 EBS 연계 비중을 높이는 식이다. 대학 서열화 구조나 취업 시 학벌 차별 등이 사교육을 유발하는 근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은 ‘장기 과제’로 분류한 채 눈앞의 공급 위주 대책만 쏟아내고 있다. 반면 우리는 대학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학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적성에 따라 가고 싶은 좋은 대학 100개 만들기’ 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학력·학벌 차별금지법, 지방인재채용 할당제 입법운동도 추진 중이다.

1만명을 표본 삼아 수개월 설문조사하는 이유

이들 문제를 제기할 때는 철저히 통계와 데이터에 기초한다. 특정 이념에 치우쳐서는 대중의 호응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어 사교육의 문제점을 짚어내기 위해 3년간 29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열고, 1만여 명을 표본 삼아 몇 달 동안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일도 우리 단체에선 낯설지 않다. 교육부나 국책 연구기관에서는 하지 않는 일이다. 이렇게 얻어진 자료가 뒷받침되어 있기에 정치권이나 언론도 우리의 문제의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의식과 제도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 또한 우리가 하려는 교육운동의 특징이다. 현재 수많은 시민단체가 있지만 대부분은 제도 개선에 주안점을 둔다. 그러나 교육운동을 하면서 보니 제도 개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람의 변화, 의식의 변화였다. 대입 제도나 채용 관행을 바꾸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초등학교에 “6학년, 목숨 걸고 공부하는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서 항의한 일이 있다. 그랬더니 그 학교 교장선생님이 “엄마들은 자기 아이를 때려서라도 공부시켜달라던데 당신들이 왜 그걸 반대하느냐”라고 하더라. 결국 이런 부모의 의식이 나쁜 환경과 제도를 온존시키는 것이다. 자기 자식은 귀족학교 보내면서 입으로만 제도 개선을 외치는 ‘언행 불일치’ 부모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아무리 좋은 제도를 들여온들 이런 우리의 삶과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특정 교육정책을 놓고 판단이 엇갈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모든 정책에는 장단점이 있다. 일례로 대학별 논술고사라는 건 학생들의 논술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는 등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으로 논술이 출제된다면 이는 결국 학생을 학교 밖 사교육으로 내모는 잘못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곧 교육정책을 평가하려면 학생에게 유익하냐 그렇지 않으냐가 판단의 중심이 돼야 하는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 논란이 된 교원평가 제도 또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학생에게 유익한 제도라는 것이 당시 참교육학부모회에 몸담고 있던 나의 판단이었다. 이에 대해 모든 교원단체가 반대할 때 유일하게 교원평가 제도를 찬성한 것이 송인수 선생이 대표로 있던 좋은교사운동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쌓인 두 사람의 신뢰가 토대가 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함께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단체를 만들고자 했을 때 함께하겠다고 나선 이는 거짓말처럼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한테 우호적이던 이들마저 “부동산과 사교육, 이 두 가지 문제는 한국에서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라며 말리고 나섰다. 결국 송인수 선생과 나, 실무자 한 명 이렇게 3명이 상근하는 형태로 사무실을 열었다. 아는 사람에게 일일이 손편지를 써서 보낸 결과 창립총회 당시 끌어모은 회원이 80명가량이었다.

그로부터 7년여가 지난 2015년 10월20일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은 3573명, 상근자는 30여 명에 이른다. 회원들이 매달 내는 회비는 8000만원 정도이다. 결코 풍족하다고 할 순 없지만 돈이 없어서 할 일을 못한 적은 없다. 돈이 필요할 때면 대표들이 직접 메일을 써 회원들에게 특별 기부를 호소한다. 모든 재정은 회원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매년 유료 재정감사도 받고 있다. 특목고 교장단이 우리를 비난하는 성명을 내고, 학원연합회가 우리를 영업 방해 행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갈수록 더 많은 ‘적’에 둘러싸이다 보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운영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지난 7년간 거둔 성과는 적지 않다. 일단 새로운 의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게 최대 성과다. 사교육 없이 아이에게 공부 좀 가르쳐보려 이 단체에 가입했다가 부모 스스로 뜨거운 변화를 체험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평범한 회원들이 지역모임을 함께하며 활동가로 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목고 입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의 주장을 반영한 결과 교육부가 외부 경시대회나 인증시험 성적을 반영하지 않고 내신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게끔 특목고 전형제도를 개선한 것이다. 그 결과 특목고 대비 전문학원의 3분의 1 내지 2분의 1이 문을 닫았다니 나름 사교육 지형에 변화를 일으킨 셈이다. ‘수포자 없는 입시플랜 운동’을 벌인 결과 수학 교육과정이 실질적으로 줄어드는 성과도 거뒀다.

국회에서 선행교육규제법이 통과된 것 또한 기록할 만한 성과 중 하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선행교육 문제를 들고 나온 초창기에는 교육운동을 하는 분조차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과목별 특성도 전부 다른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토론회, 서명운동 등을 통해 줄기차게 문제를 지적하다 보니 2012년 말에는 모든 유력 대선 후보가 선행교육 규제를 공약으로 내걸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현 정부 들어 선행교육규제법이 제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학원에서 행해지는 선행교육은 배제되는 등 이 법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그럼에도 대학에서 논술·구술고사 등을 실시할 때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신설되고, 이를 어길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게끔 법제화가 이뤄진 것이야말로 이 법의 최대 의의라 생각한다.

‘공감·공생·협력’의 교육 패러다임이 필요

다음번 대선 때는 후보들이 △(영어 외 다른 과목도) 수능 절대평가 중심의 대학 입시 간소화 △불공정한 채용 환경 개선 △대학 체제 개편을 통한 대학 서열화 해체 등을 교육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게끔 더 강력한 운동을 펼쳐보려 한다. 나아가 5·31 교육개혁 이후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교육 패러다임도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5·31이 내걸었던 경쟁·효율성·다양성의 가치 대신 공감·공생·협력의 새 가치로 나아가야 할 텐데, 이를 제대로 연구하는 기관이 아무 데도 없다.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따위로 세월만 허비하고 있다. 그런 만큼 내년에는 ‘5·31을 넘어’라는 별도의 포럼을 꾸려볼까 구상 중이다.

2012년 ‘입시 사교육비 제로 7대 특별공약 국민운동’을 선포하면서 우리가 내건 구호가 “초등학교 1학년이 고등학생이 되는 2022년 대한민국에서 입시 사교육은 사라집니다”였다. 당시 1학년이 벌써 4학년이 됐으니, 해가 바뀔 때마다 초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제껏 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슬픔과 기쁨, 고통과 환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기쁨은 고통을 통과해야만 느낄 수 있는 법. 현재의 고난을 잘 이겨내고 아이들과 함께 기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정리·김은남 기자

기자명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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