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룬 영화 〈블러디 선데이〉의 한 장면. 엔딩 타이틀에 U2의 ‘Sunday, Bloody Sunday’가 나온다.
지난 5월26일 일요일 새벽 5시. 서울 광화문우체국 앞이었다. 거리농성을 시도하는 시민들의 한가운데 나는 있었다. 전경들이 사방을 둘러싼 상태.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나 있었을 뿐이었다. 5시30분쯤이었나 보다. 비명과 함성이 뒤섞였다. 달려가 보니 누군가가 전경들 틈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연행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본격적인 몸싸움이 시작되고 하나 둘씩 시민이 전경의 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셔츠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다른 시민의 옷을 빌려 입고 다시 대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끌려갔다. 닭장차로 가는 길은 의외로 평안했다. 이제 막 첫 연행이 시작된 날이어서 그랬을까. 그래도 화가 났다. 절망이 뒤섞였다. 시내 한복판에서 경찰에 의해 다치는 사람들이 나오는, 말 그대로 ‘피의 일요일’이었다.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사건에도 같은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아일랜드 출신인 U2는 1983년 발표된 〈War〉의 첫 곡을 통해 음악으로 남겼다. “오늘의 그 뉴스가 믿어지지 않아요/ 눈을 감아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언제까지, 언제까지 우린 이 노래를 불러야 하나요?” 그 당시 보컬 보노의 나이는 겨우 스물넷이었다. 이 곡이 당시 영국 사회에 던진 반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소년 시절 이 노래를 들었던 스타세일러의 제임스 월시는 말한다. “북아일랜드의 트러블에 대해 노래를 쓴 건 정말 용감한 일이었다.” 그들은 이 노래를 포함해 사회적 메시지로 충만한 〈War〉를 통해 록에 지성을 재이식했고, 보수화하는 서방 세계에 양심의 소리를 전파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6월1일 새벽, 서울 종로구 삼청동 입구에 물대포가 처음 등장했다. 6월2일 월요일 새벽 5시, MBC FM 〈세상을 여는 아침, 허일후입니다〉의 첫 곡도 ‘Sunday, Bloody Sunday’였다. 라디오의 전파만큼이나 시민의 공분도 급속도로 퍼져갔다. 또 일주일이 지났다. 6월10일, 100만 개의 촛불 틈 속에서 수많은 음악이 떠올랐다. 암울한 시대의 벅찬 갈망을 담고 있는 노래, 피 끓는 계몽으로 가득 차 있지만 즐겁고 아름다운 노래, 그리하여 지금 바로 이곳에서 울려 퍼졌으면 하는 노래였다.

역사상 가장 신나는 선동가 밥 말리

역사상,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신나는 선동가로 남을  밥 말리의 ‘Get Up, Stand Up’이 딱 그날의 노래였을 것이다. “일어나, 일어나, 당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라”가 반복되는 이 노래는 서구의 집회에서 가장 애창되는 곡이다. 밥 말리 하면 그저 뛰어난 뮤지션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현명한 운동가이기도 했다. 1978년 4월22일, 밥 말리가 자메이카의 평화를 위한 ‘원 러브 피스 콘서트’를 개최했을 때다. 당시의 자메이카는 사회주의 계열의 인민국가당과 친미 보수 정당인 자메이카 노동당, 두 세력의 반목으로 실질적 내전 상태에 놓여 있었다. 밥 말리도 1976년 인민국가당을 지원하기 위한 콘서트에서 암살자의 총에 맞고 영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나빠지는 조국의 상황을 보다못해 귀국해 원 러브 피스 콘서트를 열었던 것이다. 공연의 막바지, 그를 보기 위해 모인 3만여 관객 앞에서 밥 말리는 외쳤다. “여기 두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인민국가당의 에드워드 시아가 당수와 자메이카 노동당의 마이클 맨리 당수였다.

갑작스러운 부름에 두 사람은 무대에 올랐고 밥 말리는 그들의 손을 각각 잡아 하나로 모아 다시 외쳤다. “20년 만에 자메이카에 평화가 왔습니다.” 3만 관객이 눈물 섞인 환호성을 보내며 밥 말리와 함께 ‘One Love’를 불렀다. 그때 자메이카 민중이 느꼈을 감동은 아마 6월30일, 흰 옷의 신부님들이 절정에 오른 공권력을 무력화시켰을 때 우리가 받았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밥 말리는 말한다.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 우리는 분명히 기로에 서 있다. 눌릴 것인가, 되찾을 것인가. 묻고 싶다. 그런 우리를 깨우치고 미래를 듣게 해줄, 지금 이 땅의 노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기자명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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