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측이 제기한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거부반응을 보임으로써 일단 고비를 넘기는 듯하다. 공천 투표에 당원뿐 아니라 비당원도 참여하는 방식을 오픈 프라이머리라고 하는데, 미국에서 지역에 따라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거기에는 미국의 역사적·지리적 배경이 있다. 정당의 후보 공천은 본래 정당 고유의 일이다. 정당이란 그들의 정강정책을 선전하며 국민의 표를 얻어 권력을 획득하거나 권력에 접근하는 조직이다. 그러므로 여론은 공천의 공평성을 위한 중요한 참고자료에 그칠 뿐 그 자체가 정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공천을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의 어느 평론가는 그 제도가 민주·공화 양당의 중도화를 촉진하는 데 기여한다고 논평한 바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비당원도 참여하는 것이기에 비당원인 중간층을 흡수하기 위해 중도적인 정책을 내세우게끔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개혁이 절실한 사회다. 그런데 개혁정책은 힘을 잃고 양당이 모두 중도화되기만 할 때 어떠한 정치 상황이 초래되겠는가?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라고 말한 대통령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정치는 사실상 대기업들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고, 그들과 손잡은 보수(또는 극우) 거대 언론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만약에 오픈 프라이머리가 될 경우 선거법에 규제도 없는 상황에서, 후보 선정에 미칠 이 거대 언론들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질 것이다. 요즘 특히 일부 종편의 보도 행태를 보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금 국회에서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을 논의 중이다. 지역구 통폐합을 대폭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작업인 것처럼 보인다. 손쉬운 해결책으로 국회의원 정수 증원론이 나오고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독일 모델이 바람직스럽다 하겠다. 의석의 반쯤을 비례대표로 하여 대표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나머지 반은 지역구의 단순 다수 당선제로 하여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원리다. 그런데 근래 일부 논객이 비례대표를 없애고 중대선거구제로 하자고 제의한 게 관심을 끌고 있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례대표를 없애는 문제는 정치원리상 퇴행이므로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은 대표성의 원칙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정당 안의 파벌만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가령 영남에서 4~5인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로 할 경우 새누리당이 3~4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호남에서 야당의 경우를 생각해도 비슷하다. 그럴 경우 각 당내에 필연적으로 파벌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파벌 대립이 격화될 것이다. 지난날 일본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했을 때 4~5개 파벌이 사실상 당내의 당처럼 설쳤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역구 선거구제는 지금과 같은 1구 1인제가 괜찮다고 보인다. 비례대표의 수를 현행대로 유지하기가 지난한 일이겠지만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국회의 정원을 늘리는 문제는 세계 여러 나라의 경우에 비추어 우리나라의 의원 수가 많은 것은 아니어서, 논리상은 가능하다고 하겠으나 국민 정서에 비추어 현실적으로 어려우리라 보인다.

‘역린을 거슬렀다’고? 군주제에서나 쓸 법한 말이로군

그동안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일이 있었다. 유승민 의원은 여러 차례 소신껏 올곧은 발언을 해 국민에게 주목받은 바 있는데 그 소신 발언이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그때 역린을 거스른다는 표현도 있었는데 그것은 군주제 때의 표현이다). 유 의원은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그 대학은 진보적 학풍을 가졌다. 나치 독일에서 망명한 여러 진보 성향 학자들이 그 대학에 몰린 영향이란다. 야당일 때와 달리 여당에서 청와대의 타격을 받은 정치인이 재기해 성공한 예는 이제까지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유 의원이 원내대표를 사퇴하면서 인용한 헌법 제1조대로 우리는 민주공화국이고 그동안 민주정치는 대폭 신장되었다.  

유 의원이 사퇴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을 옮겨본다. “평소 같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자명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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