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다가오면 이번엔 네게 무슨 얘기를 들려줄까 골똘해지곤 한다. 그래서 괜히 신문도 뒤적이고 인터넷도 뒤지는데 이런 기사가 눈에 띄는구나. 새누리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이 ‘국정 교과서’를 통한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이신 것이지.

먼저 이분의 말을 잠깐 옮겨볼게. “(현재 역사 교육은) 우리의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 어린이들에게 부정적 역사관을 심어주는 역사 교육체계를 바꾸기 위해 국정교과서로 바꿔야 한다.”

국정교과서를 한자로 쓰면 ‘國定敎科書’, 즉 나라에서 이렇게 저렇게 가르치라고 허용한 내용만 담은 교과서라는 뜻이야. 그런데 과연 이런 교과서로 공부하면 아이들의 역사관이 일사불란하게 긍정적이 되고, 우리 역사에 자긍심을 갖게 될까?

아빠는 여당 대표의 말씀이 새빨간 거짓말이거나 정말이지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란 걸 3초 내에 증명할 수 있어. 바로 아빠가 증거야. 아빠 세대와 그 이전 세대 전부가 ‘국정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배웠거든. 하지만 아빠나 아빠 친구들 대부분은 저분들 보기에 ‘긍정적인’ 역사관을 지니고 있지 않구나.

국정교과서의 문제가 뭘까? 우선 ‘나라가 정한다’는 말의 사기성이야. 나라가 정하는 게 아니라 교과서를 만들 당시에 권력을 쥔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권정교과서’(權定敎科書)라는 거지. 예를 들어줄까? 아빠가 청소년기를 보낸 1980년대 초반 국정교과서는 제5공화국 출범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단다.
 

ⓒ연합뉴스지난해 9월25일 교원단체와 교사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10월 유신 이후 성립한 제4공화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적 징후를 보였다. (…)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10·26 사태(박정희 대통령 피살)를 맞았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북한 공산군의 남침 위기에서 벗어나고 국내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정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각 부문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 후 국민투표로 확정된 새 헌법에 따라 당선된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여 새 정부를 이끌어 나감으로써 제5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어럽쇼? 이 교과서에는 전두환이 1980년 광주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고,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도 언급이 없어. 그리고 전두환은 새 헌법이 나오기 전, 즉 제5공화국 출범 전 이미 대통령이었단다.

그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대통령 선거인단을 체육관에 모아놓고 실시한 선거에서 총 2525명 투표자 중 2524명의 찬성표를 받아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지. 찬성표가 아닌 한 표도 반대표가 아니라 기표 실수로 나온 무효표였어.

그런데 바로 그 무렵 아빠가 배우던 국정교과서는 북한 선거가 “100% 투표에 100% 찬성”을 자랑한다며 그게 무슨 선거냐고 비웃고 있었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제5공화국에 대한 묘사는 지금 읽어도 ‘헐’ 소리가 터질 지경이네.

“제5공화국은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모든 비능률, 모순, 비리를 척결하는 동시에,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민주 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게 빛날 것이다.” 아, 이 얼마나 긍정적인 역사관이냐. 이쯤 되면 너도 ‘국정교과서’를 고집하는 이들의 심사를 짐작할 수 있을 거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했던 국정교과서를 계속 끄집어내는 여당 대표는 며칠 전 이런 말씀도 하셨더구나.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민족사 최초로 자유 민주 선거를 시행하고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다진 대통령이며, 한국전쟁 때는 외교력을 발휘해 공산화되는 것을 막았고, (…) 이제 건국의 대통령으로 제대로 대우해드릴 때가 됐다.” 당연히 그분이 국정교과서에 담고 싶은 내용도 이 부분이겠지.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모시자는 말도 했으니까 말이야.


 

ⓒ연합뉴스
“서울 사수” 대통령 방송 믿은 국민만 당했다

하지만 아빠는 네가 그런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기를 바라지 않는다. 틀린 얘기니까. 첫째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 사람이야.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제헌헌법은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했지) 전쟁 중인 군대를 동원해 국회의원들을 잡아 가두고는 억지로 개헌안을 통과시켰고, 수백만 표를 얻은 야당 후보를 간첩으로 몰아 죽였으며, 신문사를 강제로 폐간시키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언론 자유를 짓밟았어.

결국 그는 ‘자유 민주 선거’의 심장에 칼을 꽂은, 세계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한 사람이야. 이런 이가 어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다진’ 인물로 격상될 수 있겠니. 아니 고기를 ‘다지다’고 할 때의 그 ‘다지다’라면 맞을 수도 있겠다. 자유민주주의를 “여러 번 칼질하여 잘게 만든” 사람이라는 뜻이라면.

둘째, 6·25 전쟁의 참화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은 것은 맞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화되지 않은 것이 맞아. 전쟁이 나자마자 자기 혼자 살겠다고 내뺀 것도 모자라 도망간 곳에서 “서울 사수” 방송을 녹음하고 장정들 수십만을 모집해설랑 그들을 먹이고 입힐 것을 빼돌려 수만명을 굶겨 죽이고 얼려 죽인 자를 극력 옹호했으며, 제 나라 양민을 학살한 군인들을 두고 “부끄러운 치맛 속은 보는 게 아닙네다”라고 말하던 사람이 대통령이었거든.

올해 아빠의 이모와 외삼촌이 연달아 돌아가셨지? 아빠의 외삼촌은 참전용사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셨어. 아빠의 식구들은 6·25 초기 피란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었어. “수도 서울을 사수합네다” 하는 한국말 서툰 대통령의 방송을 믿었기 때문이지. 아빠의 외삼촌은 서울을 다시 국군이 탈환하기 전까지 석 달간 인민군을 피해 죽을힘을 다해 도망다녔고 서울 수복 후 북진하는 국군에 입대하셨어.

아빠의 이모는 당신의 아버지, 즉 아빠의 외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하러 사방을 헤매셨지. 아빠의 외할아버지는 철도원이셨어. 어쩔 수 없이 끌려 나가 서울역에서 일을 했고 이게 ‘죽을죄’가 돼서 총살만 기다려야 했던 거야.

참전군인의 가족인데도 말이지. 어찌어찌 외할아버지는 구명이 됐지만 그때 서울 시내는 국군과 경찰, 우익 청년단에 의해 죽임을 당한 ‘부역자’들의 시체가 굴러다녔다고 해. 아빠 이모는 생전에 그렇게 말씀하셨단다. “아버지를 구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한숨 돌리고 나니 내가 그 시체들 머리를 차며 뛰어다녔더라.”

그 사람들은 대부분 이승만 대통령을 믿고 피란가지 않은 서울 시민이었고, 인민군 따발총과 동네 공산주의자들의 죽창이 무서워서 인민군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노래 배우고 구호를 외친 사람들이었어.

그런데 이승만 정부는 자신들의 죄 대신 국민의 행동에 추상같은 책임을 물었고, 자신이 국민들을 팽개친 배신은 생각지 않고 버려진 국민의 ‘부역’에 총부리를 들이댔지.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고 단 한 점 거리낌도 없었어. 이런 사람이 대통령으로 전쟁을 지휘한 나라가 없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아빠는 기적이라고 생각해.

하물며 이 사람을 국부(國父)로 모시자는 말에는 그저 아득해질 뿐이야. 요즘 ‘헬조선’이라고까지 불리는 팍팍하고 암담한 분위기의 나라이지만 아빠는 적어도 이 나라의 ‘애비’가 이승만처럼 잔망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당연히 네가 배워야 할 교과서도 그렇게 잔망스러워서는 안 된단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