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 8월31일, 대한의사협회는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에 반대해 집단 휴진을 했다.
과거에는 당신이 어떤 약을 복용해야 할지 의사의 지시대로 따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말 많은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의사가 건넨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 약사가 성분이 같은 약을 모두 꺼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각 제품의 장단점과 가격을 소개한 뒤 환자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어떤 약을 드릴까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싼 걸로 주세요”라고 할까, “가장 비싼 (오리지널) 약으로 주세요”라고 할까. 당신의 대답은 매우 중요하다. 값싼 약을 고르느냐, 값비싼 약을 고르냐에 따라 의료계를 뒤흔든 성분명 처방의 운명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물론 값싼 약을 찾는 사람이 더 많을수록 성분명 처방의 운명은 훨씬 더 희망적이다.

그 전에 성분명 처방은 9월17일부터 내년 6월까지 테스트를 받는다. 국립의료원에서 시범 운영하는 것이다. 시범사업 대상은 성분 20개, 품목 32개, 제품 4백85개이다. 국립의료원 강재규 원장은 “95.3%가 10년 이상 안전성을 검증받은 제품이다. 시범 운영에 문제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곳이 있다. 대한의사협회(대한의협)다.

대한의협 박경철 대변인에 따르면, 성분이 동일하다고 인정받은 약품이라도 제품마다 효능이 제각각일 수 있어 치료 실패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성분명 처방 시범 사업에서는 안전성이 덜 확인된 성분의 약을 처방해야 의미가 있다. 그래야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점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1960년대에 만들어진, 지금은 거의 처방하지 않는 제제(製劑)까지 포함시켰다. 이런 시범사업은 하나마나다”라고 박 대변인은 말했다.

그가 국립의료원의 시범사업을 의심하는 이유는 ‘아픈 기억’ 탓이다. DJ 정권 말기에 정부는 느닷없이 목포에서 의약 분업 시범사업을 펼쳤다. 그리고 몇 달 뒤 ‘실패’로 판정 난 의약 분업을 전면 실시했다. 박 대변인은 노무현 정권이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약사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제도를 밀어붙이고 있다.”

물론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성분명 처방의 1차 목표는 약제비 절감이다. 오리지널 약에 비해 제네릭 약(복제 약) 값이 20% 정도 싼데, 환자들이 약국에서 제네릭 약과 그 이하의 약을 선택하면 “약제비를 20% 이상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의약품정책팀의 오창현 사무관은 말했다. 그는 시범사업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면 성분명 처방을 폐기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협이 시범사업 시행을 놓고 밀고 당기는 동안 환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위암으로 투병 중인 김 아무개씨(67)는 “환자에게 선택권이 생긴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국립의료원 앞에서 만난 정 아무개씨(68)는 “정부가 왜 감 놔라 배 놔라 해서 환자들을 헷갈리게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쏘아붙였다. 과연 반신반의 시범사업의 ‘약발’은 제도 실행으로까지 이어질까.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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