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위기 국면을 극적으로 피했다. 지난 8월25일 새벽 남북 협상 대표들이 채택한 공동보도문은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커다란 전환을 예고해주고 있다. 70년 묵은 불신과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당국 회담의 정례화, 이산가족 재상봉, 그리고 민간 교류의 확대 등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 등 앞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이 숱하게 많다.

특히 북핵 문제 진전 없이 한반도의 신뢰 구축과 평화 공존은 불가능하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는 더 이상 없다’며 경제 발전과 핵무기 개발의 동시 추진이라는 병진노선에 매달리고 있다. 미국 또한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한 양자대화나 6자회담 복귀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 둘 간의 기 싸움에 한국과 중국은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다. 정말 출구가 없는 것일까?

최근 타결된 이란 핵 협상에 답이 있어 보인다. 현재 공화당 중심의 보수 강경파와 이스라엘 정부, 그리고 유대인 로비스트 등은 이번 협상 결과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란과의 핵 협약을 상원에서 비준받기 위해 홍보전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들의 설득 논리를 참고할 만하다.   

가장 강력한 논리는 “외교냐 전쟁이냐” 하는 이분법적 접근이다. 협상론자들은 ‘상원이 이란 핵 협약을 거부하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고 미국의 군사행동은 전쟁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승리를 담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전쟁을 치러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완전한 핵 폐기 없이 협상은 없다(all or nothing)’라는 강경파의 주장에 대해 ‘핵무기를 가진 이란’보다는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핵무기 없는 이란’이 훨씬 낫다고 맞선다.

우선순위에 대한 방어도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핵무기 보유는 물론 헤즈볼라와 같은 테러 집단과 시리아의 아사드 독재정권 지원, 걸프 지역의 불안 조성, 이슬람 신정체제에 의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탄압 등을 이유로 이란과의 협상을 반대해왔다. 이 점에 대해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핵 문제가 가장 중요한 선결 사항이고 이것이 해결되면 다른 문제들을 풀기가 더 쉬워진다’고 반박하며 부차적인 문제로 판을 깨지 말라고 압박한다. 제재와 압박에 대한 견해도 흥미롭다. 협상 과정에서 제재는 유용했지만 현 단계에서 추가 제재와 압박은 역풍을 불게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10여 년간의 대이란 제재가 이란 주민들의 삶을 어렵게 해왔고 그 결과 로하니 대통령 같은 온건파가 집권할 수 있었다. 이번 핵 협상 타결도 부분적으로 그 결과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번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 추가 제재를 가할 경우, 온건파의 입지는 매우 약화되고 이란의 성직자와 군부 강경파를 도와주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 협상론자들의 주장이다.

10월 방미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노력을 기대

이란 모델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제재와 압박, 그리고 군사적 행동 모두 대안이 될 수 없다. 이제 미국은 ‘전략적 인내’ 정책을 버리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란의 경우처럼 북한의 비핵화를 지향하되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핵무기 폐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현 수준에서 북한 핵을 동결하고 2·13 합의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원자력과 우주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북한의 주권적 권한도 인정해줘야 한다. 나아가 북한도 이란처럼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비핵화에 역점을 두어야지, 핵·인권·사이버 안보 등 전방위 공세를 펴다가는 파국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협상팀도 바꿔야 한다. 존 케리 국무장관, 빌 번스 전 국무장관, 웬디 셔먼 국무차관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달라붙었기에 이란 핵 타결이 가능했던 것이다. 대니얼 러셀 국무부 아태차관보, 성 김 6자회담 수석대표, 그리고 시드니 사일러 차석대표로 구성된 미국의 현 대북 협상 진용으로는 안 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해야 한다.  

임기 1년을 남겨둔 오바마로서는 그런 조치를 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한국이 나서야 한다. 판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과 제2의 페리 프로세스라도 시작할 수 있도록 정치적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다행히 남북 관계에 물꼬가 트였다. 여기에 북·미 관계 개선의 계기만 마련되면 북핵 문제 타결의 결정적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이번 10월 방미 때 박 대통령이 그런 큰 그림을 가지고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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