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핑 베토벤〉은 거장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 자신의 미치광이 인생을 어떻게 위대한 예술로 승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물론 그런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1824년 5월7일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초연하기 며칠 전부터 1827년 3월26일 베토벤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의문스러운 마지막 3년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얘기는 이렇다. ‘합창’ 초연을 코앞에 두고 베토벤을 돕겠다고 찾아온 여성 ‘안나 홀츠’는 작곡가가 그린 악보를 여러 장 베껴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나눠주는 카피스트(copyist)다. 일개 ‘도우미’ 주제에 감히 베토벤의 악보를 임의로 고쳐 그렸는데도 혼쭐이 나는 대신 외려 호기심 어린 찬사를 받는다. 절대음감 때문이다. 결국 잃어버린 청력 때문에 마지막까지 망설이며 실의에 빠진 베토벤을 다독여 기어이 ‘합창 교향곡’ 초연 무대에 세우는 주인공이 안나 홀츠다. 그리고 그가 무사히 연주를 마칠 수 있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는 것 또한 그녀의 임무이며, 베토벤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는 것 또한 그녀의 몫이다. 이쯤 되면 할 얘기를 다 한 거겠지, 속단할 무렵, 이제 영화는 단지 베토벤을 ‘카피’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는 19세기 어느 무명 예술가의 꿈과 열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대답을 얻는 사람은 대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가 그런 사람이다. 기록에 따르면 ‘합창 교향곡’ 초연 당시 무대에 올라가 귀가 안 들리는 베토벤을 돌려 세워 환호하는 객석을 보게 만든 여성이 있다고 한다. 감독은 그 짤막한 기록에서 카피스트 안나 홀츠를 상상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이 어떻게 ‘합창’을 작곡했을까, 나아가 그런 귀로 어떻게 직접 무대에 올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 있었을까, 혹시 숨은 조력자가 결정적 도움을 준 건 아닐까,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며 이 솔깃한 이야기를 창조해낸 것이다.

해리스의 '똘끼' 어린 연기 볼만해

어느 미술 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다.
“거실 벽에 반 고흐의 작품을 걸어놓는다면 굉장한 자랑거리가 되겠지만 만일 반 고흐가 직접 거실에 앉아 있다면 당신은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 표현,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카핑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연주 장면은 굉장한 자랑거리다. 그리고 거실에 앉아 있는 베토벤을 보여줄 때도 당신은 그리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베토벤을 연기한 에드 해리스에게 ‘똘끼’(또라이 기질)충만한 예술가의 초상은 낯설지 않다. 해리스는 현대 추상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삶을 그린 영화 〈폴락 Polloc〉(2000)에서 주연을 맡으며 직접 연출까지 해낸 적이 있다. 솔직히 잭슨 폴록의 인생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하도 폴록을 닮았으니 한번 도전해보라고 등을 떠미는 통에 선택한 작품이었다. 이번에는 등을 떠미는 사람도 없었는데 스스로 하겠다고 나섰다. 예술가의 ‘똘끼’를 재현한다는 게 얼마나 짜릿한 경험인지 익히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똘끼’ 어린 연기를 보는 짜릿함은 우리가 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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