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7월의 부시 방한 전까지 한·미 양국은 미국산 무기 구매 및 주한미군 주둔비 인상 따위 문제를 협의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지난 6월 초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의 방한 때부터 이미 견해 차이가 발생하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7월 초 서울 방문 약속을 취소한 이유를 촛불시위에서 찾는 것도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이유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한·미 동맹 복원’이라는 공동의 키워드를 둘러싸고 전개됐던 양국의 ‘동상이몽’이 모두 드러나면서, 파탄에 이른 결과라는 면도 무시할 수 없다. 촛불이 없었다 해도 부시 대통령의 서울 방문이 녹록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얘기다.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 방미 때 일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미국 방문을 앞두고 당시 한국 정부는 방미 목적을 대폭 축소해야 했다. 투자 유치, 북핵 공조 등은 이미 방미 직전에 내버렸다.

방위비 분담에 대한 미국의 과도한 요구 분출

남은 게 바로 한·미 동맹 복원이었는데, 미국에 가기도 전에 이미 양국 간에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엄청난 견해 차이가 드러났다. 한국 측은 한·미 동맹 복원에 대해 주로 신뢰 회복에  국한해서 접근한 느낌이 강하다. ‘가치동맹·신뢰동맹·평화구축 동맹’ 등 주로 립서비스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측은 아주 ‘진지’했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동맹 복원에 노력한다고 했으니, 최소한 노무현 정부 때 관철하지 못했던 요구 사항을 모두 해결할 수 있겠다’고 기대한 것 같다. 그래서 대통령 방미 직전 미국 측이 쏟아낸  ‘쇼핑 리스트’만 보면 입이 쩍 벌어질 지경이었다. 아프간 재파병에서부터 무기 구매, 주한미군 주둔비 및 기지 이전비 인상 등등. 미국의 일부 전문가는 언론 기고문에서 ‘이명박 정부 등장은 미국에는 횡재다’라고 쓰기도 했다는데, 국내에서도 “미국 군수산업이 공화당 정권 끝나기 전에 한국으로부터 한몫 단단히 챙기려고 하는 것 같다”라는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연합뉴스현지 시각 4월19일 오전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

미국의 과한 요구에 놀란 한국 정부는 한·미 동맹 복원 문제와 관련해 편법을 고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번 방문에서는 최대한 추상적 논의만 하고, 미국의 요구 사항은 7월 부시 방한까지 무조건 뒤로 미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6월3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서울을 방문했다. 부시 대통령 방한에 앞선 일종의 ‘구매사절단’이었던 셈이다. 국민의 쇠고기 재협상 요구로 궁지에 빠진 정부 당국자들은 그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그는 재협상에 대한 조건으로 이미 5월 말 구매하기로 결론이 난 아파치 헬기 및 WRSA(전시비축탄약) 외에도, 주한미군 주둔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데 따른 약 5조원의 추가비용 지원 등 군수 및 방위비 지원 증액을 요구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서울을 방문했으면서도 한국 대통령을 만나지 않고 돌아간 미국 국방장관’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리고 7월의 부시 대통령 방한은 사실, 이때부터 이미 벽에 부딪힌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 정부가 처음부터 한 손에는 실용 외교를, 다른 한 손에는 한·미 동맹 복원을 거의 맹목적일 만큼 외쳤던 데에 있다. 동맹 복원을 얘기하면서 실용적으로 하겠다고 하니, 상대방도 철저하게 실용적으로 무장한 채 덤벼든 것이다.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에 직면하면서 서로 관계만 어색해진 꼴이 되었다. 그나마 촛불집회라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마저 없었다면 양국 관계의 꼴이 더욱 사나워졌을지 모른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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