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창법과 공권력을 비웃는 것이 해로울까, 거기에 대고 더 세게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해로울까. 법치주의를 제대로 배운 검사는 요즘, 무조건 엄포를 놓는 대통령·법무장관·경찰청장 때문에 무척 고민스럽겠다.
여기 네 가지 장면이 있다.

〈장면 1〉 대통령,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거대한 촛불 물결을 보고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그날 밤 한나라당, “인터넷 통제 방안을 만들겠다.” 법무부 장관, “네티즌 엄정 처벌, 인터넷 범죄 단속 특별지시.” 경찰, “3000명 이상 도로 점거는 불가피하나 수백명 도로 점거는 엄히 대응하겠다.”

〈장면 2〉 조·중·동, “무차별 전화 공세와 인터넷을 통해 이를 부추기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 “일부 네티즌이 불법 사이버 테러 행위를 선동.” “광고주 협박은 마피아 같은 조직범죄에 작전세력까지 합세한 듯한 양상.”

〈장면 3〉 경찰 ‘확성기녀’, “여러분은 지금 도로를 점거하고 집시법 등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속히 해산해주십시오. 과연 여러분의 행위가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이 있는 건지 판단하십시오.” “불법 시위대는 절대 해산하지 마십시오. 우리 경찰이 당신들을 반드시 검거해 책임을 묻겠습니다.”

〈장면 4〉 광화문 촛불들, “전경버스 불법 주차에 국민의 이름으로 딱지를 붙이겠다.” “얼짱 각도 보장하라(경찰의 채증 사진 촬영에 대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경고 방송을 위해 마이크를 잡는 경찰에 대해) 노래해~, 개인기.”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된다고 했잖여~ 조·중·동에 광고하는 회사 물건 싫어서 안 사겠다고요.” “닭장차 투어하자, 비켜주세요, 자진해서 연행되겠습니다.”

위 장면 중 어느 것이 법치주의를 가장 크게 훼손할까?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수단으로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과 현 실정에 맞지 않는 법률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또는 실정법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행위를 무조건 처벌하겠다고 공표하는 것 중 무엇이 가장 나쁠까? 가끔, 아니 자주, 아니 요즘은 거의 매일, 이 질문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사람들이 이제는 경찰 앞에서 일부러 도로를 점거하고,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심지어 경찰차에 스스로 올라타 잡아가라고 드러눕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사람들의 준법정신이 약해졌다”라며 엄하게 처벌하겠다고 나서면 완전 코미디가 된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몰라도 ‘신뢰 저해사범 전담수사팀’이라는 이름은 그 코미디의 극치다.

ⓒ뉴시스시민이 경찰 버스에 ‘불법 주차’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검사들만 제대로 할 일을 한다면

법치주의의 기본 전제는 모두가 똑같이 법을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실정법 위반은 그 약속 위반이다. 그러나 실정법 위반인지 단정할 수 없는 행위를 정부가 무조건 엄단하겠다고 공표하면, 사람들은 “그런 게 어딨냐, 그럼 나도 그런 법 안 지킨다”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 큰 약속 위반이 된다. 이건 달리 보면 법과 공권력을 조롱하고 비웃는 것이 더 해로울까, 아니면 조롱당하는 것에 불끈 화내며 더 강하게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더 해로울까 하는 문제와 같다. 개인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정부는 왜 이럴까? 혹시 정부의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제대로 할 일을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법리적으로 문제 삼을 ‘깜’도 되지 않는 ‘광고거부 운동’, 촛불이 불특정 다수여서 소송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조·중·동의 악의적 명예훼손 행위, 법적으로 문제되는지 검토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터뜨리는 대통령·법무장관·경찰청장의 엄포. 법치주의를 제대로 배운 검사라면 요즘 상관의 무리한 밀어붙이기 속에서 무척이나 고민이 많겠다. 그래도 힘내라, 검사들!

기자명 송호창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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