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놀까


DNA에 새겨진 오지랖


추억 속 화백님의 귀환

 

한국인의 DNA에는 오지랖이 새겨져 있는 걸까? 명절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처지에 내 건강보다 내 성적과 취업 상태를 궁금해하던 먼 친척 어른부터 툭하면 결혼과 임신 계획을 캐묻는 직장 동료까지, ‘오지라퍼’들은 어딜 가나 있다. 그런 이들에게 입 닫고, 눈 깔고, 웹툰을 보라고 권해주자.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의 스위치를 내리고 건강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바로 웹툰이다.

 

ⓒ시사IN 신선영

 가만 보면 만만한 게 청춘이다.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이 어떻게 사는지 정말로 궁금하긴 한 걸까. 청춘, 함부로 발로 차지 말자.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들〉은 대학에 입학해 미래 걱정 없이 막 살던 주인공들이 스펙 쌓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25화 ‘밥보다 좋다’에서 세 청년은 ‘감자칩 UCC 광고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하기로 하고, 그간의 기행에 걸맞은 괴이한 UCC를 만든다(그리고 가스파드는 실제 이 UCC를 대회에 출품해 심지어 은상을 타낸다). ‘오래된 디카’와 ‘돈이 들지 않는 최적의 코디’로 밥 대신 감자칩을 ‘버러지같이! 쓰레기같이!’ 씹어 먹으라고 명령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는 갖춰지지 않았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 밖에도 51~59화에 걸친 ‘외국인 노동자 다이어리’에서는 워킹홀리데이나 어학연수를 떠난 대학생들의 고단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주인공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코알라 엉덩이를 만져보고 오겠다”라는 포부를 품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하지만 애써 구한 집에서는 ‘가택신 바퀴벌레’와 살게 되고, ‘치즈공장’에서 ‘세차게 제거하는 세제’ 덕분에 비 오면 손끝이 아린 흉터를 얻게 된다. 유머러스하게 그려졌지만 곱씹어보면 꽤나 애잔한 이야기들이다.

 직장에서 툭하면 남의 임신 계획을 캐묻는 동료도 어딜 가나 있다. ‘계획이 없다’는 새댁에게 다짜고짜 한국인 멸종설을 들이밀며 ‘요즘 여자들은 애국심이 없다’고 혀 끌끌 차지 말자. 난다의 〈내가 태어날 때까지〉는 ‘평범한 임신’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불안하고 불확실한 일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17화 ‘32주 하(下)’ 편은 ‘온몸이 아이에게 묶여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일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는’ 윤희씨의 모습을 다룬다. 작품 속 윤희씨는 프리랜서다. 상대적으로 직장에 매이지 않는 프리랜서조차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일을 손에 쥐고 있을 수 있다니, 워킹맘들이 경력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울지 이해가 된다. 작가가 ‘드디어 그 어렵고도 흔한 부모가 되었다’고 담담하게 말할 때, 독자는 임신 여부를 남에게 쉽게 물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깨닫는다. 팀 다솜의 〈나, 임신했어요〉나 환타의 〈유부녀의 탄생〉도 함께 읽을 것을 추천한다. 결혼했다고 모두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메시지다.

 

 ‘군대? 남자들 다 가는 곳이잖아’라는 말, 또한 쉽게 하지 말자. 주호민의 〈짬〉은 군생활의 희로애락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하루 종일 계속된 실사격 훈련 후 ‘반딧불이를 처음 보았다’라며 소소한 기쁨을 전달하거나 120일 만에 첫 휴가를 나와 ‘따뜻한 물이 쉽게 나오는 거였다’라고 감동하는 식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와 달리 군인들이 흔하디흔한 온수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기는 하다. 온종일 페인트칠을 한 ‘전투 수영장’의 정체가 ‘20년 전 선배들의 삽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었다거나 삽 하나로 ‘춘계 진지공사’를 해내는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웃기는데 웃기가 어렵다. 자꾸만 군인의 월급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안84의 〈노병가〉는 의경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회자된다. 주인공들은 툭하면 벌어지는 폭력에 익숙해져 ‘차라리 맞는 게 낫다’고 여긴다. 납득되지 않는 불합리함을 고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개중 누군가는 조직 논리에 적응해 ‘쓰레기 중의 쓰레기’가 된다. 그들이 더 정의롭거나 덜 정의로워서가 아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처음 겪는 통제 상황에 당황하고, 덜 혼나기 위해 애쓰다 보면 군대 내 인권 문제까지 생각할 여력은 없다. 과장한 것이기를 바라지만 연재 당시 ‘내 이야기’라며 공감을 표하는 의경들이 댓글에 군번을 밝히며 줄을 섰다.

 

 골드키위새의 〈죽어도 좋아〉 주인공은 되뇐다. “이 세상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죽어도 좋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분명 있다!”라고.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야 만다. ‘죽이고 싶은’ 상사를 향한 사념이 정말로 상사를 죽였다. 잠시 못된 상사 얼굴을 대입해보면 청량감도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날 리는 없다. 샐러리맨의 교과서, 윤태호의 〈미생〉에 나온 영업3팀 같은 팀도 현실에는 별로 없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원한다면 김상수의 〈박 대리는 사회 부적응자〉를 추천한다. 지구를 체험하러 온 외계인이 굳이 한국 직장에 다니며 욕보는 내용이다. 외계인 눈에는 다 같은 지구인이지만, 그들은 똑같지 않다. 상사의 폭언을 견디는 것은 언제나 아랫사람 몫이고, 직장 내 커피와 녹차를 선택할 자유는 상사에게만 있다. 여자 신입사원은 출근할 때 영혼을 집에 두고 와야 살아남고, 장애인은 입사 면접에서부터 탈락이다. 게다가 단 6화 만에 ‘일은 정규직처럼 하고도 급여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게 비정규직’이라는 깨달음까지 얻는다. 외계인 눈에는 고만고만한 것들이 서로를 차별하기 바쁘니 그는 외롭다. 회식 후 ‘오늘도 술에 익사할 뻔했다’고 독백하는 그가 지구 견학을 끝내고 자기 고향별로 돌아가 행복해졌으면 한다. 우리도 어서 빨리 퇴근해서 행복해지고 싶다.

기자명 중림동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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