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

독자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문국현 대통령 예비 후보(58)는 자천타천 로맨티스트로 불린다. 그는 출마를 결심하면서 “모든 것을 바쳐 희망의 중심이 되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최근 자신이 가장 멋지게 보였을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을 받고 “세계적 경영자로서 영광의 자리를 스스로 버리고 내려올 때”라고 응답했다.

그를 모르는 이들이 들으면 나르시시스트라고 볼 법한데, 측근들은 그의 진정이 묻어난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머가 별로 없다. 술·담배를 안 하고, 골프도 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사람들과 사귀고 논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기업인으로서 거둔 성공 스토리를 바탕으로 국가 경영과 비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정범구 전 의원은 “정치인들이 볼 때 문국현은 아마추어이며, 테크닉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그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문국현 후보는 그동안 성공한 CEO이자 헌신적인 시민운동가로 알려졌다. 반면 정치권에서 그는 무명이다. 정치 경험도, 공직 경험도 없다. 추석 전 인지도 조사에서 그를 대통령 후보로 기억하는 국민은 50%에 미치지 못했다. 유시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문국현 사장이 정치 시장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다”라고 힐난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출마 선언을 했고, 50여 일 만에 현실정치 세계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김영춘 의원의 살신성인이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지난 10월12일 오전, 문국현 예비 후보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김영춘 의원이 문국현 지지를 선언하고 탈당한 이후 두 사람이 공식 대면한 첫 자리에서였다. 인사말을 하는 내내 문 후보는 김 의원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날 그는 짧은 인사말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세 번 언급했다. ‘소명’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얼굴은 김 의원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은 자신을 향한 주문처럼 들렸다.
 

ⓒ시사IN 윤무영10월12일 문국현 후보(왼쪽)와 김영춘 의원이 만났다. 김 의원은 문국현 지지를 선언했다.

문국현 후보에게 최근 희망의 징후들이 엿보인다. 청년들과 여성계에서 잇따른 지지 선언이 나왔다.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이 파행을 거듭하면서 정치권에서 그를 주목하는 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추석 이후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문국현, 이제 생존선 넘어섰다"

4.6~8.1%. 문 후보의 최근 여론조사 지지율이다. 여론조사 전문가에서 문국현 정무특보로 변신한 김헌태씨는 “이제 생존선을 넘어섰다”라고 말했다. 지지율 5%의 의미는 크다. 그동안 문 후보 동정은 인터넷 언론과 일부 매체에서만 보도했다. 실체로 인정받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10월9일 KBS 취재 카메라가 처음으로 캠프에 나타났다. 방송사 내규상 지지율 5%를 넘긴 후보에게만 기회를 주는 텔레비전 토론회가 이번 주에만 세 차례나 잡혀 있다. 문 후보는 그동안 ‘특강 후보’로 불릴 정도로 일정의 대다수를 초청 특강으로 채우곤 했다. 하지만 이제 하루에도 서너 건씩 인터뷰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자연도태 당할 일은 이제 없어진 셈이다.

“이제부터 진짜 승부가 시작된다.” 김헌태 정무특보는 10월14일 이후의 정치 일정을 살펴보며 말했다. 문 후보가 현실정치 세계에 연착륙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여권의 단일 후보가 되는 본격 투쟁에 나선다는 뜻이다. 그 첫 번째 진군 나팔이 10월14일 울렸다. 문국현 신당인 ‘창조한국당’(가칭)의 발기인대회가 열린 것이다. 문국현 신당은 오는 11월4일 공식 창당한다.

대통합민주신당도 10월15일 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다. 이로써 이제 여권의 후보군이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후보, 두 사람으로 사실상 압축되었다. 이번 주부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맞설 여권의 대표 주자를 놓고 두 사람의 경쟁이 펼쳐진다. 한 명은 141인의 의원을 가진 거대 정당 후보이며, 다른 한 명은 의원 하나 없는 단독 후보이다. 
정치분석가들의 전망은 아직까지 문국현 후보에게 비관적인 편이다. 정치분석가 김형준 교수(명지대)는 “곧 대선 정국이 양대 정당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제3후보가 여권의 대표 주자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한계가 크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윤무영지난 10월11일 서울 여의도에서 ‘문국현을 검증한다’는 제목으로 작은 청문회가 열렸다(왼쪽). 이날 청문회는 사실상 문국현 캠프에서 주최한 것으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문국현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앞으로 언론과 상대 후보에 의한 본격 검증이 벌어질 날도 멀지 않았다.

제3후보의 한계는 5년 전 정몽준 후보가 잘 보여줬다. 5년 전 이맘때 무소속이었던 정 후보는 27.1~31.1%(언론사 세 곳의 조사)의 지지율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14.7~18.0%에 불과했다. 하지만 단일화의 승자는 노무현이었다. 탈당설이 떠돌던 민주당 의원(후단협)들이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21에 합류하지 않고 그냥 주저앉아버린 것이 정몽준 거품을 꺼지게 만든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 점에서 발기인대회를 치르기도 전에 김영춘 의원이 문국현 지지를 선언하며 탈당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김 의원의 탈당 직후 정치권과 언론은 추가 탈당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의원 영입과 세 대결은 그동안 정가의 상식에 속했다. 둑은 한 번 터지면 거침없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문국현 캠프의 대응은 달랐다. 문국현 후보는 “김영춘 의원의 탈당은 높이 평가하지만, 추가 탈당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캠프의 본부장 격인 이계안 의원도 “현역 없이 창당한다”라고 말했다. 캠프 차원에서 탈당 정국을 진화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왜일까?

문국현 캠프의 이런 반응은 현실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정치권 주변의 분석이다. 팔을 벌렸는데 아무도 안기지 않았을 경우에 대비해서라는 것이다. 최근 여권이 침몰하면서 여당 의원들은 집단 철새가 되었던 경험이 있다. 일부는 ‘달새’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탈당의 추억을 갖고 있는 의원들이 또다시 움직이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더구나 이제는 당의 공식 후보가 정해진 상태다. 김영춘 의원은 “탈당하기 전 많은 동료들과 의견을 나눴지만 모두 말렸다. 더 이상 탈당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의원 또한 자원봉사자로 문 후보를 돕지만 신당 참여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블루오션 찾았는데 흙탕물을 섞으랴

더 현실적인 이유는 문국현 신당이 발기인대회를 마쳤을 뿐, 정당으로서 아무런 몸집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5년 전 정몽준 후보는 당의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채 무리하게 연대에 나섰다가 당도 단일화도 모두 잃었다. 문 후보 또한 이 점을 경계하고 있다. 캠프 내 인사들은 정몽준 이야기만 나오면 유독 민감해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뉴시스10월10일 한 모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국현 후보가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

문국현 신당의 당면 목표는 따라서 ‘내 몸 만들기’가 될 전망이다. 정범구 전 의원은 “우리는 지금 창당에 주력할 때다. 독자 세력화를 선언했는데 세력도 갖추지 않고 단일화에 나설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 방법은 개혁성을 강화하는 쪽에서 찾아질 듯하다. 고원 공보팀장은 “현 정권에 실망한 개혁적 부동층이 우리의 주요 지지층이다. 주로 수도권 40대가 많다. 이들은 전략적 투표를 할 줄 아는 이들이다”라고 말했다. 고씨는 나아가 “단일 후보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가 개혁 성향의 전통 지지층을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아무나 받지 않는다”라며 ‘친노’와의 거리 두기에 나선 정범구 전 의원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정 전 의원은 문국현 후보의 정치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의 양극화를 조장하는 데 책임이 있거나 현 정부의 실패에 책임 있는 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다. ‘친노’와는 같이 안간다”라고 정 전 의원은 말했다. 정 전 의원의 말은 최근 나도는 친노 세력의 문국현 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실제 지지 여부를 떠나서 그런 소문이 도는 것 자체가 선거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다는 뜻이다.

문국현 후보의 홈페이지에는 ‘대통합민주신당과 단일화에 반대한다’ ‘의원 영입하면 지지를 거두겠다’ 따위 의견이 속속 올라온다. 정 전 의원은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았는데 흙탕물 섞지 말라는 것이 지지자들의 뜻이다. 이들 지지자들이 문 후보를 떠받치는 힘이기 때문에 이들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럼 단일화는 물 건너간 것일까. 이와 관련, 문국현 후보는 10월12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1월부터는 이명박씨와 나 빼고 남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문 후보는 “지지율이 나보다 낮으면 (단일화는) 의미가 없다”라고도 말했다. 여론이 자신한테 쏠릴 텐데, 인위적인 단일화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말이다.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문국현 후보의 뜻이 단일화보다는 끝까지 완주하는 쪽에 가 있으며, 따라서 단일화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주병수2003년 11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앞줄 왼쪽 네 번째)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서울숲 나무 심기 행사에 함께 참가했다.

하지만 이계안 의원 등 문국현을 지지하는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대선에서 완패하면 총선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단일화가 안 되면 대선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단일화는 불가피하다고 그들은 본다. 다만 형식과 내용은 5년 전과 달라질 수 있다고 이 의원은 전망했다.

이계안 의원이 구상하는 단일화는 사실상 대통합민주신당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내부에서 압박해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 의원은 자신을 포함해서 추가 탈당은 당분간 없다고 했다. 대통합민주신당 내에서 문국현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국현 후보의 선명성을 살리면서 의원들의 부담도 줄이는 방식일 수 있다.
최근 그는 김효석 원내대표를 만나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했다. “김효석 대표한테 내 행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당에서 제명하라고 했더니 그게 무슨 말씀이냐면서 웃더라. 당내 의원들 상당수가 이심전심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 사이에는 ‘any one, but Lee’(이명박만 아니라면 누구나 괜찮다) 정서가 있다”라고 이 의원은 말했다.

이계안, 원혜영, 이상민, 문병호 의원 등 문국현 지지를 선언한 의원 6명은 10월12일 오전 국회에서 모여, ‘신당 후보는 후보 단일화에 적극 나서야 하며 단일 후보로는 문 후보가 적임자다’라고 발표했다. 신당 후보가 정해지기 사흘 전의 일이다. 이들은 대통합민주신당 소속으로 문국현 후보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해당 행위’를 비판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 단일화 대망론이 기묘한 당내 동거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자명 안철흥 기자 다른기사 보기 ah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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