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뜨고 있다. 2013년 1월 재취임 이후 하향 곡선을 그리던 그의 지지도가 반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30일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41%까지 하락했던 그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50%를 돌파했다. 미국 정치평론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무난히 레임덕을 피해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어떻게 그런 반전이 가능했을까? 감동과 치유의 정치력 때문이다. 6월26일 오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의 흑인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추모연설을 하다 말고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첫 소절을 불렀다. 성가대와 5000명이 넘는 추모객이 그를 따라 합창했고 이는 CNN을 통해 전 미국에 방영됐다. 희생자 가족, 친지와 하나가 되어 슬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진정성의 정치가 진가를 보인 것이다.

소통의 정치도 큰 몫을 했다. 오바마는 취재기자들은 물론 다양한 시민들을 수시로 만나 햄버거와 맥주를 나누며 소통의 기회를 가져왔다. 여기에 그의 부인 미셸 오바마도 가세해 소통의 장을 넓혀왔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분노를 표하고 에볼라에 감염된 환자에게는 뜨거운 포옹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적대 세력과의 소통도 마다하지 않는다. 같은 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반대하자 그는 공화당 의원들과 손잡고 끝내 법안 통과를 관철했다.

궁극적으로는 약속했던 정책의 성공적 이행이 빛을 보고 있다. 경제회복과 고용창출 증대가 대표 사례다.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케어(건강보험개혁법)를 관철시켰고,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역사적 결정을 얻어냈다. 자신이 펼쳐온 리버럴 어젠다에 충실했고 이를 실현시켰다. 외교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의회는 TPP의 신속한 타결을 위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무역협상촉진권한(TPA)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국교 단절 54년 만에 쿠바와 외교를 정상화했다. 이란과의 핵 협상도 타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 미국 국민들이 신이 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리 대통령은 어떤가? 불행하게도 감동과 치유의 정치가 없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 그리고 청년실업 문제를 다루는 데 감동이 없다. 무감각한 훈계, 책임 회피와 떠넘기기밖에 없다. 국민이 당혹스러워하고 상처가 덧나는 게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우리 모두를 웃기고 울리며 감격과 환호에 넘치게 하는 대통령의 정치적 마술을 찾아볼 수 없다.

여론에 일희일비하는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 주도권이 있겠나

소통이 없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듣고 말하며 감싸 안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청와대 참모, 각료들과의 공식회의에서도 일방통행의 지시만 있어 보인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타운미팅은 고사하고 취재기자들과 번개팅 한 번 제대로 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이번 국회법 파동만 해도 그렇다. 그 사안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할 정도로 중차대했다면 사전에 여야 의원을 가리지 않고 만나 설득했어야 했다. 소통과 설득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덕목 아닌가.

여론에 너무 민감한 대통령과 그 참모들도 문제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여론의 흐름에 일희일비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소신과 용기를 가지고 과감히 정책들을 추진하면 되는 것 아닌가. 여론에 좌우되는 수동적 팔로십(followship)이 아니라 여론을 주도하는 리더십(leadership)을 보일 때 국민들이 대통령을 믿고 따르는 법이다. 여론 추이에 민감한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잡기 힘들다.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정치는 신바람이 나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가시화되는 것을 국민들이 느껴야 한다. 경제가 풀리고 청년 일자리가 생겨나며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장밋빛 공약만 잔뜩 남발해놓고 되는 게 없으니 국회 탓하는 것, 이건 아니다. 그러니 국민들이 실망하고 비아냥거리는 것 아닌가.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미망(迷妄)이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아직도 2년6개월 남은 정부다. 남은 시간에 절망이 아니라 희망, 비아냥이 아니라 신바람 넘치는 국정 운영을 기대해보는 것. 지나친 기대일까?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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