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6일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 행사가 열렸다. 행사를 마련한 것은 고문 피해 당사자다. 누가 챙겨주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민가협과 함께 행사를 여는 모습은 애처로웠다. 하기야 먹고살기 바쁜 시절,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실용적인 태도는 아니리라.
고문 피해를 증언한 사람 중에는 황대권씨도 있었다. 베스트셀러가 된 〈야생초 편지〉의 작가요, 생명·평화 활동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른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3년 동안 감옥에 갇혔던 어둠의 시절도 있었지만, 출소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촛불집회에서 숱하게 자행된 국가 폭력

이날 황씨는 23년 전 당한 고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말을 잇지 못했다. 단지 고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는 고문받는 사람의 표정이 되었다. 그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한 고문은 지독했다. 당시 고문을 견디는 황씨에게 안기부 수사관들은 말했다. “지금 옆방에 네 아내를 데려왔다. 간첩이라고 시인하지 않는다면, 네가 받은 고문을
네 아내에게도 똑같이 가하겠다.”

황씨는 이 한마디에 무너져버렸다고 했다. 그는 여기까지 말하는 것도 매우 힘들어했다. 말은 자주 끊겼고, 호흡은 불규칙했다. 이제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말을 시작하니 그게 아니었단다. 심지어 최근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직접 고문하는 꿈을 꾼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황대권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가끔 군대 꿈을 꾼다. 군대는 국가 폭력의 전형 중 하나다. 군대 꿈은 두 가지 패턴이다. 첫째, 지금의 내가 군대에 다시 끌려간다. “이미 예비군에 민방위까지 마쳤는데 웬일이냐, 내가 왜 다시 군대에 가야 하느냐”라고 묻지만 꿈속의 ‘고참’은 침묵 속에서 단호했다. 두 번째 패턴은 제대할 날이 지났는데도 제대를 하지 못하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꿈이다. 과연 나만 이럴까. ‘베트남 스키부대’에서의 빛나는 활약을 자랑하는 숱한 예비역 남성도 기실 비슷한 악몽에 시달릴 게다. 폭력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우리의 몸과 마음 곳곳에 자리잡는다. 다만, 아닌 척할 뿐이다.

ⓒ시사IN 안희태6월26일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 행사에서 증언하는 황대권씨(오른쪽).
지난 두 달간 진행된 촛불집회 과정에서도 숱한 국가 폭력이 자행되었다. 시민 1000명이 체포되어 자유를 박탈당했고, 부상한 사람도 1500명이 넘는다. 경찰에 의한 국가 폭력은 언제나 무섭다. 경찰관 앞에서 수백 차례나 강의를 했고, 경찰청의 이런저런 위원직을 역임한 나도 무섭다. 강경 진압이 예상되는 날에는 내가 왜 그 무서운 곳에 나가야 하는지 걱정이다. 
폭력을 상상하거나 지켜보는 것만도 무서운데, 직접적인 폭력의 희생자는 얼마나 그러할까. 최근 전경으로 근무하다 육군복무 전환신청을 냈던 이계덕 상경은 영창 15일·구속영장 신청 그리고 면회·외출·외박·전화 사용 2개월 정지 등의 2중 처벌을 당하고 있다. 법률 근거가 없는 자의적 처벌이고 노골적인 국가 폭력이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는 폭력이 지나간 다음에 남는 상처일지도 모른다. 더 많은 사람이 경찰을 두려워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릴 것이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경찰관만 보면 괜히 주눅들게 될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공무원은 그저 자기 업무를 수행하거나 명령에 따를 뿐이라고 여기겠지만, 폭력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에 대해서도 살펴야 한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남긴 이 상처가 밤마다 국민을 가위눌리게 하는 건 아닐까. 

기자명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