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근처에서 길을 가다가 청년을 보면 제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 관련 뉴스가 나오면 그즈음 군에 가 있는 제자가 어느 부대에 근무하는가를 재빨리 헤아려보곤 한다.

남학생들만 25년을 가르쳤다. 세상 모든 어리고 젊은 남자들이 다 내 제자는 아닌데도 그들의 아프고 기쁜 일들이 내 제자 이야기가 아닐까 여겨지는, 묘한 직업병이 생겼다.

한 번은 집 근처 백화점 매장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있는데 젊은 직원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혹시 안정선 선생님 아니신지요?” 사실 남자아이들의 얼굴은 변화가 커서 중학교 때 모습을 어른이 된 지금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한 교실 안에서도, 한 학교 안에서도 아기 같은 얼굴과 ‘아저씨’ 소리가 절로 나는 얼굴이 공존하는 게 남자중학교의 현실이니까. 한참 대화를 나누다 보면 눈매에서 그 청년의 소년 시절이 보인다. 얼굴의 선이 달라지고 뼈대가 굵어져도 이상하게 사람의 눈빛과 눈매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수줍게 웃는 모습, 눈웃음치는 눈, 빤히 쳐다보는 깊은 눈동자…. 중학교 때 아이 모습이 나타나면 추억도 솟는다.

 

ⓒ박해성 그림

전국용접기능대회에서 상을 받은 젊은 노동자 장현동씨가 상장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달라고 요청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회가 열리는 19년 동안 상을 받은 노동자의 이름이 아닌 회사명과 대표이사명만 새겨넣었더라는 이야기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도 또 제자들을 떠올린다. 내게는 검사·교사·대기업 회사원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사는 제자도 있고, 대학을 때려치우고 골방에서 날개를 가다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마트에서 짐을 나르거나 술집 알바를 하는 제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 준비를 하는 제자도 있다.

숱한 세월이 흘렀건만 변하지 않은 노동의 현실

자기 능력과 노력으로 상을 받고도 제 이름자 하나를 받아들지 못했다면 그의 자존심은 용접의 푸른 불꽃과 함께 다 타버리지 않았을까. “19회째 대회가 이어지는 동안 한 번도 이런 이의 제기가 없었다. 관례상 늘 이렇게 해왔고, 다른 경진대회들도 사정이 비슷하다”라며 노동자 이름 표기를 거부했다는 주최 측 말에 더 화가 난다. 그 긴 세월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단 한 명뿐이었는지도 궁금하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에게는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부당함을 제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방증하는 사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노동정책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노동자=쇠파이프’라는 이미지로 대한민국 노동자를 폄하하는 게 21세기의 현실이니, 지난 세월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과 글쓰기를 공부할 때 “자동차 정비를 하고 돌아와 저녁 시간에 시 한 줄 읽고 그날의 힘들었던 일을 일기 한 줄로라도 남기며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학이라는 게 멋진 표현을 할 줄 아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님을, 너희들 자신의 이야기가 시가 되고 문학이 되는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그런 길 하나 내가 알려주는 역할을 했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라고 강조했다. 나는 그렇게 가르쳤지만 아마도 현실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씻고 누울 시간조차 없고 불안한 미래 때문에 시 한 줄이 아니라 신문 한 줄 읽을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게 현실이라면 나의 저 말은 그저 ‘교단의 언어’에 불과할 것이다.

직업학교에 진학하고 노동자가 된 나의 오랜 제자 하나가 학교에 찾아왔단다. 그 학교에서 지금 학교로 옮겨온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초라한 입성에, 술 냄새를 풍기는 것 같더라고 옛 동료가 전했다.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어렵게 살면서 늘 주눅 들어 학교를 다니던,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작았던 그 아이. 어른이 되었다지만 오랜 스승을 찾아올 때 얼마나 용기를 내야 했을까. 그냥 전해들은 이야기만으로도 그의 신산한 삶이 상상이 되어 마음 아프다. 그래도 착한 심성과 반짝이는 눈매로 열심히 살고 있기를 빌어볼 뿐이다. 중학교 1학년인 그 애를 처음 만났을 때, 삶을 헤쳐 나갈 건강한 씨앗 하나 제대로 심어주지 못한 스물네 살 어설픈 교사였던 내 모습을 새삼 떠올리며, 그때로부터 숱한 세월이 흘렀건만 하나도 나아진 것 같지 않은 노동의 현실을 돌아보고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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