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한 손에는 촛불,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 블로거가 촛불집회의 진실을 국민에게 알렸다.
대선이 끝나면 대선 보도에 대한 토론회가 열린다. 총선이 끝나면 총선 보도에 대한 토론회가 열린다. 최근 지난 5월부터 정국을 좌지우지하던 촛불집회 보도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그런데 이 토론회는 기존 토론회와 조금 달랐다. 신문사나 방송사 관계자가 아니라 블로거나 BJ 등 ‘1인 미디어’ 활동가가 발제자와 토론자로 참석했다.

6월26일, 언론인권센터(이사장 안병찬)가 주최한 ‘촛불에 나타난 1인 미디어의 발전방향’ 토론회에는 동영상 사이트로 유명한 아프리카의 인기 BJ(Broadcasting Jockey) 라쿤과 블로거 박형준(블로그 ‘창천항로’ 운영), 김욱(블로그 ‘거다란’ 운영) 등이 참석해 촛불집회와 관련된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다음 날인 6월27일,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세계시민기자포럼의 주제도 ‘촛불 2008과 미디어 리더십’이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촛불과 대안적 현장 생중계(세션 1)’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세션 3)’로 생중계와 블로그가 나뉘어 다뤄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BJ 라쿤과 블로거 김정환(미디어 몽구)이 참석했다.

〈참여군중〉의 저자 하워드 라인골드는 세계시민기자포럼 영상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은 대다수 국민이 기술 활용 능력을 갖추었으며 최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어 있다. 이런 요소들이 한국을 기술 정치 그리고 사회운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참여군중’의 기반이 가장 잘 마련된 국가로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형 사회 사건에 대한 보도를 평가하면서 기성 언론이 아닌 1인 미디어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바뀐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1인 미디어가 분석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촛불 정국에서 이들이 미친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몇몇 소녀가 들었던 가냘픈 촛불이 정권의 존망을 위협할 만큼 강력한 횃불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블로거 뉴스의 신뢰성도 개선돼

블로그와 인터넷 생중계 외에 ‘다음 아고라’와 같은 공개 토론장이나 ‘소울드레서’ ‘새틴’ ‘MLB 파크’ 등 인터넷 커뮤니티도 촛불집회 대중화와 관련해 큰 구실을 했다. 7월5일 〈시사IN〉은 진보신당 칼라TV와 함께 이들 커뮤니티 활동가를 모아 ‘온라인 커뮤니티, 촛불과 함께 진화하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이 1인 미디어라면 영향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파워 블로거의 블로그에는 보통 주간 방문자가 10만명을 넘는다. 누적 방문자는 보통 몇 백만명 수준이다(미디어 몽구 476만명, 창천항로 440만명, Eau Rouge 160만명, 7월4일 기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들의 글과 영상은 ‘다음 아고라’와 같은 토론 게시판이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펌’글로 올라 2차 반응을 일으킨다. 산술적으로 환산했을 때, 이들의 글은 하루 만에 100만명 가까운 누리꾼에게, 그것도 글을 읽기 위해 클릭한 자발적인 누리꾼에게 노출된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다음의 경우 처음 블로거가 송신하는 ‘블로거 뉴스’를 일반 언론사에서 보낸 기사의 빈틈을 메우는 보조 기사 정도로 취급해서 편집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블로거 뉴스’도 다음의 메인 화면에 내걸리는 등 일반 언론사가 보내는 기사와 동등한 취급을 한다.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블로거 뉴스’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6월 ‘블로거 뉴스’의 ‘순방문자 수(UV, unique visitor, 월간 1회 이상 방문한 사람 수)’는 744만3108명이었는데, 올해 6월 1107만4277명으로 늘었다. 블로거의 참여도 더욱 적극적이 되었다. 올해 1월 5만6049건이었던 기사 송고 건수는 6월에 11만5829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기존 언론사 기자도 블로거로 나서 블로그 ‘텃밭’을 가꾸는 경우가 늘고 있다. 뉴시스 정진탄 기자(열린 블로그와 그 적들, 117만명), 한국경제신문 최진순 기자(온라인 저널리즘의 산실, 44만명 방문), 조선일보 서명덕 기자(서명덕 기자의 人터넷 세상, 38만명 방문) 등이 블로고스피어(커뮤니티나 소셜 네트워크 구실을 하는 모든 블로그의 집합)에서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이다. 현직 기자가 합세하면서 ‘블로거 뉴스’의 맹점이었던 ‘신뢰성’ 문제가 개선되었다.

분명한 것은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블로거 기자의 위상이 새롭게 정립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블로거 기자의 활동에 다소 비판적이었던 기성 언론사 기자도 이제 그들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 블로거 기자들은 기존 미디어 기자들과 자기가 상호 보완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정부의 언론통제 정책에 맞서 언론 독립을 주장하는 KBS 기자·PD들과, 낙하산 사장 임명 반대 운동을 하는 YTN 기자들은 이들 블로거 기자에게 큰 신세를 졌다. YTN 기자들의 반대집회는 ‘미디어 몽구’를 통해 누리꾼에게 알려졌고 KBS PD들의 주장은 ‘박형준의 창천항로’에서 인터넷에 퍼졌다.

이제 기존 언론사 기자는 슬슬 ‘계급장을 떼고’ 블로거로 나서고 있으며, 블로거는 기자 못지않은 ‘권위’를 스스로 쌓아 독자와 만나는 중이다. ‘이제 진검 승부’가 시작 되었다. ‘미디어 2.0’ 시대에 기존 언론사 기자와 재야의 ‘블로거 기자’는 오직 기자 정신과 취재력으로 한판 승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