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요즘 ‘덴마크 전도사’로 통한다. 경쟁에 지쳐 불행한 한국 사회를 위한 대안을 찾던 중 덴마크에 매료된 이래, 그 사회체제와 교육제도를 소개하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 대표 겸 28년차 기자인 그가 덴마크와 행복을 화두 삼아 ‘생애 가장 긴 연재 기사’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0월13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진행된 여섯 번째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내가 덴마크를 취재하기 시작한 게 2012년 말 대선이 끝나고부터다. 북유럽 북해 연안 지역에 위치한 덴마크는 전체 크기가 한반도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해가 뜨는 날은 1년 중 50일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이 나라는 2012~2013년 2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것이 궁금해서 책(〈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까지 쓰게 됐다.

책을 쓰면서 현재까지 덴마크를 여섯 번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놀란다. 덴마크의 경우 대학 등록금이 아예 없을뿐더러, 모든 대학생에게 정부가 월 120만원가량을 생활 지원비로 지급한다는 사실부터가 충격이었다.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면 그것은 그 학생 부모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라는 철학에서다.

 

ⓒ시사IN 신선영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덴마크 전도사’로 통한다. 전국을 다니며 300회 이상 덴마크 관련 강의를 해왔다. 덴마크의 에프테르스콜레를 본뜬 학교를 만들기 위해 사단법인 설립도 준비 중이다.

그런가 하면 코펜하겐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한 한국인 교수는 국내에서처럼 “~에 대해 논하시오”라는 식의 시험문제를 대학생들에게 냈다가 학교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 시험문제는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 내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학생이 직접 문제를 출제하는 시험 방식이야말로 자기주도 학습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교사나 교수는 이를 지도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덴마크는 어떻게 이런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취재 결과 나는 덴마크가 행복지수 1위 국가가 된 비결을 여섯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었다. 자유·안정·평등·신뢰·이웃·환경이 그것이다. 이 중 첫째가 자유다. 초·중·고교생이건 대학생이건 덴마크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표정이 환하게 밝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가. 초등 고학년만 돼도 표정이 어둡다. 아침마다 일어나지 않으려는 아이와 전쟁을 치르는 집도 허다하다. 못 일어나는 아이를 부모는 한심하게 바라본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가 “(나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했는데) 너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왜 공부를 게을리 하니”라며 사도세자를 한심하게 바라보듯. 사실 사도세자가 표정이 어두워지다 못해 미쳐버린 데는 아버지의 그 말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나도 덴마크에서 배웠다. ‘아이를 한심하게 바라보지 마라. 못 일어나는 아이를 만든 건 우리 사회다’라는 것을. 학교 가는 게 즐거우면 아이는 벌떡벌떡 일어난다.

행복한 인생은 행복한 학교에서 시작된다. 덴마크 학교에는 무엇보다 한눈을 팔 자유가 있다. 쓸데없는 일을 할 자유, 다시 말해 옆을 볼 자유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덴마크는 학교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이들에게 학교는 뭔가를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라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스스로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성적보다는 서로 협동하는 것을 중시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 교장이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학교 운영의 주인이 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인 한 젊은 남자가 교실에서 책걸상을 정리 중인 사진 한 장을 보여드리겠다. 이 사람이 누굴까? 이 학교 교장이다. 이 사람은 본래 학교 핸드볼 코치였는데 서른다섯 살 되던 해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교장으로 선출됐다고 한다. 핸드볼 경기 같은 데서 우수한 입상 실적을 거둬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핸드볼 경기를 너무 좋아한다는 이유에서다. 핸드볼을 못하는 아이라도 “괜찮아. 하고 싶으면 언제든 경기에 끼워줄게” 하는 식으로 대한 덕분이다.

덴마크 학교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이처럼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이요, 더불어 함께하는 즐거움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아무리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라도 축구를 잘하지 않으면 경기에 참여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옆을 돌아볼 기회도 없다. 오직 정해진 트랙으로만 달릴 것을 강요받는다. 중2 때 난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 대부분은 ‘소설로 밥 벌어먹고 살겠느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전두환 정권 때 대학을 가는 바람에 ‘소설’ 대신 ‘사실’을 쓰는 기자가 되긴 했지만, 지금도 궁금하다. 중2 때 옆을 볼 자유가 있었다면 내 표정도 지금보다 밝아지지 않았을까.

선생님 앞에서 25분간 ‘이야기하는’ 시험

이렇게 자존감을 키워주고,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을 심어주다 보면 아이들이 일단 말을 잘하게 되는 것 같다. 덴마크 아이들은 A를 물어보면 자기 생각을 보태 B까지 얘기한다. 다들 말을 잘하는 게 하도 신기해서 그 비결을 물었더니 한 학생이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모나 교사에게 일방적 지시를 받지 않고 협상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답하더라. 반면 “저는 제가 살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우리 엄마가 살고 있습니다”라는 시를 짓는 한국 아이들에게는 사실상 협상의 여지란 게 없어 보인다.

시험 방식도 다르다. 덴마크 학교는 시험 보는 날이면 문제함을 교실 앞에 놓아둔다고 한다. 그 속에는 ‘6·25 전쟁’ ‘동학농민혁명’ 식으로 수업 시간에 배운 주요 키워드가 들어 있다. 학생은 이 중 하나를 뽑아 선생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25분간 이야기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훈련이 쌓일 수밖에 없다.

 

ⓒ오마이북 제공1년짜리 기숙형 학교인 바우네 에프테르스콜레(위)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실습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에프테르스콜레(Efterskole)다. 1년짜리 기숙형 학교라 할 수 있는 에프테르스콜레는 덴마크 전역에 240여 곳 있다. 아이들은 중학교 졸업 후 이들 학교에 진학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실습한다. 내가 견학한 바우네 에프테르스콜레에는 승마 실습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단순히 말 타는 것만 배우는 게 아니었다. 승마를 위해 말을 먹이고 씻기고 훈련시키는 전 과정을 직접 실습하면서,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는 걸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밥도 직접 해 먹는다.

한국에서는 이런 교육과정을 도입하자고 하면 공부할 시간이 없어진다며 당장 반대하고들 나설 것이다. 아이들에게 칼을 쥐여주는 것 또한 위험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덴마크는 학생들이 위험하지 않게끔 자신들의 룰을 직접 만든다. 역사 시험을 볼 때도 교사 앞에서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 “나라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A라는 이유로 B와 같이 행동했을 것 같다”라는 식으로 답한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자기주도적 사고를 하게끔 끊임없이 훈련받는 것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그렇게 옆을 돌아보고 쉬어가다가는 결국 뒤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어쩌면 일리 있는 걱정이다. 그럼에도 덴마크는 왜 저런 모델을 선택한 것일까. 내 생각에 덴마크는 이를 엄청난 투자의 시간으로 여기는 듯하다. 똑같이 10층짜리 건물을 짓되 한국은 빨리 2층, 3층을 올리라고 닦달하고, 덴마크는 층수는 나중에 올려도 되니 터닦기를 충분히 하라는 식이다.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경주마처럼 앞만 바라보고 자라난 한국 아이들은 대학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한다. 심지어는 명문대를 나와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해서도 특별히 가슴 뛰는 일이 없다며 답답해한다. 말 그대로 국가적인 에너지 낭비다.

반면 덴마크 아이들은 충분히 옆을 돌아볼 시간을 가진 만큼 직업을 고를 때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다. 인생은 행복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학교에서부터 세팅했기에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런 게 궁극적으로는 경제력의 차이로 이어지는 듯하다(덴마크의 1인당 GDP는 5만5000달러 수준). 덴마크 대학 진학률은 30% 남짓하다. 그러나 대학 안 가고 택시기사로 일하는 사람도 의사나 변호사가 전혀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 직종 간 임금 격차가 적고, 학비·의료비·주거비 걱정이 거의 없어서다. 실업급여도 2년간 보장된다. 이런 사회안전망을 유지하기 위해 월급의 50%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고소득자도 이를 기꺼이 부담한다. 자신들이 (세금으로) 혜택을 받은 만큼 아랫세대도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의지할 수 있는 이웃 공동체가 살아 있고, 환경에 대한 철학도 확고하다. 내가 자유·안정·평등·신뢰·이웃·환경을 덴마크 행복 키워드로 꼽는 이유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면 덴마크로 이민 가고 싶다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 전에 ‘우리 안의 덴마크’를 발견하자고 말하고 싶다. 덴마크도 처음부터 이런 사회였던 것은 아니다. 그룬트비(1783~1872)라는 교육사상가가 교육 개혁을 먼저 일으키고, 이에 ‘뭔가 바꿀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본 사람들이 협동조합 운동 등을 통해 세력화를 이루면서 사민당을 조직해 집권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곧 정당이 먼저 나서 솔루션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그룬트비의 철학이 나라 전체에 정착되는 선순환이 일어난 셈이다.

한국도 이런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책을 내고 지난 1년간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면서 예기치 않은 일을 많이 겪었다. 애초에 10회쯤 하고 끝내려 한 강의가 300회를 넘어섰다. 꿈틀리마을 등도 만들어졌다. 언젠가 의정부에 있는 꿈틀자유학교에 갔다가 “사람이 산다는 것은 꿈틀거린다는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와 닿아 ‘꿈틀’이라는 단어를 갖다 썼다. 꿈틀리마을은 여기저기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요, 꿈틀버스는 이런 현장을 찾아다니는 버스다. 독자들과 함께 덴마크를 견학하는 꿈틀비행기도 두 차례 다녀왔다. 최근에는 에프테르스콜레를 본뜬 꿈틀리학교(가칭)를 만들고자 사단법인 설립을 준비 중이다. 중학교 졸업생이 강화도에서 1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옆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인생학교다. 덴마크 얘기를 듣고 다들 부러워는 하되 아무도 직접 나서려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내가 하게 됐다(웃음). 서울시교육청(오딧세이학교), 이우학교 부설 함께여는교육연구소(아름다운배움), 꽃다운친구들도 유사한 학교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구동성으로 ‘죽은 교육’이라 답하는 사람들

강의를 다니며 아이들한테 “지금 여러분이 받는 것은 죽은 교육입니까, 산 교육입니까?”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죽은 교육이라 답한다. 한 여중생은 “학교가 나를 그다지 사랑하는 것 같지 않은데 하루 종일 나를 붙잡고 있다”라는 글을 썼더라. 이런 현실을 바꿔 나가려면 부모만 달라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자존감을 지키며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여기서 꿈틀, 저기서 꿈틀하는 게 필요하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사회를 바꾼다”고 고 노무현 대통령이 말씀하지 않았나.

결코 비관하지 마시라. 한국은 덴마크에 비해 날씨도 좋고 음식도 훌륭하다(웃음). 역사적인 무게감도 훨씬 크다.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는 낡은 유산을 청산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이룩한 덴마크와 달리 분단된 한반도에는 마지막 남은 동서 냉전의 쓰레기가 쌓여 있다. 이를 치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 민족은 어려움 속에서도 질경이처럼 수천 년을 버텨온 저력을 갖고 있다.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이들 쓰레기를 치워버리자.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꿈틀거리면서. 사람이 산다는 건 꿈틀거리는 것. 우리 모두 각자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정리·김은남 기자

기자명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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