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블로거 몽구 (미디어 몽구 www.mongu.net)
기성 언론 기자 중에서도 일반 시민이 이름을 알고 있는 기자는 극히 드물다. 방송사 앵커나 신문사 논설위원 정도 되어야 겨우 시청자나 독자가 이름을 기억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이름만 말하면 누리꾼이 기억하는 스타 블로거, 스타 BJ(Broadcasting Jockey)가 즐비하다. 이들이 올린 글을 수십만명이 읽고 이들이 중계하는 방송을 수만명이 동시에 본다.

블로거와 BJ는 이제 ‘또 하나의 기자’를 넘어 ‘기자 그 이상의 기자’라 불린다. 블로고스피어(커뮤니티나 소셜 네트워크 구실을 하는 모든 블로그의 집합)에서 최고의 파워 블로거로 꼽히는 MP4/13·몽구·박형준과 최고 인기 BJ 라쿤과 함께 촛불집회를 계기로 새롭게 펼쳐진 ‘1인 미디어’ 시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MP4/13은 본인 부탁으로 사진을 게재하지 않았다.

MP4/13은 ‘고소영 수석’ ‘강부자 내각’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신조어’ 전문 블로거다. 몽구는 특전사 부대 이전을 반대하는 시위대의 ‘새끼돼지 능지처참’ 장면이나 ‘롯데월드 무료개장 입장 사고’ 등을 맨 처음 보도한 ‘특종’ 전문 블로거다. 박형준은 ‘박찬욱 감독 스토킹’ 전문 블로거에서 ‘이명박 대통령 스토킹’ 전문 블로거로 전업한 ‘비판’ 전문 블로거다. 라쿤은 개인방송 신대륙, 아프리카의 문용식 대표가 ‘최고의 BJ’로 꼽는 BJ다. 촛불집회의 첫 가두시위를 단독 생중계했다.


파워 블로거(혹은 인기 BJ)가 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나?

MP4/13
:어영부영 살아가는, 내일모레면 마흔 살인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다. 시사에 관심은 있었지만 활동을 한 적도, 내 의견을 적극 알린 적도 없었다.  

몽구:케이블 TV에서 계약직 카메라 보조로 일했다. 현장 취재 경험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찍으라는 대로 찍어야 하는 방송 시스템이 싫었다.

박형준
:원래 정치 웹진에서 1년 정도 활동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했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영화에 전념하다 대선 전부터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라쿤:정치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었다. 나중에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학생회 활동도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는 정치외교학과 편입을 준비 중이다.

어떤 계기로 블로거(또는 BJ)가 되었나?

MP4/13:취미와 관련된 블로그를 운영했다. 그런데 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비꼬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사 블로거가 되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셈이다.

몽구:2005년 11월 줄기세포 복제 조작 시비가 한창일 때 황우석 박사가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집이 근처여서 강아지 ‘몽구’와 산책을 나왔다가 방송 차량이 여러 대 와 있기에 궁금해서 구경 갔다. 휴대전화로 현장 사진을 몇 장 찍고 현장 상황을 메모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몇 만 명이 블로그에 방문했고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었다. 얼떨떨했다. 특종이라고 ‘다음 캐쉬’도 줬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박형준:“어쩌다가”라고 딱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 웹진에서 활동하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영화로 관심을 옮겼다. 그런데 다시 정치로 이끌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에 대한 지난 20년 동안의 기사는 모두 찾아서 읽었다.

라쿤:‘시사 방송’을 준비했다. 현장에 나와서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자는 생각에서 나왔는데, 계속 나오게 되었다.

자신을 파워 블로거(혹은 인기 BJ)로 키워준 ‘히트작’은 무엇인가?

MP4/13:‘고소영 수석’ ‘강부자 내각’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면서부터다. 특히 ‘고소영 수석’이 화제가 되었다. 방송 작가라 말을 만들어내는 걸 좋아한다. 뉴스에 ‘고려대…소망교회…경남 출신…’ 이런 내용이 나오는 걸 듣고 뭔가 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경남을 영남으로 바꿨더니 ‘고소영’이 됐다. 이런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네티즌이 몰려들었다. 그날 22만명이 들어와서 읽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다음 날 경향신문 만평에도 ‘고소영’이라는 말이 나왔다.

몽구:지난해 5월 말 국방부 앞에 경기도 이천 시민들이 특전사 부대 이전 반대 규탄대회를 열기 위해 올라왔다.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당시 대다수의 취재기자는 돌아간 상황이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새끼 돼지 한 마리를 꺼냈다. 그러더니 단상에 끌고 올라가서 남자 네다섯 명이 다리 하나씩을 잡고 돼지를 찢기 시작했다. 잘 안 찢어지니까 칼집을 내고 찢었다. 그 처참한 장면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렸다. 각 언론사에서 전화가 와 사진을 제공했다. AFP 통신에서도 연락이 와서 전세계에 타전되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가장 많이 본 기사였다고 한다.

ⓒ시사IN 안희태BJ 라쿤 (afreeca.com/rkparadigm)
박형준:박찬욱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을 때다. 박 감독을 비난하면 ‘역적’이 되는 분위기였는데, 비난 글을 한 인터넷 언론에 올렸다. 이 글이 포털 사이트 대문에 걸리면서 화제가 되었다. 협박 메일이 많이 왔다. 그게 오히려 더 기를 살게 해서 〈친절한 금자씨〉 〈사이보그니까 괜찮아〉 등 박찬욱 감독 영화가 올라올 때마다 비판 글을 올렸다. 계속 화제가 되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비판자는 줄고 동조자는 늘고 있다는 것이다. 

라쿤:5월24일 첫 가두시위 장면을 생중계했다. 다음 날 오전 1시쯤 집에 들어왔는데, 살수차를 동원해서 해산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이 인천시 부평구인데, 택시를 타고 급히 광화문으로 돌아갔다. 이미 아스팔트 바닥이 흥건할 정도로 물대포가 난사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생생하게 중계했다. 내 생중계 방은 200명 동시 시청이 가능한데, 그런 방이 200개가 개설되었다고 하니, 4만명 정도가 내 중계를 본 셈이다. 그날 거의 48시간가량 중계한 것 같다.

기사를 쓰거나 생중계를 하는 데 자기만의 원칙이 있나? 

MP4/13:세 가지가 있다. 하나, 웃기게 쓴다는 것이다. 시사는 짜증 나는 이야기가 많다. 글까지 짜증 나면 읽지 않는다. 무릎 치면서 스트레스 풀면서 읽을 수 있도록 쓴다. 그렇게 쓰면 당하는 쪽은 더 열을 받는다. 둘, 글 올리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글을 게재할 때 욕먹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올리는 경우가 있다. 내 생각을 담은 글이라면 욕을 먹더라도 올려야 한다. 셋, 싸울 때는 죽도록 싸운다는 것이다. 글을 올린다는 것이 때로는 전쟁과도 같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가진 논리와 근거를 총동원해서 다툰다.

몽구:현장에는 한 시간 전에 가서 끝까지 보고 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현장에 가면 그 중에서 가장 카메라가 안 비치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박형준:당파성을 드러내고 견해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중·동은 당파성보다는 드러내는 근거가 박약하고 그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근거가 확실하고 방식이 정당하다면 드러내는 것이 맞다고 본다. 글은 일부러 길게 쓴다. 다 읽을 자신이 없는 사람은 그냥 나가라는 것이다. 

라쿤:최대한 중립적으로 방송하려고 애쓴다. 내 의견은 따로 갖고 있더라도 현장 상황 자체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려 노력한다.

현장을 취재하다가 위험한 일도 겪었나?

MP4/13:최근 〈블로거, 명박을 쏘다〉라는 책을 냈다. 제목이 세서 혹시 잡혀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 안 한다. 잡을 사람도 많을 텐데, 나까지 건드리겠나. 그것보다 조·중·동에서 ‘이명박 대통령 암살 선동 책 나와 파문’ 이런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몽구:취재를 하러 가면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한 곳 중간에 가서 먼저 얼굴을 판다. “취재 왔으니까 때리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친근해지려 한다. 분위기가 격해지면 건물 위에 올라가서 찍는다. 사실 전경보다 보수 단체가 더 무섭다. 그분들에게 위협당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는 ‘저놈 잡아라’ 하고 쫓아오기도 했다. 되도록 경찰에 연행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를 보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미 FTA 반대 집회 때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블로거 기자’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나오는 데 애를 먹었다.

박형준:1년6개월 동안 이명박 대통령을 들쑤시고 다니니까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한다. 글을 너무 적나라하게 쓰니까, 혹여 해를 입지 않을까 하고 걱정해준다. 나는 걱정 안 한다. 집회 현장에서는 세 번 정도 폭행 위협을 받았는데, 다행히 잘 모면했다. 

라쿤:현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기자가 아니면 나가라”이다. 장비를 떨어뜨리려고 일부러 부딪쳐오는 경찰도 많다. 밀어내면 밀려났다가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경찰의 그런 행위를 방송으로 낱낱이 전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격앙되면 전경 눈이 확 돌아간 것이 느껴진다. 그럴 때는 슬쩍 인도로 빠진다. 

‘기자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MP4/13:나는 현장 취재형이 아니라 ‘시민 논설위원’ 역할을 하니까 필요성을 못 느꼈다.
몽구:기자증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인터뷰 섭외를 할 때 내가 열심히 활동했던 결과물을 보여주면 모두 흔쾌히 승낙한다. 내 경력이 곧 내 기자증이다.

ⓒ시사IN 안희태블로거 박형준 (창천항로 blog.daum.net/ctzxp)
박형준:〈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이 있는데 이를 기자증처럼 목에 달고 다닌다. 덕분에 몇 번 폭행당하는 것을 면했다. 기자증에 대한 미련은 없다. 다만 블로거도 이렇게 위협받으면서 열심히 취재하는데 기성 언론, 특히 조·중·동 기자도 현장에서 취재를 했으면 좋겠다. 

라쿤:시민 기자증을 만들어달라고 몇몇 언론사와 한국기자협회에 요청해봤는데 묵묵부답이다. 이제는 필요없다. 왜 기자는 되고 시민은 안 되나? 시민이라는 이유로 제지당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파워 블로거가 되면서 본인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기기도 했나?

MP4/13:이번에 책을 내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주변에서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다고 책으로 내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몽구:다음커뮤니케이션과 경향신문 공동기획으로 아프리카 취재를 갔는데, 블로거 기자 대표로 다녀왔다. 킬리만자로 산 등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볼 수 있어 좋았다. 2006년에 ‘블로거 대상’을 받으면서 인터넷 매체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내가 편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취재하려고 응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요즘은 책을 내라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많이 온다. 대필 작가를 붙여줄 테니 책을 내라는 것인데, 거절했다.

박형준:언론 노출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는 한 시사 프로그램에 내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만 부모님이 보셔서 후유증이 크다. 부모님이 취재 나가지 못하게 막으신다.

라쿤:언론에 정말 많이 나왔다. 내가 한 일이 이렇게까지 조명받을 일이었나 하는 생각에 의아스럽다. 다음에 정치할 때 큰 힘이 될 것 같다. 방송하면서 “‘라쿤을 국회로’ 외쳐주세요”라고 말하면 시청자가 호응한다.

블로그 활동이 돈벌이는 안 되지 않나?

MP4/13:본업이 따로 있어서 상관없다.

몽구:영상이나 사진을 팔아서 용돈 정도는 번다. 후원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장비 정도는 구입할 수 있다. 이 자리를 빌려 후원자분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박형준:아쉽다. 집에 갈 때 택시비도 많이 드는데….

라쿤:생중계하면서 빚을 350만원 정도 졌는데, 네티즌이 내 계좌에 성금을 보내줘서 다 갚을 수 있었다.  

블로거(혹은 BJ) 활동을 위해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MP4/13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편이다. 인간관계를 좀 부담스러워하는 스타일이다. 블로그에서도 지속적으로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부족한 듯하다.

몽구
:글을 진짜 못 쓴다. 블로그에 “발로 뛰고 영상으로 말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글을 못 써서 손발이 고생한다. 글을 쉽게 잘 쓰고 싶다.

박형준
:기자가 되고 싶다. 병역 의무를 마치면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기자가 되려고 한다. 〈시사IN〉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은데,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라쿤:제대로 된 ‘시사 방송’을 하고 싶다. 공중파에 손석희가 있다면, 언더에는 라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하지만 손석희 교수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현장에서 뛰느라 공부할 시간이 적었다. 내공을 쌓고 싶다.

블로거(혹은 BJ)로서 자신의 비전을 어디에 두고 있나?

MP4/13:블로거 활동은 ‘세월과의 싸움’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누구나 젊었을 때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진보적인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기득권에 편입하면 나태해지고 보수화한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블로거 활동을 하면서 나를 깨울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더 많은 웃음을, 적들에게는 더 많은 짜증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몽구:블로거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 블로거도 취재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래서 ‘일반 시민도 취재할 수 있다. 취재는 기자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박형준:‘블로거 연합 언론’을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이를 추진할 만한 힘을 가진, 파워 블로거가 되는 일이 먼저인 것 같다. 

라쿤:BJ를 하는 이유는 솔직한 내 의견을 피력하고 싶어서다. 앞으로 ‘시민 토론 방송’을 만들어서 시민이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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