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네 오빠가 어디서 들었는지 귀에 익은 푸념을 하더구나. “왕 목도 한번 못 쳐본 나란데 뭐.” 영국이나 프랑스같이 국민이 들고일어나서 왕을 끌어내리고 단두대에 올려 뎅겅 목을 자른 역사가 없는 착한(?) 백성이라는 의미일 거야. 그런데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조선 왕조만이라면 틀리지 않아. 적어도 국왕이 분노한 백성이나 반란자의 손에 참살당한 예는 없고, 최대의 폭군이라 할 연산군도 기록상으로는 살해되지 않았으니까. 권세 부리는 서울 양반을 쳐 없애자고 죽창을 치켜들었던 동학 농민도, 왕비를 죽여버리겠다고 궁궐에 뛰어든 임오군란 때 군인들도 ‘주상 전하’만은 건드리지 못했으니까. 그럼 우리나라 역대 왕들은 대대로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기까지 했을까? 꼭 그런 것은 아니야.

고구려 시대에 있었던 일 두 가지를 얘기해줄게. 고구려 14대 봉상왕은 상당히 의심 많고 잔인한 왕이었어. 즉위한 뒤 자기 삼촌에게 누명을 씌워서 죽였고 자기 동생마저 자살하게 만들고 그 아들, 즉 조카 을불마저 잡아들이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였으니까. 을불은 도망가서 소금장수 행세하며 숨어 살았다는 얘긴 알지?

봉상왕 3년(294) 왕은 창조리라는 이를 국상(國相), 즉 수상에 임명해. 그즈음 고구려는 선비족의 등쌀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몇 년간 일진일퇴 끝에 296년 전쟁이 마무리돼. 그러자 봉상왕은 특유의 허영을 드러내지. 흉년이 들었는데도 궁궐 증축 공사를 일으킨 거야. 의심 많은 사람은 허영도 많은 법이지. 자신감 없는 사람의 특징이니까. 이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왕족도 없고 전쟁도 끝났다 싶으니 더 화려하고 널찍한 궁궐에서 여봐라 하고 살고 싶었던 거겠지. 백성이야 좀 고생되겠지만 그건 내 팔다리 아픈 게 아니니까 나 몰라라 했을 거고. 혹 백성이 “대왕! 흉년이 심하옵니다” 하면, 눈에서 레이저를 쏘면서 “책임 있는 자의 옷을 벗기리로다” 했을 가능성이 크지.

보다 못한 국상 창조리가 봉상왕에게 이러시면 안 된다고 얘기하자 봉상왕은 이렇게 반문해. “임금은 백성들로부터 우러름을 받는 이인데, 궁궐이 초라하면 무엇으로 위엄이 서겠는가?” 그러고는 창조리에게 묘한 말을 해. “지금 나를 비방하여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얻겠다는 거요 국상?” 그러니까 지금 네가 누구 덕에 이 자리에 올랐는데 이런 ‘배신의 정치’를 하겠다는 거냐, 뭐 그런 질문이었을 거야.

그래도 국상 창조리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었어. 창조리는 “임금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어진 임금이 아니요, 신하가 임금에게 충언하지 않으면 충신이 아닙니다”라고 말해. 그러자 봉상왕은 ‘웃었다’고 기록돼 있어.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네. “백성을 위해서 죽기라도 하겠소?” 임금이 이런 말을 하는데 자라목이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창조리는 입을 다물었단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대한민국5000년사 역대왕조실록〈/font〉〈/div〉왼쪽부터 고구려 봉상왕·미천왕(을불)·모본왕의 상상도.
그러나 그는 입을 다물고만 있었던 게 아니고 국상 자리를 때려치우지도 않았어.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고, 시골로 도망가 숨어버린 왕의 조카 을불을 찾아 데려오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 아마 그가 사람을 모을 때 가장 많이 속삭인 얘기는 동서고금 왕조 국가의 기본이자 원칙이요 알파요 오메가인 말이었을 거야. “임금이 백성을 살피지 않으면 임금이 아니다!”

마침내 때가 왔어. 봉상왕은 신하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갔어. 국상 창조리도 동행했는데 그는 왕이 궁궐을 떠난 유고(有故) 상황을 이용했지. 왕이 사냥에 정신 팔린 틈을 타서 창조리는 신하들을 모았어. 여기서 창조리는 결연하게 선언하지. “나와 뜻을 같이하는 자는 관에 갈잎을 꽂으시오.” 이 선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이심전심으로 많은 이들이 그 의미를 알아차린다.

절풍 모자(고구려 벽화의 그 모자)에 갈잎을 꽂고, 사냥터라 저마다 활을 차고 칼을 움켜쥔 고구려인들은 서로의 갈잎을 보고 전율했을 거야. “그래. 우리 전부 갈잎을 꽂았으니 무엇이 두려우랴.” 고구려판 ‘마그나카르타’(세계사 시간에 배웠지?) 사태였지. 창조리는 국왕 폐위를 선언하고 봉상왕을 가둬버려. 그리고 을불에게 옥새를 바치니 이 사람이 미천왕이야. 봉상왕은 자신의 두 아들과 함께 목을 매 죽어.

“나를 사랑하면 임금이고 나를 학대하면 원수”

그래도 ‘왕의 목을 친’ 건 아니지 않냐고 한다면 얘기 하나를 더 해줄게. 유명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 알지? 이 호동왕자는 태자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 동생으로 후일 왕위에 오른 게 모본왕(慕本王)이야. 중국 각지를 공격하여 용맹을 떨치기도 했지만 그는 백성에게도 무척 용맹한(?) 왕이었어. 기록으로만 보면 봉상왕보다 한 수 위네. 신하가 이러지 마십사 하면 대뜸 활로 쏴 죽이기도 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결정적으로 못된 버릇은 앉을 때는 사람을 깔고 앉으며(居常坐人) 누울 때는 사람을 베고 누웠으며(臥則枕人) 만일 사람이 조금만 움직이면(人或動搖) 사정없이 죽여버린다는 거였어.

모본왕이 정말 이런 변태스러운 버릇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아빠는 이걸 그렇게 해석하고 싶네. 그렇게 왕이 신하와 백성을 사람 대하듯 하지 않고 베개나 이불 대하듯, 자신의 손 하나에 죽고 살 수 있는 하잘것없는 존재로 봤다는 거야. 백성이란 자기가 눈 부라리면 납작 엎드리고 말이라도 하면 다 받아 적어야 하고, 감히 내 이름을 어디에 갖다 붙이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어리석고 우매한 존재이며, 그깟 백성 수백명이 어떻게 물에 빠져 죽든 살든, 몹쓸 전염병에 걸리든 말든, 내 권력이 우선인 왕이었다는 거지. 그게 왜 내 책임이냐, 책임 맡은 벼슬아치 목을 쳐 내걸어라 하는 왕이었다는 거지.

당시 두로라는 왕의 근신(近臣)이 있었는데 그는 하루하루가 파리 목숨과 진배없었지. 언제 왕이 불러서 엎드리게 하고는, 등에 앉았다가 여차하면 칼을 휘두를지 어찌 알겠어. 날만 새면 그 걱정에 눈물바람만 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런 말을 귀에 속삭여. “사내자식이 울기는! 옛사람 말에 ‘나를 사랑하면 임금이고 나를 학대하면 원수’라고 했어. 왕이 포악해서 사람을 막 죽이니 이건 왕이 아니라 백성의 원수라고. 여차하면 죽여버려.” 어느 날 두로는 모본왕이 자신을 끌어당겨 앉으려 하자 품속에 있던 칼을 꺼내서 단칼에 왕의 목을 쳐버렸단다. 칼을 휘두르면서 두로는 이렇게 절규했을지도 몰라. “나는 사람이야. 이 빌어먹을 대왕 같으니. 나는 의자가 아니라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란 말이다.”

어때? 이제 “왕의 목을 쳐본 적이 없는 나라”라는 한탄은 안 해도 되겠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왕은 오늘날 민주공화국 대통령에 비하면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지만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임금이 아니다”라는 외침과 “나를 사랑하면 임금, 나를 학대하면 원수”라는 절규 앞에 허무하게 스러지기도 했어. 왕답지 못한 왕을 몰아내지 못하는 백성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주 간단해. 자식이 굶어죽는 상황에서도 궁궐 공사에 나가 돌을 날라야 하고, 왕의 호출이 있으면 납작 엎드려 엉덩이를 받치다가 조금만 움직여도 목이 잘리는 삶이라도 아득바득 살아낼밖에. 정말 민주공화국에서 태어난 게 다행이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게 해줘서 아빠에게 감사한다고? 그… 그래.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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