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청소대행업체 환경미화원의 하루 근무시간은 최소 10~11시간이다. ‘초과 근무 수당’ 따위는 바라지도 못한다. 1년차나 30년차나 월급이 같다.
정길화씨(47)는 2년6개월 전, 좋아하던 담배를 끊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청소 대행업체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부터다. 하루 12시간 쓰레기를 치우고 받는 돈은 월 137만원. 하루에 담배 한 갑씩, 한 달이면 7만5000원이다. 초등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생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키려면 담뱃값을 아껴야 했다. 동료 정광영씨(40)도 같은 이유로 담배를 끊었다. 1t 트럭을 끌고 충신동 등지를 청소하는 정씨는 월급 140여 만원 중 차 기름값과 보험료, 수리비 등을 빼고 100만원 안팎을 집에 가져간다. 정씨는 “우리 중 대부분은 비싸서 술·담배를 못한다”라고 말했다.

6월26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가하고 ‘태업’을 했다는 이유로 직장 폐쇄를 당한 뒤, 두 사람은 동료 40여 명과 함께 거리에 앉았다. 종로구청 앞에서 연일 집회를 열었다. 회사에서 “노조를 탈퇴하면 다시 일을 시켜주겠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 42명이던 집회 참가자 수가 1주일이 지난 뒤 30여 명으로 줄었다. 7월1일 낮 12시, 종로구청 앞에서 농성하던 환경미화원이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을 찾아 앉았다. 이제 월급도 나오지 않는데, 환경미화원은 모두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환경미화원도 계급이 있다

환경미화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고용한 ‘직영 환경미화원’과 민간위탁 대행업체에 소속된 ‘용역 환경미화원’이다. “환경미화원 채용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박사학위 소지자까지 모래 자루를 이고 운동장을 달립니다”라는 텔레비전 뉴스 속의 환경미화원은 ‘직영 환경미화원’이다. 평균 초봉 2900만원에 자녀 학비, 각종 복지수당까지 지급돼 인기가 높다. 대행업체 환경미화원은 직영의 반토막 월급을 받는다. 정해진 근무시간도 없다. 하루 13시간이든 14시간이든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한다. 초과 근무 수당도 없다. 용역 환경미화원들은 스스로를 “노예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기대하지 않는다. “직영 환경미화원이 받는 수준에 상당하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라는 지자체와 업체 간 계약 내용이 ‘형식’일 뿐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다만 ‘최소한의 인간적 처우’를 바랐다. 직영 미화원 28명이 일하던 지역을 대행 미화원 5명이 감당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낮 11시까지 일을 시킬 때면, 수당은 몰라도 주린 배를 채울 컵라면 값이라도 받고 싶다고 했다. 회사에서 청소 장비를 지급해주지 않아 개인 돈으로 오토바이와 차를 사서 이용한다면 수리비라도 지원해주길 원했다. 샤워실과 냉난방 시설, 컬러 TV와 컴퓨터를 갖춘 직영 환경미화원 수준의 휴게실은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밤새 음식물 쓰레기를 만져 더러워진 손이라도 씻고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수도시설만은 설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던히 싸웠다. 종로구 대행업체 환경미화원은 2004년 3월 노동조합을 꾸리고 ‘투쟁’하기 시작했다. 3년간 연차수당을 탕감하는 조건으로 당시 113만원이던 임금을 30만원 올렸다. 1년 뒤에는 사람을 줄이는 대신 19만원을 더 받기로 합의했다. 조르고 졸라 올해 초에는 컨테이너 휴게실에 겨우 전기

ⓒ시사IN 변진경대행업체 환경미화원은 대부분 자기가 구입한 오토바이를 개조해 청소 장비로 쓴다
를 들여왔다. 그때까지 환경미화원은 밤에 촛불을 켜놓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회사는 늘 돈이 없다고 했다. 민간 위탁대행 계약 전에 원가계산을 해 용역비를 지급하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서울시는 업체가 쓰레기봉투 판매 수입을 챙기는 대신 용역비를 받지 않는 ‘독립채산제’ 계약 방식을 택했다. 서울시 위탁 업체 가운데 하나인 대승기업 배우주 전무는 “쓰레기봉투 값은 1999년 이후 그대로인데 유가 등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 업계 전체가 적자다. 그건 노조도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특별위원회를 꾸려 청소 대행위탁 실태 점검을 벌인 종로구의회 이종환 의원은 “참고 자료를 달라고 해도 자기네한테 유리한 자료만 주는 등 대행업체가 얼마를 벌고 얼마를 손해보는지 명쾌히 알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독립채산제 계약방식 자체가 법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 자치 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는 지자체가 민간업체와 외주계약을 맺을 때 재료비와 노무비 등 5개 항목을 포함한 원가계산서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명시해 놓았다. 독립채산제는 민간위탁 대행 계약 전에 원가계산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원청업체’인 지자체를 찾아간 환경미화원들은 늘 “내 알 바 아니다”라는 답변만 들었다. 민간 위탁을 맡긴 이상 임금 등 처우 개선은 철저히 업체 내 노사문제라는 것이다. 종로구청 이종인 청소행정과장은 “아웃소싱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니냐. 우리가 업체 내부 사정까지 일일이 신경 쓰며 참견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종로구 평아실업 소속 환경미화원 정구율씨는 관청의 ‘무한책임’을 주장했다. “청소업무는 지자체의 고유 공공업무라 알고 있다. 공공 서비스라면 아무리 민간으로 넘겼다고 해도 용역업체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는지, 인권 유린은 안 하는지 관청이 관리 감독하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

노조활동 없는 곳 “숨도 못 쉬며 일한다”

대행업체와 관청은 환경미화원의 잦은 파업과 투쟁 원인을 ‘강성 노조의 확산’으로 보았다. 종로구

ⓒ시사IN 변진경환경미화원 휴게실은 컨테이너 박스이다. 올 초부터 전기가 들어왔다. ‘개인이 각자 관리하도록 정해진’ 음식물 쓰레기통 때문에, 휴게실에 외출복을 걸어놓았다간 금세 냄새가 배어버린다
이종인 청소행정과장은 “다른 구 환경미화원 보수도 이곳과 마찬가지인데, 유독 노조가 강한 여기만 시끄럽다”라고 말했다. 종로구청 김주회 복지환경국장도 지난 5월 열린 구의회 임시회에서 “상대가 전략의 고수인 민주노총이라 대화하기 힘들다”라고 밝혔다.

환경미화원들은 노조가 말썽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감춰진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낸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청소용역업체 비리 척결을 위한 이천공동대책위원회’ 이양수 공동집행위원장은 “노조 활동이 없는 곳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잠재된 청소 대행업체 문제가 하나씩 들춰지면서 앞으로 이런 갈등이 더 많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건설 ‘노가다’도 이렇게는 안 한다”

그나마 노조가 활동하지 않는 청소 대행업체의 환경미화원들은 “숨도 못 쉬며 일한다”라고 증언한다. 양대수씨(가명·52)는 지난 2월 당시 일하던 청소 대행업체보다 임금이 30만원쯤 높다고 소문난 다른 업체로 직장을 옮겼다가 지금 후회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 불러내서 쓰레기를 치우라고 시켜놓고 수당을 안 주는데도 아무도 찍소리를 못한다. 항의하는 사람에게는 청소 구역을 힘든 곳으로 바꿔버리는 벌을 주기 때문이다.”

김성주씨(가명·56)는 양씨가 일하는 회사에서 대표 친인척이 포함된 ‘유령 노조’ 대신 새 노조를 결성하려다 사측에 발각돼, 지난 5월 해고됐다. 김씨는 “대행업체 환경미화원이 대부분 나이가 많고 생활도 어려워서 웬만하면 그냥 꾹 참고 일하려 한다. 회사는 그걸 악용해서 노예처럼 사람들을 부린다”라고 말했다. “10명이 맡던 지역에 5명만 남겨도 악착같이 어떻게든 일을 해냈다. 겨우 요령이 붙어 적응하기 시작하면 회사에서는 ‘어, 일이 편한가 보네’라며 또 사람을 줄이는 거다. 건설 현장 노가다도 이렇게는 안 한다.”

김씨는 오히려 회사보다 해당 관청이 노조 결성을 막는다고도 했다. “노조가 생기면 대행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식으로 업체를 협박한다. 내가 노조를 꾸리려고 한다는 정보도 지자체에서 회사로 줬다고 들었다.” 일자리를 잃은 뒤, 김씨는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대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청소 대행업체 면접을 보고 지금 전화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에 취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꾹 다물고 시키는 대로만 할 작정이다.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듬어만 달라”

7월9일 서울 종로구의회는 ‘청소대행위탁 실태점검 특별위원회’가 낸 폐기물 관리조례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존 수의계약제를 경쟁입찰제로 바꾸고 종로구청의 지도감독 의무를 보완했다. “내 알 바 아니다”라던 종로구청은 “시정할 내용은 시정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단계적으로’라는 단서를 붙였다. 이종인 청소행정과장은 “환경미화원이 요구하는 게 결국 임금 문제다. 이만큼은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주장의 범위가 너무 넓어 접근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환경미화원들 말은 달랐다. “그래도 공공서비스를 행하는데, 자부심 느끼며 일하도록 조금만 더 인간적으로 대해달라. 대행업체 환경미화원 일을 견디는 사람은 정말 최악의 상태다. 마음도 여리다.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듬어만 달라. 더러운 것 만지고 돌아서면 무시당하고…. 담당 공무원이 ‘청소나 하는 주제에’라는 눈빛으로 볼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다.” 환경미화원들이 바라는 건 돈이 다가 아니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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