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업시간에 종종 단어를 가지고 퀴즈놀이를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오늘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break입니다. break가 무슨 뜻이죠?”

“깨다. 깨뜨리다.”

“좋은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다.”

“그럴까요? 여러분, 휴식 시간이 영어로 뭐죠?”

“break time입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break는 좋은 말입니까? 나쁜 말입니까?”

“(엄청 큰 소리로) 좋은 말입니다!”

“생각이 바뀌었네요? 그런데 왜 break time이 휴식시간이죠?”

“그건 수업시간 사이에 있어서….”

 

ⓒ박해성 그림

“빙고. 수업시간과 수업시간 사이의 그 깨진 틈새에 쉬는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 사진은 제가 아침에 출근하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보도블록 사이에서 핀 괭이밥이란 이름을 가진 풀꽃입니다. 저 깨진 틈새가 한 생명을 키우는 창조적 공간이 된 것이지요. 우리 인간의 마음도 그럴 수 있습니다. 깨지고 상한 마음에서 위대한 생각이나 예술 작품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단어를 설명하거나 외우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과 관련된 의미를 애써 전하고자 한 것은 내가 영어교사이기 전에 교사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학교에는 상처받은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깊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정에서 혹은 친구들에게서, 더 근원적으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학교에 오면 아이들은 자신의 상처나 아픔을 살펴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게 된다. 수업시간에는 많은 것이 금지된다. 숨 쉬는 것 외에는 다 금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치 벨트컨베이어에서 일하는 노동자처럼 꽉 짜인 일정을 따라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면 불과 3~4분이 남지만 그 짧은 휴식시간이 그들에게는 잠깐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틈새 시간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숨 쉴 틈을 주고 싶어서 수업시간을 대부분 단어놀이, 문장놀이 등등의 놀이시간으로 할애한다. 물론 수업도 흥미를 가지고 할 수 있으므로 일거양득이다. 놀이수업을 위한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어느 날인가는 출근길에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로 길바닥에 자란 풀꽃을 세 번이나 찍었다. 멀리서, 가까이서, 더 가까이서. 그날 수업시간에 배울 한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기가 무섭게 후닥닥 만든 수업자료를 아이들에게 보여준 뒤에 이렇게 물었다.    

“오늘 출근길에 어떤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찍은 사진입니다. 어떤 단어일까요? 힌트 ①This word begins with an A. ②It has eight letters.”

답은 approach(다가가다, 접근하다)다. 하지만 그 답을 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경험하게 될 한 존재와의 만남이다. 멀리서 보면 하찮은 잡초에 불과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엄연하고 오롯한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자기 자신과의 느닷없는 만남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학생들이 ‘시간의 주인’이 되게 하려면

학교의 일과란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듣는 그런 시간의 연속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어를 가지고 퀴즈놀이를 하다 보면 그런 일정한 틀이 깨진다. 시간의 주인이 학생들로 뒤바뀌는 것이다. 언젠가 ‘take’의 여러 가지 뜻을 설명하다가 학생들에게 해준 말이다.  

“사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해요. 하지만 사랑도 give and take가 좋을 것 같아요. 한쪽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기만 하면 상대방은 받기만 해야 되잖아요. 그럼 소극적인 행복밖에는 누릴 수 없게 될 거고요.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배려라고 볼 수 없겠지요. 절반은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고 절반은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면 좋겠지요? 사실 난 절반이 아니라 온전히 여러분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러면 여러분이 손해를 보게 될 것 같아서요. 오늘부터는 여러분이 사랑의 주인이 되세요.”

곧 방학의 계절이 돌아온다. 방학만이라도 아이들이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자명 안준철 (순천 효산고 교사·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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