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수신료 인상안을 다시 꺼내들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상안을 꺼내든 것은 연임에 마음을 둔 조대현 사장이고, 이사회는 이를 거드는 모양새다. 수신료 인상의 본격 시동은 6월1일 조대현 사장 기자회견 때 이루어졌다. 이날 발표된 인상안은 현 이사회가 여당 추천 이사들만의 단독 의결로 방통위원회를 거쳐 국회에 계류 중인 내용이다. 단독 의결 당시 이미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절차적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일방적 추진이다. 그러나 KBS 사장과 이사 모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안을 논의하고 추진해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회 통과 절차를 거치기에는 여력이 없으니, 국회만을 압박하는 속전속결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국민의 공영방송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현실적 방안을 모색한다’라는 이사회 주최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회사 측도 이사회도 이렇다 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아서 많이 당황스러웠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KBS 세부안의 내용은 이렇다. 수신료를 1500원 올리면 연 3000억원이 늘어나므로 기존 6000억원 규모의 전체 광고에서 2000억원을 축소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광고를 전면 폐지해 BBC나 NHK 수준의 재원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번 인상안을 통해 1500원 인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남아 있는 4000억원 수준의 광고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가구당 2000원가량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 이러한 광고 축소 방안은 재원 구조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율을 수신료로 바꾸는 것일 뿐 전체 재원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KBS 안에 따르면 KBS는 새롭게 늘어나는 연 3000억원 중 700억원(광고 축소 연 2000억원과 EBS 지원 확대 300억원을 뺀 금액)으로 약속한 ‘60개 공적 서비스’를 구현해야 한다. 이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60개 공적 서비스의 사업 규모가 5년간 총 8504억원이라고 했으니, 대충 계산해보아도 약 5000억원의 재원이 어디선가 더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EBS의 경우에도 약 300억원을 추가로 배분받지만 약속한 광고 축소, VOD 무료화 등의 수익 감소를 고려하면 200억원 남짓한 추가 재원이 형성될 뿐이다. 이는 질 높은 공익적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도, 수신료 2500원 중 고작 70원을 지원받고 전체 재원 대비 수신료 비율이 6%에도 이르지 못하는 현재의 기형적 상황을 개선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EBS는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어 수신료의 15% 배분, 연 1300억원의 추가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KBS가 축소하겠다는 광고 2000억원은 어디로 흘러갈까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대신증권이 발표한 또 다른 자료다. 이 자료에 따르면 KBS가 축소하겠다는 광고 2000억원 가운데 약 1700억원이 타 매체로 수렴된다. 이 중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쪽은 SBS이다. 예상되는 추가 수익 규모는 약 680억원이다. 여기에 보수 언론, 특히 종합편성채널로 흘러들어갈 광고의 규모가 연 700억원에서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국민 부담을 늘려 공적 영역 KBS 700억원, EBS 200억원, 상업 영역 SBS 680억원, 종합편성채널 700억~1000억원 등으로 돈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뭔가 음모론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KBS 안은, BBC도 NHK도 존립을 위협받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수신료 인상분을 허투루 배분해 국민 부담만 가중시키겠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미래에 대한 위협에 가깝다. 공영방송의 서비스를 강화하려면 KBS와 EBS에 추가 재원을 투입하고 무료 다채널 서비스 및 모바일 서비스, 고품질 콘텐츠 제작 등 공공성이 강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정부·여당이 지배구조 개선, 수신료산정위원회 설치, 회계 분리 등을 계속 외면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공적 서비스를 안정화할 수 있는 절충점이기도 하다.

공정성·공익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KBS가 국민 부담 수신료를 공적 서비스 강화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할 권리는 없다. 만약 KBS가 연간 700억원을 확대해 ‘60개 공적 서비스’를 공고히 할 수 있다면 국민 부담은 500원만 올리면 된다. 공표된 계획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함을 인정한다면 광고 축소 없는 1000원 인상안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그래야 변화하는 매체 환경에서 제대로 된 공공 영역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런데도 쫓겨난 길환영 사장에 이어 조대현 사장이 다시 광고 축소안을 들고 나온 것은 국민을 호구로 여기는 것에 불과하다.

기자명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