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집안은 장맛도 달다”라는 속담이 있다. 유사 버전으로 “집안이 망하려면 장맛이 변한다”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장(醬)은 식문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왔다.

그러나 장류 소비는 해마다 줄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간장·된장·고추장 등의 소비는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1인 가구의 증가, 외식 문화의 확산 등으로 ‘집밥’을 먹는 사람이 줄어들면서다. 장을 직접 담그는 집은 손에 꼽을 정도다. 마트에서 그나마 사먹는 장조차 뭐가 뭔지 모르고 고르는 사람도 많다. 장의 기본이라 할 간장이 특히 그렇다.

 

양조간장은 뭐고, 진간장·혼합간장은 또 뭐지? 헷갈려도 당신의 잘못만은 아니다. 제조사나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와 일반 소비자가 쓰는 용어가 뒤섞이면서 간장 명칭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간장은 제조 방식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왼쪽 〈그림〉 참조). 일단 전통적인 방식대로 메주를 띄워 소금물을 섞은 다음 발효·숙성시켜 만드는 것이 한식간장, 일명 조선간장이다. 양조간장은 메주 대신 콩(대두)이나 지방을 뺀 콩(탈지대두)에 밀가루를 섞은 다음 이를 발효·숙성시켜 만든다. 이들 간장은 발효·숙성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이상 걸린다.

그런데 이 같은 발효 과정을 생략하고 화학적 방법으로 2~3일 만에 속성으로 만드는 간장도 있다. 산분해간장이 대표적이다. 산분해간장은 말 그대로 탈지대두를 식용염산 등 산(酸)으로 분해시킨 다음 생성된 액체를 가성소다 등으로 중화해서 만든 간장이다. 당연히 대량생산하기 쉽고 값도 싸다. 혼합간장은 이런 산분해간장을 양조간장 또는 한식간장과 혼합해 만든 간장을 말한다. 이들 혼합간장은 ‘진간장’ ‘맛간장’ 같은 명칭으로 시중에 팔리고 있다.

산분해간장 99%에 양조간장 1%만 섞어도 ‘혼합간장’

산분해간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소비자단체에 의해 몇 차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콩을 산으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3-MCPD(모노클로로프로판디올) 등 유해물질이 발생한다는 논란이 대표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세계보건기구(WHO) 합동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는 3-MCPD를 ‘불임 및 발암 가능성이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

이에 대해 간장 제조사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 간장회사 홍보팀 관계자는 “산분해간장을 둘러싼 안전성 논란은 사실상 끝난 상태다”라고 말했다. 한때 3-MCPD 등이 문제가 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1990년대부터 위해성 저감 기술에 투자를 집중한 결과 현재는 산분해간장의 3-MCPD 발생량을 10ppb(10억분율)까지 획기적으로 낮췄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기준(300ppb)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하다는 유럽연합 기준(20ppb)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또 다른 간장 제조사 관계자는 “3-MCPD는 기름과 소금, 열이 만나면 발생하는 만큼 집에서 고기를 굽거나 할 때도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간장을 둘러싼 또 하나의 논쟁거리는 각종 첨가물이다. 지난 7월10일 서울시의회에서는 이윤희 의원실이 주최한 ‘영·유아 급식 식재료 및 장류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기조 발제에 나선 소혜순 희망먹거리네트워크 자문위원은 “영·유아기에 식습관이 형성되고 평생 건강의 기틀이 다져지는 만큼 불필요한 화학첨가물로 맛을 내는 장류나 양념류를 영·유아 급식에 사용하는 방식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산과 중화제를 사용해 가공하는 산분해간장의 경우 역한 향을 가리기 위한 탈취제(활성탄)는 물론 강한 짠맛을 없애기 위해 액상과당, 효소처리스테비아 등 감미료와 합성 조미료가 다량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산분해간장이라는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도 많다. “과일 통조림을 만들 때도 산을 많이 사용하지만 이를 산분해 통조림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산분해간장은 작명에서부터 불리한 조건에 놓인 셈이다”라고 한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시중에서 파는 간장 중 산분해간장이라 표기된 제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이들이 선택한 우회로가 혼합간장이다.

문제는 비율이다. 현행 식품법상 혼합간장이라는 명칭은 산분해간장 99%에 양조간장을 1%만 섞어도 쓸 수 있다.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간장 중 하나라는 진간장의 경우 식품 유형은 ‘혼합간장’으로 분류돼 있는데, 그 아래 표기된 ‘혼합비율’을 살펴보면 ‘양조간장 7%, 산분해간장 93%’임을 알 수 있다. 진간장 이름을 약간 변형한 프리미엄급 진간장은 혼합비율이 ‘양조간장 20%, 산분해간장 80%’다. 양조간장 비율이 높아질수록 가격도 함께 올라간다. “양조간장이 불과 1~3% 섞인 것만으로도 혼합간장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게 한 것은 문제다. 소비자를 현혹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김영성 교수(신한대·식품공학)는 말했다.

소비자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샘표식품은 1980년대 후반 양조간장 생산 시설을 대폭 확충한 바 있다.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산분해간장이나 혼합간장 사용률이 감소한 일본의 전례에 따라 한국에서도 이들 간장 대신 양조간장 사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측은 틀렸다. “담백한 맛의 양조간장을 선호하는 일본인과 달리 볶음·조림 등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은 감칠맛이 나는 혼합간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더라”고 이 회사 관계자는 말했다.

문제는 각종 첨가물로 이런 맛을 내는 간장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산분해간장뿐 아니라 양조간장 중에서도 감미료나 합성조미료를 첨가한 것이 적지 않다. 달달한 맛이나 감칠맛을 증폭시키기 위해서다. 오귀복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총괄국장은 “간장 병에 붙은 성분표시만 잘 봐도 내가 고른 간장이 몇 퍼센트 혼합간장인지, 어떤 첨가물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원료로 쓰인 콩이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또한 성분표시를 통해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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