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까지 환한 교실이 자꾸 늘어난다. 요즘 아이들 문제로 맘고생이 심한 이 선생님 교실도 그중 하나다. 메신저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뻔한 공치사 쪽지 하나를 날린다. “반 아이들이 많이 좋아졌어요. 힘내세요. 선생님.” 박 선생님은 몇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겁이 난다. 무기력하고 반항적인 아이는 작은 지적만 해도 땅이 꺼지는 한숨부터 쉬며 “휴~ 알았다고요”로 말을 받는다. 김 선생님은 교사들마다 골머리를 앓는 ‘소문난 아이’를 지켜보다 교사로서 한번 승부를 걸겠다며 담임을 자청했다. 그 덕에 아이는 눈에 띄게 좋아지는데 선생님은 자꾸 야위어간다. 감정의 기 싸움으로 팽팽했던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돌아간 교실에서 선생님들은 가만가만 한숨을 내쉰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감정노동이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불평등과 모멸감이 일상화된 불신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비수를 겨눈다. 더욱이 강제력이 없는 도덕적·교육적 권위는 그야말로 수시로 깨지는 질그릇이다.  

ⓒ박해성 그림

많은 이들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을 통탄하고 교사들의 철밥통을 질시한다.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얘기다. 하지만 학교와 교육, 교사를 한꺼번에 싸잡는 비난은 위험하다. 대한민국 교사들은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힘을 키워갈 기회를 박탈당한 불행한 존재다. 가르치는 자로서 가장 기본인,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리가 없다. 정부와 교육관청에서 바라보는 교사는 계몽 대상이거나 지침의 수행자이지, 교육 영혼과 철학을 지닌 전문가가 아니다.

우리 교육의 지향을 이야기할 때 입시 중심 교육의 획일성을 벗어난 자율성과 다양성, 창의성, 융합 교육과 역량 중심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수행해야 하는 주체가 교사라는 사실은 잊는 듯하다. 그들의 생각, 조건과 역량이 어떤 상태인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지침이 내려가면 교사는 각본대로 이를 수행할 것이고 따라서 학생은 그렇게 성장할 거라고 믿고 싶은 막연한 기대만 넘칠 뿐이다.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이런 위험한 인식의 한 극점을 보여준다. 역사 교사 90% 이상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 정치인이나 학자의 분노나 상처보다 역사 교사들의 마음에 생길 생채기는 훨씬 더 깊고 처절할 것이다. 동의할 수 없는 ‘국정교과서’를 들고, ‘눈 딱 감고’ 수능과 시험 대비 역사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90% 교사들이 느낄 모멸감과 자괴감을 상상하면 자꾸 침이 마른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장학사였다. 비상대책팀의 일원으로 급파되어 단원고등학교에서 두 달여를 살았다. 이백몇십 명 아이와 선생님의 장례를 치렀다.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앗아가는 기업의 탐욕, 방관한 정부와 국가의 무능, ‘가만히 있게’ 했던 한국 교육과 사회제도와 문화에 대한 칼끝 같은 분노로 매일매일 바르르 떨었다. 그러나 극단의 ‘인페르노’ 공간에서도 희망 한 자락은 있는 법이다. 내게는 ‘선생님’이었다. 선박직 승무원 100%, 일반인 승객 69%가 살았지만, 승선한 선생님들은 열네 명 가운데 단 두 명만이 살아남았다.

선생님들만은 끝까지 아이들 곁을 지켰다

선생님 대부분은 탈출하기 쉬운 위층에 있었지만 배가 기울자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대부분 배 아래쪽에서 시신이 수습되었다. 생존 학생들이 증언하는 선생님들의 마지막 모습은 차마 글로 담을 수 없다. 누군가는 본능적으로 살려고 뛰쳐나올 때, 교사들은 본능적으로 아이들을 살리겠다고 달려 내려갔다. ‘교육적 관계’의 최고는 아이들을 살리는 일이다. 삶과 죽음의 찰나에 내리는 섬광 같은 선택은 모든 관계의 집약적 표현이다. 기업과 국가는 사람을 버렸고, 선장과 승무원은 승객들을 버렸지만, 선생님들만은 끝까지 아이들 곁을 지켰다.

교육의 힘은 끝내는 교사의 힘이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교사의 교육적 권위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선택의 권한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눈치를 살펴 미리 자기 검열하지 않고 역사에 대한, 삶과 가치에 대한 철학과 생각을 마음껏 언급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믿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교육의 고질병인 획일성을 극복하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선생님을 믿지 않는 나라에 교육은 없다.

기자명 안순억 (성남 운중초등학교 교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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