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오른쪽) 세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 〈프랑스적인 삶〉(위).
나는 1968년생이다. 원숭이띠. 그리하여 68이라는 숫자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친구들을 살펴보면, 소설가 김영하, ‘X파일’로 유명해진 이상호 기자 등이 같은 68년생으로, 고등학교 때 알았고 대학 시절에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이다. 조금 넓게 보면,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 새벽까지 나에게 막걸리를 ‘먹였던’ 김영현 작가. 드라마 〈대장금〉을 쓴 그녀가 나에게 처음으로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이라는 책의 세미나를 ‘지도’하던 선배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68혁명은 대로망(roman)이었다. 나는, 사실상 완전 ‘똘아이’였다. 거기에 필이 딱 꽂혀 바로 그 68혁명이 시작된 파리 10대학, 그것도 첫 팸플릿이 뿌려졌던 G동 건물, 그곳으로 배낭 하나 메고 떠났다. 스물한 살 때 일이다. 그 배낭 맨 밑에 〈자본론〉과 성경을 넣고 떠났던 그 똘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한마디만 더 하자면, 그 시절 나는 이재오(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서울민중연합에서 ‘정치경제학 교실’ 간사로, 수배 중이었다. 체포와 유학 가운데 어머니는 유학을 선택해주셨다(우리 집은 그 시절, 가난했다).

68혁명은 순 ‘뻥’이었다?

그러나 내가 선배들에게 배웠던 68의 추억은, 순 ‘뻥이었다’. 그것이 너무 멋져 보여서 그 첫 팸플릿이 뿌려진 건물까지 유학을 갔던 나였는데, 그게 순전히 뻥이라는 것을 알려준 책은, ‘숲에서 나온 폴’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장 폴 뒤부아가 쓴 〈프랑스적인 삶〉이라는 책이었다. 너무 창피하고 우스워서 감추었던 현실. 그것을 이 책이 내가 박사가 되고도 12년쯤 지났을 때 알려주었다. 68혁명, 그것은 순 뻥이고, 그때의 중·고등학생들은 순전히 폭도였고, 그 폭도가 나중에 ‘민주주의 영웅’으로 우습게 대학에 진학했고, 그 첫 싸움 덕분에 평생 잘 먹고 잘살게 된 ‘거지 깽깽이’라는 것을 이 책이 알려주었다. 내가 보고 듣고 만난 프랑스의 68혁명 영웅의 추억담과, 이 소설의 묘사는 지독하게 일치했다(소설의 유일한 진실은 68혁명은 대학생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폭도’가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68세대는 결국 잘 먹고 잘살았다. 그러나 그 끝이 공허하다는 것이 〈프랑스적인 삶〉이라는 책이 알려주는 지독한 현실이다. 시청 광장의 촛불집회를 그보다 40년 뒤에, 그리고 마흔 살의 나이에 만나는 내 감정은, “이것은 68의 재현이다” 혹은 “한국식 혁명이다”라는 호들갑 대신 “저것은 현실이다”라는 반론이다. 졸저 〈88만원 세대〉에서 나는 386 세대를 역사의 배신자로 묘사하였는데, 덕분에 친구들에게 엄청 쥐어터졌다.(아니, 니들이 처음으로 원정 출산을 했고 지금의 과외 붐을 만든 것 아니냐?) 386 세대, 혹은 지금의 내 또래는 역사를 배반했다. 소설 〈프랑스적인 삶〉에서는 68세대의 배신 그리고 내 또래의 현 상황을 그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다.

〈88만원 세대〉에서 첫 번째 인용한 것이 바로 이 소설이었다. 68세대의 아들이 일본인 애인을 만나 동거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었다. 몇 사람이 ‘첫 섹스의 용기’를 주었다고 말했던 그 구절에 대한 얘기다. 동거보다 섹스가 먼저라는(〈88만원 세대〉라는 비정규직에 관한 경제학 책이 첫 섹스와 동거의 지침서였다는 일부 독자의 감사에, 저자로서 아연실색할 뿐이다).

촛불 소녀 혹은 촛불 소년, 제발 ‘거지 깽깽이’ 같은 50~60대 유신 세대와 목에 핏발 선 386 세대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그 시절 ‘프랑스 68들’이 얻어낸 권리와 같이, 20세 즈음에 동거할 권리와 주거권 그리고 노동권을 얻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프랑스적인 삶〉, 이 책은 ‘시민’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권리와 삶이 묘사되어 있다. 촛불. 그리고 자유. 그리하여 평온. 그것이 한국에 오기를 바란다. 돈 없어도 사랑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은 혁명과 반란에 앞서는 것 아닌가(10대의 동거권이 없는 나라 중에 국민소득 4만 달러에 도달한 나라는 없다. 스웨덴·스위스·덴마크·네덜란드를 살펴보시길).

기자명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경제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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