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농담이지만 너도 이해하는 농담일 거야.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이 병사를 다그치며 “고지가 바로 저기다!” 하고 외치다가 갑자기 우뚝 선다. 그리고 머리를 긁으며 소리를 지르지. “이 산이 아닌갑다.” 병사들이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려 또 다른 봉우리 정상에 닿았지만 또 한 번 나폴레옹이 내지르는 소리에 쓰러지고 말지. “아까 그 산인갑다.” 물론 군사 천재인 나폴레옹이 이런 실수를 한 적은 없어. 나폴레옹의 이름만 빌려 무능한 장군의 폐해를 비꼬는 것이지. 기실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유능한 적이 아니라 무능한 우리 편이야. 그게 우리 편 대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유능한 적은 우리를 고생시킬 뿐이지만 무능한 장군은 우리 편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 가니까.

1597년 3월25일 〈선조실록〉에는 이순신이 잡혀간 뒤 부임한 원균이 적선 세 척을 포획하고 일본군 머리 47개를 바쳤다는 기록이 등장해. 기이할 만큼 이순신을 싫어했던 선조 임금의 입이 벌어지지. “통제사 임명을 받자마자 공을 세우니 가상하도다.” 그런데 신하들은 삐딱했어. 그들은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었거든. “원균이 바친 왜군의 머리가 만약 나무를 베러 온 이들의 것이라면 문제가 다릅니다.” 이게 무슨 얘길까.
 

ⓒ거제관광개발공사 제공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했다. 전쟁 발발 이후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패배한 해전이다.

다른 보고에 따르면 이 일본군은 3월 초, 조선군과의 양해하에(당시는 휴전 비슷한 상태여서 이런 일이 가능했어) 나무를 베러 온 병력이었어. 조선 수군이 나타나자 기겁을 하고 땅에 엎드렸고 원균도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술까지 먹인다. 일본군들은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얼굴들이 벌게서 자기들 배를 타고 돌아가는데 갑자기 원균이 공격 명령을 내려. 정예병이라기보다는 보급 임무를 맡은 일본군이었지만 이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목숨을 걸고 싸워. 이 서슬에 고성 고을 사또였던 조응도가 전사하고 배마저 빼앗겼다가 그 배를 불태우고서야 왜군들을 ‘전멸’시킬 수 있었단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원균은 이른바 ‘폼’을 잡고 싶었던 것 같아. 이순신이 통제사로 있을 때 “내가 통제사라면 부산까지 들이칠 겁니다!”라고 기염을 토하고서 통제사가 됐으니 임금에게 ‘원균이 하면 다르다’는 것을 어필해야 했고, 결국 나무하러 온 배를 공격하는 무리수를 두고 만 거야. 그것도 그냥 쳐버리면 욕먹을 것 같으니 ‘도망가게’ 한 뒤 그를 추격(?)하는 쇼까지 벌인 거지. 하지만 세상에 비밀이 있나. 일본군 장수가 부들부들 떨면서 항의해왔거든. “땔감 장만하러 간 병사들을 이렇게 할 수 있소? 우리는 조선 백성들에게 분풀이를 하겠소.”

후일 원균은 수군으로 부산 단독 공격에 나섰다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고 자신도 목숨을 잃어. 이순신이 어명을 어겨가면서까지 피해보려던 그 전장이었지. 무능한 사람이 과욕을 부릴 때, 더구나 그가 수만명의 목숨을 책임진 장군일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지. 전쟁 발발 이후 한 번도 진 적 없는 조선 함대는 그 한 번 싸움으로 괴멸하고 말았으니까.

무능한 이들이 탐욕을 부리는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부패(腐敗)야. 얼마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무능한 청렴보다 유능한 부패가 낫다”라는 말이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헛소리란다. 왜냐면 부패 자체가 최악의 무능이고,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무능하게 만들어버리는 병균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지.

임진왜란이 터지고 부산진이 함락됐을 때, 경상도 울산에 주둔하던 경상좌병사 이각은 군대를 이끌고 동래성으로 왔지. 하지만 막상 일본군의 전력을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거야. 겁에 질린 이각은 성 밖에서 싸우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줄행랑을 쳐버리지. 경상좌도, 즉 낙동강 동쪽 지역의 총사령관이 말이야. 이 무능한 자가 울산의 병영에 돌아가서 한 일은 자신의 애첩과 함께 무명 1000필을 나귀에 실어 서울로 보내버린 거였어. “이런 법은 없습니다!” 행정 책임을 맡은 부하가 이를 막아서자 이각은 서슴없이 그의 목을 쳐. 무능한 자가 탐욕을 부리면 부패하기 마련이고, 자신의 부패를 방해하는 이들에게 잔인하기 마련이야.

 

ⓒ연합뉴스8월12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원균도 한숨 쉬게 만들 국방부 장관의 번복

이런 자들이 나라의 운명이 달린 막중한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지만 슬프게도 우리 역사에는 그런 일이 빈번했단다. 그 가운데 돋보이는 이름 하나를 들면 김경징이라는 사람이야.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봤듯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만주족 기병대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압록강에서 서울까지 단숨에 내달렸고, 임금과 세자는 원래 피란 예정지인 강화도에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지. 강화도에는 세자빈과 세손, 왕자들이 먼저 피신해 있었는데 이 강화도의 수비 책임자가 바로 김경징이었어. 그는 당시 조선의 영의정 김류의 아들이기도 했지.

이 인간이 강화도의 수비 책임자로서 한 일은 오로지 술 마시고 노는 거였어. 식량을 징발한 뒤에는 자기 아는 사람한테만 나눠주어 원성을 샀고, 청나라 군대가 배를 만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서도 아무 방비를 세우지 않았지. “청나라 놈들이 날개가 있지 않고서야 어찌 저 바다를 건넌단 말이냐.” 요즘 말로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었던’ 이 무능한 장군은 청나라 군대가 배를 타고 강화도에 들이닥치자 누구보다도 재빠르게 튀어버린단다. 얼간이 장수의 뒤에서 조선 백성의 비명은 하늘을 찌르고 바다를 덮었지. 후일 이 말도 안 되는 범죄적 무능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경징은 사약을 받지만, 영의정 집 귀한 자식이니 죽이지는 말자는 논의가 힘을 얻기도 했어.

아빠는 네게 이 모든 것은 옛날이야기일 뿐이며 요즘은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괴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싶단다. 그러나 아빠의 소망은 이뤄질 것 같지 않구나. DMZ에서 북한이 묻었다는 지뢰가 터진 뒤 국방부 장관은 북한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8월4일 청와대에 했다고 밝혔는데, 청와대에서 8월5일 보고받았다고 펄쩍 뛰자 자신이 착각한 것 같다고 말을 바꿨어. 국방부 장관이 보고 날짜를 헛갈린 것이면 허무할 정도로 무능한 일이고, 청와대 처지를 생각해서 덤터기를 쓴 거라면 자리를 지키려는 욕심에 진실을 가리는 일. 임금에게 잘 보이겠다고 나무하러 온 일본군을 공격한 원균조차도 한숨을 쉴 일 아니겠니.

지뢰 폭발로 젊은 하사관 두 명이 다리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 폭탄주를 들이켰다는 합참의장님을 보면 강화도를 지키던 김경징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고, 해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가 수억원대 뇌물을 받아 챙긴 죄로 10년 징역을 선고받은 사건까지 끄집어내자면 창고에서 무명 1000필을 빼내 첩과 함께 빼돌렸던 경상좌병사 이각이 오히려 순진해 보이는 황망함에 처하게 돼. 대체 이들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이 원균 같고 이각 같고 김경징 같은 장군님들에게 내 가족과 나라의 안전을 맡길 수 있을까. 요 며칠간 대한민국 장군님들이 벌인 무능과 부패와 탐욕의 퍼레이드를 보면 아빠는 이렇게 외치고 싶어진단다. “이 나라가 (내가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내 나라가 아닌갑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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