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지구에서 생산되고 있는 먹을거리의 양은 그 어느 시대보다 많고, 1인당 소비량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서 먹을거리로 인한 고민이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먹을거리가 풍부한데도 먹을거리가 없어서 고통받는 사람은 10억명에 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많은 농민들이 몰락하고 있는데 이 딜레마를 어떻게 설명할까? 또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먹을거리에 목말라하는데도 왜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지는 걸까?

인류가 수렵과 채취에 의존하는 생존 방식에서 벗어난 이후 농업 생산에서 수없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2000~3000년 전에는 아시아의 계곡과 삼각주에서 물을 이용한 쌀의 재배가 발전했고, 11세기 이후 유럽에서 축력에 기반을 둔 농경이 출현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이루어진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바탕으로 농산물을 원료로 이용해서 가공하는 공업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자본주의 경제가 인류 최초로 영국에서 성립될 수 있었던 물적 토대인 ‘산업혁명’도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인 ‘농업혁명’이 선행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공업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서 농업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농업 생산에 필요한 농기계나 비료, 농약 등을 시장에서 구입하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수확 품종의 개발과 확산을 통틀어 일컫는 ‘녹색혁명’에 따라 심화되었다.

ⓒ연합뉴스몬산토는 세계 종자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 2013년 5월24일 GMO 반대 생명운동연대 회원들이 ‘전 세계 몬산토 반대의 날’을 맞아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녹색혁명에 기반을 둔 영농체계는 농업을 시장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었다. 많은 농자재를 시장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농업 생산은 자급적 성격에서 벗어나 상업적 생산이 강화되었다. 농업 생산은 자급에 기반을 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서 시장에 의존하는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로 변화되었다. 농자재의 외부 의존 심화는 농업경영비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로 인한 농업경제의 악화는 더 많은 생산을 강요했다. 그리하여 시장에서의 격심한 경쟁을 유발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자재에 대한 외부 의존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농기계·비료·농약을 생산하거나 농산물의 유통을 담당하는 농기업들의 활동 영역은 넓어지고 농민들에 대한 지배력도 확대되었다.

카길 등에서 수입하는 곡물 비중 60%에 달해

이들 농기업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더불어 경제적 국경을 넘어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과거에는 공산품의 자유무역이 꾸준히 증가되는 속에서도 농산물 교역은 ‘보호 영역’에 묶여 있었다. 그 이유는 농업의 다기능성(농업 생산이 단지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역할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생태적으로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함), 비교역적 성격(농업 생산이 사회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은 매우 크지만, 농업 생산자에게 몫으로 지불되는 것은 농산물의 직접적인 소비에 대한 대가에 불과. 즉, 농업이 수행하는 기능은 매우 광범하지만 이에 대한 화폐적 평가는 미흡하므로 이를 시장에 맡길 경우 농업 생산이 사회적으로 바람직스러운 수준보다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져 사회적·생태적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함)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워낙 강고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농산물에 대한 보호무역 정책을 취해왔다. 그러나 1986년대 중반부터 진행된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해서 농산물의 국경 보호 조치는 크게 약화되었다.

ⓒ카길홈페이지우루과이라운드는 ‘카길 협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카길은 비영리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곡물의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지만, 곡물은 공산품과 달리 생산량 중에서 다른 나라와 무역하는 교역량의 비중이 낮다는 특징이 있다. 1980년 이후 33년 동안 곡물 소비량은 14억t 수준에서 23억t으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에 곡물 교역량은 2억t 수준에서 3억t 수준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생산량 또는 소비량에 비해서 교역량이 낮은 이유는 곡물이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소비된 다음 여유분이 수출되기 때문이다. 다만 사료 작물로 많이 이용되는 콩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교역량이 많아서 무역률(생산량 대비 교역량)이 38%로 가장 높고, 밀은 21%, 옥수수 11%, 쌀은 8%이다. 생산량 가운데 교역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보니 미세한 수급 변동으로도 급격한 가격 변동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세계 곡물시장에서 주요 수출국은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소수 국가에 한정돼 있다. 이는 곡물시장을 취약하게 만든다. 수출 상위 3국이 전체 수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콩·옥수수 모두 90%에 이르고, 밀은 50%에 달한다. 더욱이 소수의 곡물 수출국 중에서도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콩은 40%, 옥수수는 70%). 이처럼 미국은 국제 곡물시장을 쥐락펴락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카길(Cargill), ADM, 벙기(Bunge), 루이드레퓌스(Louis Dreyfus) 등 4개 업체가 수출 물량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한국도 이들 4개 초국적 농기업에서 수입하는 곡물의 비중이 60%에 이른다.

세계 곡물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한 반면 미국 경제 전체에서 농업 부문의 비중은 미약하다. 미국 내 금융자산과 대비해 생산액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투기자본이 발호하기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처럼 낮은 상황에서 투기자금이 유입되면 곡물시장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8년의 식량위기는 악화된 시장 여건(이상기후에 따른 곡물 생산의 감소와 중국 등 신흥국가 곡물 수요의 증가)이 기본 원인이었지만, 투기자본도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원유시장에서 시작한 투기자본의 상품 투자가 곡물시장으로 그 중심을 옮겨오면서 곡물가격 급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곡물시장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투기를 해야 성공할 수 있는데, 곡물 생산이나 재고 등 시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집단은 바로 이들 농기업이다.

또한 우루과이라운드를 계기로 농화학기업들은 농업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인류 공동의 유산, 즉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공적 재화로서 남아 있어야 할 유전자원인 종자가 업체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자업체 간의 인수·합병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이로 인해 종자시장의 집중도는 급속도로 높아졌다.

종자에서 농자재, 유통에서 가공까지 뭐든 한다

1995년 37%에 불과하던 상위 10대 기업 점유율이 2010년에는 70%를 넘어섰다. 특히 몬산토(Monsanto)와 듀퐁(Dupont), 신젠타(Syngenta) 등 3대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50%를 초월했고, 세계 최대의 종자회사인 몬산토는 세계 종자시장의 4분의 1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거대 종자회사를 ‘바이오 메이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해서 농기업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관철하고 많은 이윤을 챙길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이 때문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카길’ 협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국경을 초월해 활동하는 이들 초국적 농기업은 종자·비료·농약 등의 농자재부터 먹을거리의 유통·가공에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활동하며 자신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라고 불린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은 금융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데, 말이 금융 서비스이지 실제로는 곡물을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금융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2007~2008년의 식량위기 때에 곡물 가격이 폭등하자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식료품비를 지불해야 했다. 반면 곡물 가격의 폭등으로 가장 크게 이득을 본 것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이었다. 당시 국제 농산물 가격이 24% 인상될 때, 카길·ADM·벙기 등의 이윤은 103%나 증가했다. 농자재 값이 크게 오른 탓에 정작 농민들은 곡물 가격의 상승에 따른 이익을 그다지 얻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사료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서 축산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먹을거리 위기가 빈발하는 가운데, 한국의 상황은 전혀 낙관적이지 않다. 곡물자급률은 2011년에 25% 이하로 떨어진 이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쌀의 자급률도 90% 이하로 추락했다. 2007~2008년 세계적인 식량위기 때 큰 혼란을 겪지 않고 지나온 것은 그나마 쌀의 자급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빈 곳간을 보여주면서 거래하게 되면 싼값으로 곡물을 살 수 없는 구조를 지닌 것이 국제 곡물시장이다. 우리의 자급력을 확보해내지 못하면 우리 주변에는 식량위기라는 유령이 항상 배회할 수밖에 없다. ‘값싼 먹을거리의 종언(the end of cheap food)’이라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자명 윤병선 (건국대 교수·경제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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