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고 고소당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부 학원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 교육 현장에서는 더 이상 학생을 때리지 않는다.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선생과 제자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랑받는다’는 전제를 공유하지 않으면 훈육조차 어렵다. 훈육과 체벌의 경계가 모호한 까닭에 선생이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대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가정 내 체벌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대전제가 모든 폭력을 정당화한다. 시험이 끝난 후 가족끼리 밥을 먹다가 밥그릇이나 먹던 과일로 맞았다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아버지로부터 날아오는 리모컨을 맞기 싫어서 피했다가 방 안에 갇힌 채 두들겨 맞거나 집에서 도망가려다가 현관에서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 들어갔다는 ‘무용담’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집이야말로 폭력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체벌의 원인은 대부분 성적이다. “네게 부족할 것 없이 다 투자했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라서” “너만 잘하면 우리 가족이 이렇게 화목한데” “집안 어른들 보기 창피하다” 따위 부모의 말은 성적이 안 나오면 맞아야 한다는 당위를 성립시킨다. 물리적·언어적 폭력에 계속 노출된 아이들은 시험을 보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는다. 맞을 걱정 때문이다.
 

ⓒ박해성 그림

부모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아이들도 안다. 게다가 본인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 속에서 폭력은 만성화된다. 피해자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인정하지 않게 된다. 폭력은 암묵적 합의를 얻는다. ‘널 위한 일’이라는 명제는 견고해진다. 아이들은 ‘합의하에’ 맞는다.

“저는 맞아도 싸요”라는 말을 내면화한 아이들

“너 잘되라고 때리는 것이다”라는 한마디는 폭력을 훈육으로 둔갑시킨다. 아이 스스로도 “못하면 맞아야죠”라고 인정한다. 나만 공부를 잘하면 맞을 일이 없다. 이것은 못난 자신을 교정하기 위한 과정이다. 문제없는 가정에 문제를 일으켰으므로 학생들은 “저는 맞아도 싸요”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폭력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나면, 저항하지 않는 것이 당연해진다.

하지만 “부모님이 잘못했네”라는 선생의 말 한마디에 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원인 제공자’라는 비난을 더는 받고 싶지 않아서 자기를 방어했던 것이다. “나를 때린 부모가 밉다” “억울하고 속상하다”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됐다”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부모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푸념이 그제야 나온다. 마음이 풀린 다음에는 스무 살만 되면 꼭 집을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성적표가 나온 날, 코뼈가 부러질 만큼 얻어맞고서 호기롭게 집을 나온 아이가 있었다. 아이에게 청소년 쉼터에서 도움을 받으라고 권해봤지만 아이는 오히려 “그런 곳에 내가 왜 가요”라며 기가 막혀 했다. 아이에게 “그런 데는 결손가정이나 비행 청소년 등 문제 있는 애들이 가는 곳”이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에서 자란 ‘내’가 뉴스에 나오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와 같은 사람일 리가 없다. “나만 없어지면 이 가정은 행복하고 완벽할 것”이라는 아이들의 말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오늘은 몇 시간 맞을지 내기하자’고 말하면서도 아이들은 그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부모의 생각도 같다. ‘엄한 아버지라서 아이와 갈등이 있다’거나 ‘애 아빠 성질이 불같아서 그런 것’일 뿐, 우리 가정에 문제는 없다. 그렇다고 문제 상황을 학생에게 인식시키는 게 꼭 좋은 일만도 아니다. 아이가 지니고 있는 삶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아동복지법에 뭐라고 적혀 있든 부모가 ‘사랑해서’ 그런다는데 ‘외부인’인 선생은 그저 발만 동동 구를밖에. 하지만 가족의 논리가 어떠하든 아이가 성적이 낮기 때문에 맞는 게 당연하다고 배우는 것은 문제가 된다. ‘맞을 짓을 하니 맞고’ ‘무시당할 만하니 무시당한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내면화한 아이들이 오늘도 집에서 양산되고 있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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