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 6만명에 이른다. 해마다 한두 명이 가출하거나 무단결석을 했다가도 다시 학교로 돌아오곤 하던 우리 학교에서도 올해는 장기 결석자가 많이 늘었다.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가 다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 스스로 또는 가정에서 건강한 대안을 가지고 학교를 그만둔다면 굳이 말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 그만둘까’ 고민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대안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궁지에 몰려, 어쩌면 누구나 가장 평범하게 누릴 수 있는 학교라는 공간마저 포기하게 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학교는 어떤 곳인가. 학교폭력과 교사들의 차별, 치열한 입시 경쟁, 성적 경쟁이 존재하고, 친구는 우정의 대상이 아니라 폭력과 따돌림의 가해자인 곳. 현실에서 쓸모 하나 없는 죽은 지식을 가르치는 곳. 내용은 없으면서 규율과 형식만 있는 곳…. 그럴 수도 있다. 그런 면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런 학교에도 충분하지는 못해도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고 몇몇 다정한 선생님과 어른들에게 배울 거리가 있다고 소심하게 주장해본다. 생업에 바쁜 부모들에게는 가장 저렴하게, 가장 보편적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보호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박해성 그림

나는 가난한 가정 형편과 현실에 치여 학교에 와서 만날 엎드려 잠만 자는 아이들을 여럿 알고 있다. 일어나 공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야단도 치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학교에 나오는 그 아이들이 기특하다. 지각·조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석은 하지 않는 아이들, 만날 공부 안 한다고 구박받아도 쉬는 시간이면 신나게 복도를 질주하는 그 아이들을 보면 안심이 된다.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일주일 내내 빨지 않아 소매 끝이 새까매진 교복을 입고서라도 학교에 와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그들이 만약 학교마저 오기 싫어한다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PC방과 찜질방, 뒷골목을 전전하는 일 말고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아무리 성적이 바닥을 쳐도 아무리 학교가 재미없어도, 그래도 거리를 헤매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겨 와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그런데 그마저도 못 견디고 못 나오겠다는 아이들이 있다.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 결석하는 아이들 중에는 부모가 이혼하고 엄마와 아빠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상처받은 아이, 혹은 부모와 함께 살지만 여러 여건 때문에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많다. 외로움을 게임으로만 달래느라 밥 먹을 때 말고는 방문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드는 아이들, 집에 가봐야 따스하게 돌봐주고 야단이라도 쳐주는 부모를 만나기 어려운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에너지’조차 없는 아이들을 어쩌면 좋을까

학업 중단 위기에 처한, 대개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남자아이들의 경우 우울이 그저 안으로만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나 일탈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 아이들과 상담을 하면서 함께 상담에 참여하는 교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문제는 에너지다.” 아이가 뭐라도 해보고 싶어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고 있거나 그 에너지가 부모와 상충돼 충족이 되지 못하는 경우는 그래도 낫다. 갈등이 해소되고 길을 모색하면 아이는 꼭 학교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낸다. 그러나 그런 에너지조차 없는 아이들이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영혼의 불빛이 꺼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은 내년이 되어도 다시 복학할지 어떨지 불확실하다.

올해 결국 유예 신청을 한 아이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어머니가 사려 깊은 분이어서 어떻게든 아이가 기운을 내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었다. 서류 정리를 하러 학교에 온 그 어머니 편에 자전거 만들기 프라모델 한 상자와 지난해 담임, 올해 담임, 전문상담사 선생님과 함께 쓴 손편지를 전해드렸다. 방 안에 숨어 있다가도 선물상자가 눈에 밟히면 자전거도 만들고 책도 읽으라고, 그렇게 외로운 싸움에서 스스로 이겨내고 내년에 꼭 다시 학교로 돌아오라고, 너를 기다리는 선생님들이 여기 있다고, 꼭 전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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