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IN

노란색 옷 차려입고 매주 고비라고 하네
무슨 말만 하면 ‘유언비어’래

그 내용은 일단 ‘삭제’하고 봅시다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 국가적 보건 역량을 총동원하길 바란다.” 6월1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말이다. 메르스 관련 대통령의 첫 발언은 초동 대처 실패 뒤에 나왔다. 6월3일에는 대통령이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거듭 사과한 것도 초동 대처 실패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대통령이 질책하고 각종 본부와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진 이후에는 방역 시스템이 작동했나. 보건 당국은 민간 병원을 장악했나. 당국의 초기 오판이 확인되고 이름을 구분하기 힘든 여러 컨트롤타워가 세워진 후 벌어진 일을 들여다보면, 답은 우울하다. 대응이 아니라 무능이 진화했다.

거듭되는 거짓말과 말 바꾸기

6월7일 발표된 확진자 명단에 포함된 62번 환자(6월6일 확진)는 삼성서울병원 의사다. 그런데 명단에는 ‘5.27~5.28 D의료기관 응급실 체류’라고 표기했다. 6월7일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이 기자회견에서 “62번 환자는 본원의 의사”라고 밝힌 뒤에도 보건 당국은 이 환자를 줄곧 응급실 체류로 표기했다. 확진 한참 뒤인 6월15일에야 보건 당국은 뒤늦게 62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의사라고 확인했다.
 

ⓒ연합뉴스6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은 충북 오송 국립보건연구원으로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을 호출했다.
6월12일 확진 판정을 받은 138번 환자도 삼성서울병원 의사다. 6월13일 확진자 명단에 포함된 이 환자는 ‘역학조사 중’이라고 돼 있었다. 그런데 6월14일 공개한 자료에 ‘#14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체류’라고 표현했다. 굳이 ‘의료진’이 아닌 ‘체류’ 표기를 했다.

보건 당국은 6월14일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138번은 응급실에 근무한 의사”라고 시인했다. 왜 체류라는 표현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 체류라는 말이 거기서 근무를 한 의료인”이라고 답했다. 바로 전날에는 “가족이나 간병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들은 ‘체류’라고 표현했다”라고 설명했다. 국가기관의 공식 브리핑에서 하루 만에 용어의 정의가 바뀌었다.

6월13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142번 환자에 대해서도 보건 당국은 사실과 다른 표기를 했다. ‘5.27~29 #14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체류’라고 적었는데, 알고 보니 응급실에 체류한 게 아니라 응급실 뒤쪽 통로로 연결된 1층 화장실을 이용했다. 6월11일에 이어 감염 장소가 응급실 밖을 벗어난 사례가 추가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6월14일 확진된 146번 환자는 잠복기(14일)가 이틀 지난 6월13일부터 증상이 나타났다. 보건 당국 자료는 ‘5월27일 14번 환자와 응급실에 체류했다’고만 표기하고 3차 감염자인 76번 환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가 질의응답 과정에서 밝혔다. 4차 감염 가능성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삼성서울병원은 보건 당국 위에 있나

6월13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이송요원이 증상 발현 뒤에도 9일이나 계속 근무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이는 6월14일 삼성서울병원이 부분 폐쇄를 선언한 계기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초대형 구멍이 뚫릴 수 있었을까. 권덕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은 6월15일 브리핑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 부분은 정규직·비정규직 따지지 않고 노출 위험도에 따라서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삼성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라고 본다. 노출 위험도에 따라서 철저하게 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 우리 민관합동 TF 즉각대응팀이 가서 장악을 하고 그 부분에 대해 철저히 하고 있다.”

같은 날 삼성서울병원은 공식 입장을 이렇게 냈다. “일부 언론이 ‘이송요원이 비정규직이라서 명단 파악에서 빠졌다’고 보도한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 보건 당국의 공식 발표는 ‘일부 언론 보도’ 취급을 당했다.
 

ⓒ연합뉴스6월17일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 일선 현장에서는 “누가 진짜 컨트롤타워인지 모르겠고, 정말 행정이 안 돌아간다”는 말이 나온다.
이 병원은 5월27일에서 29일 사이 14번 환자(삼성서울병원 최초 전파자)에게 노출된 이송요원 7명을 파악해 자가격리 조치를 취했고, 미화원 6명, 병동 보조요원 17명도 파악해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6월16일에는 “삼성서울병원 비정규직 직원 73명이 발열 증세를 보인다”라는 내용의 서울시 브리핑을 역시 ‘언론 보도’로 간주하고 반박했다. 전 직원 8440명을 대상으로 증상 조사를 시행했으며 오전·오후 매일 2회씩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병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취했다는 조치를 언제부터 했는지 명확히 하고 있지 않다. 사죄 기자회견을 했지만, 이송요원이 리스트에서 빠진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당국 브리핑은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삼성서울병원이 최대 진원지가 된 이후에도 보건 당국이 이 병원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렇게 전국에 공개되었다.

이재갑 교수(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는 “보호자도 아니고 병원 직원이 노출자 리스트에서 빠진 것은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이 안 된다. 비정규직은 직원이 아닌가. 삼성서울병원은 이에 대해선 아무런 할 말이 없다”라고 했다.

6월1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삼성서울병원은 그동안 메르스 대응과 관련해 국가방역망에서 사실상 열외 상태였고 그것이 오늘날 큰 화를 불렀다. 삼성서울병원에 전권을 맡기는 건 부적절하고 정부와 시가 참여하는 특별대책반이 업무를 총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응급실 이송요원이 증상 발현 뒤에도 근무했다고 확인된 후 나온 발언이다.

이에 대해 보건 당국은 당일 바로 보도자료를 내고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근거는 이렇다. “이미 6월13일 민간 전문가를 주축으로 즉각대응팀을 구성하여 역학조사 및 방역조치 등을 총괄적으로 지휘하고 있음.” 이송요원이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6월12일이고, 박 시장의 기자회견은 이를 겨냥했다. 그런데 보건 당국은 그 뒤 행한 조치를 강조하면서 ‘사실무근’을 주장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을 내놓았다.

박원순 시장 기자회견에 대해 송재훈 삼성서울병원 원장은 병원 폐쇄를 선언하는 자리에서까지 “저희 병원이 독단적으로 시행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모든 것을 방역 당국과 상의하고 협의하면서 진행해왔다”라고 반박했다. 이 해명은 보건 당국의 설명과 앞뒤가 안 맞는다. 보건 당국은 6월14일 브리핑에서 이른바 ‘삼성 봐주기’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병원 내에서 충분히 파악을 해서 관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지나놓고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조금 미흡한 면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상황은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벌써부터 책임 떠밀기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 권한 줬다더니 현장에선 ‘방패막이’

6월8일. 박근혜 대통령은 “전문가들이 전권을 부여받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해 즉각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하겠다”라며 즉각대응팀 구성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병원폐쇄 명령권을 가진 전문가 중심의 즉각대응팀(공동팀장 복지부 차관·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이 구성됐다. 이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본부장인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이끄는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문 장관이 팀장인 민관합동대응 태스크포스 등이 활동 중인 시점에서 이뤄진 조치다.
 

ⓒ연합뉴스평택의 전통시장을 방문한 최경환 당시 총리대행. 그는 6월9일과 16일에 “이번 주가 고비”라고 말했다.
이런 옥상옥 대응팀이 현장에서 제대로 돌아갈까. 일선에서 협력하고 있는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6월18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누가 진짜 컨트롤타워인지도 잘 모르겠고, 전문가로서 의견을 내도 의사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정말 행정이 안 돌아간다”라고 탄식했다. “의심 환자나 확진 환자가 생기면 중앙의 컨트롤타워가 딱 자리 잡고 전국 상황을 파악해서 이송할 병원을 결정해야 하는데 그것도 되지 않는다. 지자체는 우리 지역 환자가 아니어서 못 받겠다고 미룬다. 전날 어느 병원에서는 환자 전원(병원 옮김)을 하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중앙정부가 그걸 조절할 정치력도 없고 행정력도 없다.” 전문가에게 권한을 준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대통령 한마디로 우리에게 권한이 생기나. 언론에는 마치 큰 권한이 주어진 것처럼 보도됐지만 실제로는 의견을 내도 안 받아들여지면 끝이다. 대신 방패막이가 된 것 같다.”

정부의 대응 중에서 일관성을 유지한 대목이 있다. 낙관이다. 5월31일 정부는 “앞으로 일주일이 메르스 확산이냐 진정이냐의 기로”라고 했다. 이후 3차 감염이 발생했다. 6월9일 최경환 총리 직무대행은 “이번 주가 메르스 사태 해결의 최대 고비”라고 말했다. 6월11일 삼성서울병원 외래 환자가 감염된 사실이 알려졌고, 6월13일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이송요원이 방역망에서 빠진 채 9일간 근무한 사실이 드러났다. 6월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이 고비”라고 말했다. 이후 당국이 없을 것이라 장담하던 4차 감염이 늘어갔다. 6월16일 최경환 총리 직무대행은 다시 한번 “이번 주가 메르스 확산의 고비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재갑 교수는 메르스 환자 발생 추세가 “정상 범위에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14번 환자와 역학관계가 없는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리 자체가 실패했다는 증거다. 앞으로의 유행 패턴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가장 걱정이다. 안갯속에 빠졌다.” 조성일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도 “명확한 오류는 접촉자가 누락된 것이다. 최대한으로 했어야 하는데 최소한으로 했다. 접촉자 파악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상황은) 계속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17일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을 충북 오송 국립보건연구원으로 호출했다. 원장은 “메르스 사태 때문에 대통령님과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렸다. 너무 죄송하다”라고 말하며 허리를 90°로 굽혔다. 정부가 메르스 사태 이후 한 달 동안 삼성서울병원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장면이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