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열린 제1회 서울 국제 바흐 페스티벌 연주 모습.
지난 반세기 동안 클래식 음악계에 떠오른 가장 큰 화두는 ‘당대 연주’라는 것이다. 옛 음악을 그 시대에 사용했던 악기와 해석 방식에 따라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접근이 필요한 것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던 방식이 100년, 200년이 지나면서 악기가 개량되고 연주 스타일이 바뀌면서 처음에 작곡되었던 것과는 다른 식으로 조금씩 굳어져갔기 때문이다. 소규모 연주자들이 하던 것을 오케스트라가 공연하고, 중창이 노래하던 것을 매머드 합창단이 부르게 되는 식이었다.

악기 자체의 변화가 가장 심했다. 과거에 현악기의 줄은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재질이었지만 19세기 말에 들어 다루기 쉽고 강인한 철사 재질로 바뀐다. 처음 악기를 위해 고안한 것과는 다른 소리가 나게 되었다. 관악기도 목재에서 금속으로, 점차 소리가 크고 윤기 있게 바뀌었다. 화려하지만 과거의 소박한 맛은 찾기 힘들었다.

그림과 비교하면 더욱 이해가 쉽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세월이 가면서 유약이 변질되고 먼지가 끼여 침침해졌던 것을 복원 작업했더니 훨씬 가벼운 느낌으로 살아났다. 이를 두고 본모습을 찾았다고 하는 편과 그 야한 색조가 마치 ‘이발소 그림’처럼 보인다는 편이 팽팽히 갈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어떤 도판도 ‘천지창조’를 이전의 침침한 모습으로 복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당대 연주가 이뤄졌을 때는 생소한 악기에서 나오는 어설픈 연주와 그 강렬한 음색 때문에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다. 하지만 선구자들의 노력은 점차 빛을 보게 되어 이제 더 이상 바로크 시대 협주곡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본고장의 이와 같은 행보가 우리에게는 아직 먼 것으로만 느껴졌다.

2005년 5월 서울 한가운데서도 뜻하지 않은 횡재를 만날 수 있었다. 열흘간에 걸쳐 열렸던 제1회 서울 국제 바흐 페스티벌은 참가한 음악가들의 면면으로 볼 때 단일 작곡가를 기리는 축제로는 세계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축제를 기획한 곳이 공연기획사나 문화재단이 아닌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소장·강해근 교수)라는 것이다. 이 연구소는 당대 연주의 저변을 넓혀 우리도 당대 연주를 시작해보자는 데 궁극의 목적을 두고 있다. 페스티벌을 시작하기 한 해 전 연구소 산하에 ‘콜레기움 무지쿰 한양’이라는 연주 단체가 창단되었다. 바흐가 250여 년 전 라이프치히에서 학생들을 이끌고 연주했던 ‘콜레기움 무지쿰’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 그 발전은 비약적이다.

2회째 맞아 최고의 바흐 전문가로 '북적'

2년이 지난 올해 제2회 대회가 열린다. 축제가 예고한 바와 같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아직 콜레기움 무지쿰 한양의 이름을 해외 유수한 아티스트의 공연 속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2년 뒤 3회 페스티벌 때는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거기에 자양분이 되고 촉매가 될 이번 축제의 개요를 살펴본다.

한양대 음악연구소가 기획한 바흐 페스티벌은 단일 작곡가를 기리는 축제로는 세계적 수준이다.
10월18일부터 말까지 열릴 여덟 차례 공연과 한 차례의 학술 심포지엄에 참가할 음악가와 학자들 역시 우리 시대 최고의 바흐 전문가들이다. 나이젤 노스는 르네상스의 꽃인 류트(만돌린과 비슷한 모양에 6~13개 줄이 있는 현악기)를 오늘날에 부활시킨 연주자 가운데 하나이다. 유명 기타리스트 줄리언 브림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가 꼭 가지고 싶었던 능력을 가진 사람의 공연을 봤다. 나이젤 노스의 바흐 공연이었다. 얼마나 탁월하고 음악적이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 소중한 경험이었고 보통의 기타나 류트 연주자들에게 기대할 수 없는 진귀한 것이었다.”

노스는 두 차례에 걸쳐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의 류트 음악 그리고 바흐의 음악을 통해서 류트의 황금시대를 재현한다.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를 다루는 피에르 앙타이는 두 차례의 바흐 ‘골트베르크 변주곡’ 녹음으로 극찬을 받았다. 바로 서울 무대에서 그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앙타이는 ‘골트베르크 변주곡’과 더불어 같은 시기의 프랑스 음악가인 쿠프랭과 라모의 음악을 이틀간 선보인다.

이어지는 연주자는 오르가니스트 존 버트이다. 영국 출신의 건반 연주자인 버트 또한 나이젤 노스나 피에르 앙타이 등과 동료이다. 모든 악기의 꽃인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통해 바흐가 그렸던, 신앙과 예술이 일치하는 경지를 들려주게 된다. 특히 버트는 ‘바흐 음악의 수사학’이라는 제목의 강연과 연주를 병행할 예정이다.
소프라노 에마 커크비는 바로크 성악 음악의 보석과 같은 존재로 지난 30여 년을 팬들과 함께했다. 여왕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르네상스 시대 전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였던 존 다울랜드와 바로크 시대 영국이 자랑했던 헨리 퍼셀의 음악으로 리사이틀을 갖는다.

타펠 무지크는 캐나다 제일의 당대 연주 앙상블이다. 첫날 공연에서 그는 에마 커크비를 다시 불러 바흐의 ‘결혼 칸타타’를 연주한다. 함께 들려줄 ‘관현악 모음곡’ 또한 바흐가 전 유럽의 춤곡 양식을 집대성한 ‘양식의 보고’이다. 두 번째 날에는 바흐의 관현악 곡과 비발디의 ‘사계’를 당대 악기 및 연주 스타일로 선보이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는 축제의 일환으로 ‘국제 바흐 학술 심포지엄’을 연다. 여기 참가하는 학자는 앞서 소개한 존 버트를 비롯해 오늘날 가장 권위 있고 폭넓은 음악 연구로 존경받는 크리스토프 볼프와 요시다케 고바야시 등이다. 이들이 바흐와 고음악 해석의 이론적인 지평을 넓히게 된다. 이 심포지엄은 무료로 일반에 공개된다.

기자명 정준호 (음악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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