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당내 투쟁이 치열하다. 목표는 오직 하나, 내년 총선에서의 공천권 장악이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 및 친박 세력과 김무성 대표 간의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대표 측과 반대파 간의 당내 투쟁 파열음이 분당 가능성까지 제기될 정도로 크다.

오픈 프라이머리(국민공천제)니 안심번호제니 하는 생소한 용어가 정치권의 중심어가 된 것은 우리 정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미국에서 대통령 후보 예비경선 때 실시한 국민참여제도에서 비롯됐다. 양당체제가 확고한 미국에서 유권자가 지지 정당의 집권을 위해 확실하게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 제도가 의미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내용으로만 보면 그럴듯하다. 여론조사 방식을 통한 공천이니까 하향식이 아니라 국민 여론이 충분히 반영된 상향식 공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차상의 왜곡 등 신뢰성의 문제가 제기되어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안심번호제까지 등장하게 된다. 유권자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한 제도라고 하지만 현역 의원이나 재력 있는 지방의 국회의원 지망자에게는 오픈 프라이머리가 상당히 유리하다. 오픈 프라이머리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여론이 공정하고 유권자는 오염되지 않았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야당의 경우 공천이 곧 당선인 호남권에서 당내 경선을 통해 공천을 했음에도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당선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당내 공천에 문제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공정성 확보에 자신이 없던 여야 정당이 묘수 찾기에 골몰하다 마침내 안심번호제에 의한 국민공천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원론적 얘기지만 정당은 정치적 목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민주적 절차로 정치권력을 장악해서 자신들의 정강정책을 실현하고자 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솔직히 소속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집권하는 것보다 자신의 국회의원 당선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게 현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 중에 이미 탈당을 한 의원도 있고 탈당을 예고한 의원도 있는데, 이들에게 낙천은 생업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신당으로라도 기어이 출마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선구제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의 정당 구조에서 제3당은 군부독재 시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제3당의 출현이 절실하지만 정치인들은 이러한 구조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양당 구도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은 소선거구제가 주는 이러한 혜택을 누려왔고, 비례대표의 증원에는 반대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권을 둘러싼 내부투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제가 이런 소선구제와 결합해 권력의 독점과 독재를 가능케 했다.

이처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당과 야당의 당내 분란은 공천권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야당 일부 인사의 당 주류에 대한 비판은 탈당을 위한 명분 쌓기 내지 준비운동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당권을 쥔 새정치민주연합의 주류 역시 제3당의 실패는 한국 정치의 경험에서 증명된 바이므로 결국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믿을 터이다.

영국 노동당에는 코빈, 미국 민주당엔 샌더스…한국 야당에는?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는 몇몇 정책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가적인 방향 전환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정치는 내용과 스타일에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설사 내년 총선에서 절반 이상이 새 인물로 바뀌더라도 지역대표에 불과할 뿐 국회가 달라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경제성장이나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시민의 자유 문제는 악화될지언정 개선되기는 어려우리라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천 방식을 가지고 선거철마다 논란을 벌이는 것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라기보다 아예 부패상을 보여주는 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야당 60년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약체 리더십으로 인해 존재감조차 약하다. 영국 노동당 대표로 선출된 코빈 의원이나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선전하는 샌더스 상원의원처럼 확실한 정책 노선이나 강렬한 주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내년 총선에서 희망 없는 현실을 타파할 의지와 정치적 신념을 가진 새 인물이 대거 등장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중요하지, 안심번호로 여론조사를 하는 것만으로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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