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보도처럼 우리 언론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만든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면서 황당함을 느끼고,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잊히지 않는 ‘언론 꼴불견’ 한 대목을 소개하려 한다.

2012년 12월19일, 지난 대통령선거 투표일이다. 투표 종료까지 두 시간 정도가 남은 오후 4시쯤이었다. MBN이 〈2012 대한민국의 선택-대선 대예측〉이라는 대선 특집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개표 방송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시사평론가와 연예인, 여론조사 전문가 등 20여 명을 일찌감치 스튜디오에 모아놓은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물량 공세는 종편 특유의 ‘믿거나 말거나’ 토크로 이어졌다. ‘투표율을 72%로 가정했을 때, 누가 당선될까’를 예측하는 등 투표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에 영향을 줄 만한 곡예가 계속되었다. 점점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18대 대선의 키워드나 화제에 대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방송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문재인 당시 후보자에게 호의적인 것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당시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편들기로 점철되었던 그 자리에서 말이다. 심지어 박근혜 후보의 지지자인 김행·정미홍·김흥국 등의 패널은 이런 진행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불쾌함을 드러내는 등 생방송 현장에서 긴장감이 조성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출구조사 결과가 확인된 시점에 180° 돌변했다. 당락이 예상과 바뀌는 상황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리라. 진행자는 당황한 기색조차 없이 박근혜 당선자를 노골적으로 띄우기 시작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는, 웃기지만 서글픈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난 대선 때 75.8%라는 높은 투표율에 따라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믿은 방송사의 얄팍한 기획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국민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 언론의 체질을 잘 보여준다. 정치권력의 향배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더 이상 노골적일 수 없는 ‘기레기’의 현장.

그러나 그 후에도 시민들은, 정부·여당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수치심 따위는 던져버린 것 같은 언론인을 지겹게 보아왔다. 지난해 〈한국대학신문〉이 발표한 ‘전국 대학생 의식조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신하는 집단’으로 정치인에 이어 언론인을 꼽았다. 시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언론인이 대학생 참여 여론조사에서 불신 집단 2위로 추락한 것이다.

사장 선임에 결정적 권한을 쥔 정부·여당에 대한 ‘충성 맹세?’

이런 와중에 KBS 조대현 사장의 오락가락 행보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조대현 사장은 그동안 그럭저럭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보도의 독립성과 관련해 쫓겨난 길환영 전 사장과 어느 정도 차별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도 무기력한 분위기를 개선하려고 시도해왔다는 평가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크게 문제될 것도 없어 보이는 행보를 유지해왔다는 의미다.

그런데 임기 만료를 앞두고 조 사장이 180° 달라졌다. 먼저 ‘이승만 정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 망명 타진’ 보도와 관련된 논란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대응이 그것이다. 3일 만에 반론보도를 내고, 20여 일 만에 징계성 인사를 했다. 이런 초고속 행보에 대해, KBS 이사장의 회의 소집 압력 등을 의식한 과잉행동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더욱이 조대현 사장은, 쫓겨난 길환영 전 사장의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선 직원들을 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중징계하는 일을 벌였다. ‘징계 요구를 접수한 인사위원회는 1월 이내 처리해야 한다’는 인사 규정을 넘어선 무리수다. 더욱이 길환영 전 사장이 취임 당시부터 보도 개입 논란 등으로 공영방송의 수장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부적절하기 이를 데 없는 후속 조치다.

이처럼 돌발적이고도 위험한 조대현 사장의 선회를 두고 연임 욕심 때문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사장 선임에 결정적 권한을 쥔 정부·여당에 대한 ‘충성 맹세’라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변신은 KBS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다시 흠집을 내고 있다. 자신과 회사의 양심을 도매금으로 팔아넘기는 또 하나의 전형이 KBS에서 창출될지도 모른다. 후배들이 ‘그만 멈추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이대로라면 언론인이 불신 집단 1위로 등극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기자명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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