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은 20세기 최대의 사건이라 할 만해. “세상은 바야흐로 밑바닥부터 뒤바뀌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들이 전부가 되리라”(노동자의 국제연대를 상징하는 노래 ‘인터내셔널’ 후렴구)는 희망은 세계를 뒤흔들었어. 러시아 혁명은 점차 확산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상은 소련, 즉 러시아 혁명으로 탄생한 소비에트 연방이 이끄는 ‘동방’과 자본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서방’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맞서게 되지. 이 시대를 냉전 시대라고 해.

그러다 보니 양쪽 진영은 서로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하며 내부 단속을 강화했지. 자유로운 나라라고 자부하는 미국에서도 ‘매카시즘’이라는 무지막지한 공산주의자 사냥(사실은 공산주의자로 몰린 사람들)이 있었어. 이른바 동방의 사정도 열악했지. 사회주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수백만명을 우습게 죽이는 일도 벌어졌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한 사회주의가 오히려 자본주의만도 못한 속박과 불평등을 낳기도 했지.

냉전이 한창이던 1968년, 공산 치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젊고 패기만만한 정치인 알렉산드르 둡체크가 등장해. 네 살 때 공산주의자 아버지를 따라 소련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이 2대째 공산주의자는 혁명에 대한 신념도 갖고 있었지만 스탈린 이래의 억압적인 사회주의를 넘어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주창하지. “우리가 단합하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도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요. 우리 모두 참여하여 이를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인 둡체크.
둡체크는 민주적 선거를 통한 의회제도 확립, 검열 철폐, 언론·출판·집회·여행의 자유 보장, 경찰정치 종식 등 그때껏 일그러져 있던 ‘인간의 얼굴’을 펴기 위한 노력에 나섰고 체코인들은 ‘프라하의 봄’을 만끽하며 새로운 시대의 꿈에 부풀지. “우리는 사회주의자다. 인간의 행복을 위한 사회주의자다.”

하지만 ‘인간의 얼굴’을 영 마뜩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어. 바로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과 주변 공산국가들. 1968년 3월 열린 바르샤바 조약기구(공산권 국가들의 군사협의체) 회의에서 둡체크는 일종의 ‘몰매’를 맞아. 둡체크는 자신의 사회주의에 대한 신심을 애타게 재확인했지만 반응은 싸늘했고, 소련과 그 위성국들은 체코슬로바키아를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돼. 드디어 1968년 8월20일 소련과 동독·폴란드·헝가리 연합군 20만 대군이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을 넘고 이튿날 새벽이 오기 전 프라하는 그들의 군홧발 아래에 놓이게 된단다.

체코 국민들은 눈물겹게 저항했어. 프라하의 모든 교회의 종이 찢어질 듯 울렸고 시민들은 소련군의 탱크를 맨몸으로 저지하며 울부짖어. 소련군 이하 공산군에게 일체의 음식 팔기를 거부하고, 표지판을 죄다 뒤바꿔놓아서 전차 부대를 헤매게 만들었어. 방송국 기술자들이 뜯어낸 방송 장비로 가동되는 지하 방송국이 시시각각 상황을 국민에게 전달했고 시민들은 거기에 호응했단다. 체코 국민이 곳곳에 내다붙인 저항 10계명은 지금 읽어도 뭉클한 감동이 일어. “1. 우리는 배운 것이 없다. 2.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3.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 4. 우리는 줄 것이 없다. 5. 우리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6. 우리는 팔 물건도 없다. 7. 우리는 해줄 것이 없다. 8. 우리는 무슨 말인지 모른다. 9. 우리는 배반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은 녹슬지 않는 화살로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의 가슴에 틀어박힌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열 번째 계명은 항상 대문자로 쓰였다고 해.

 

1968년 소련 등의 침략에 맞선 체코 사람들.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린 ‘지금 여기’의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는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어. 그러나 인간적 사회주의가 쓰러진 그 순간은 현실 사회주의 체제 종말의 시작이기도 했어. 인간의 존엄과 자유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체제는 그 순간 썩기 시작하는 법이거든. 마치 숨을 멎은 시신이 바로 부패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이 간단한 원리는 자본주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돼.

2주일쯤 전 청주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 한 명이 지게차에 치이는 사고가 일어났단다. 네가 가끔 마트에서 보는, 물건을 엄청 쌓아서 싣고 옮기는 그 지게차 말이야. 사람이 나동그라지고 의식을 잃었는데 회사 측은 기껏 신고해서 달려온 119 구급차를 돌려보내. “별일 아닙니다. 찰과상입니다” 하고 말이지. 회사는 지정 병원의 구급차를 불렀다고 주장했지만 한참 지나서 온 건 구급차는커녕 회사의 승합차였고,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한 한 소중한 생명은 꺾이고 말았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일을 ‘산업재해’로 처리하지 않으려는 꼼수 때문이야. 산업재해로 판명나면 벌점과 벌금에다 ‘돈 버는 데’ 불편한 일이 많거든. 그래서 119 등 공식 절차와 객관적인 의료시설보다는 자신들과 ‘말이 통하는’ 지정 병원으로 옮기려 했던 거란다. 그 돈 세는 소리에 고통스러운 사람의 비명은 묻혔고 우주보다 귀하다는 생명은 치료 한번 못 받고 사그라들었어.

처음에 회사는 ‘교통사고’로 일을 처리하려 들었고 경찰도 ‘교통사고로 합의할 거냐?’라고 유족들에게 물었다고 해. 뒤늦게 일이 공공연하게 알려지고서야 산업재해 처리가 됐는데 또 기막힌 일이 벌어졌어.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처리를 하면서 구상권을 지입차 주인에게 청구했다. 지입차주의 인생은 이 사고로 사실상 끝이 난다.”(새정치국민연합 한정애 의원). 지입차란 운수회사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의 차량을 뜻해. 즉 사고를 낸 사람도 가해자이긴 하지만 지게차 한 대가 전 재산일 가능성이 큰 서민이야. 그런데 회사 일을 하다가 발생한 사고에서 회사의 책임은 온데간데없고 나라가 나서서 지게차 운전자 한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는 셈이야.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산재로 처리하지 않으려 119 구급차를 돌려보낸 ‘청주 공장’ 사건을 JTBC 뉴스가 보도한 장면.

일을 시킨 회사, 그로부터 돈을 벌어들이는 회사, 그들을 감독하고 산업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나라의 책임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고 불쌍한 사람들만 속절없이 죽음을 맞아야 하고, 살인자로서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면, 그게 법이고 자유민주주의고 자본의 논리라면, 이 사회의 얼굴은 과연 인간적일까? 만약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버린다면, 인간의 존엄을 부정하고 ‘돈 벌 자유’만 무한대로 보장할 뿐인 체제라면 그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을 거야. ‘사회주의’ 지키겠다고 20만 대군을 동원해 한 나라를 덮친 소련과 그 졸병들의 만행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을 거야.

숨진 분은 서른다섯, 지게차 운전자는 서른일곱 살이야. 저 한창 나이에 둘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맞고 나라와 회사는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결국 너희 책임이야” 하며 무심히 혀만 차는 나라라면 이건 인간을 위한 나라가 아닐 터. 밀려드는 공산군에게 ‘인간의 얼굴’로 맞섰던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의 결연한 열 번째 계명을 떠올리면서 아빠 역시 저 사건을 잊지 말자고 굵직하게 새겨넣고 싶구나.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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