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와 흑산도에 공항을 건설하는 문제로 시끄럽다. 섬 관광을 활성화하려면 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사업비가 수천억원 드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울릉도와 흑산도에 공항을 건설하자는 주장은 아마 일본 가고시마 현의 야쿠시마(屋久島)를 모델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구 1만3000여 명이 사는 섬이지만 야쿠시마에는 공항이 있고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의 실제 모델인 야쿠시마에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비결은 공항이 아니다. 섬을 생태적으로 잘 보존했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를 상용화하기 위해 섬 곳곳에 만들어둔 전기충전소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도로 건설을 자제해서 환경 파괴를 막은 점이다. 섬 안쪽에 원형 모양으로 산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안쪽으로는 거의 도로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원시림은 오직 두 발에 의지해서만 볼 수 있다.

야쿠시마 원시림의 풍광
야쿠시마 원시림 트레킹을 할 때 가장 감동적인 점은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력이나 기술력이면 충분히 편리를 도모할 만한데도 불편한 채로 그냥 두었다. 대신 버려진 나무나 돌을 활용해 길을 보완했다. 돌보지 않는 듯 돌보았다. 자세히 보면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지만 티를 내지 않는 것이 더 인상적이다. 자연과 공존하려는 인간의 자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섬이다.

야쿠시마 원시림 트레킹에는 크게 두 코스가 있다(〈시사IN〉 제377호 ‘숲의 품에 안겨 자연의 시간을 더듬다’ 기사 참조). 하나는 섬 최고봉인 높이 1936m의 미야노우라다케 정상을 지나는 종주 코스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야쿠시마를 잘 아는 사람들은 요도가와 등산로 입구로 들어간 뒤 하나노에고 늪지를 거쳐 미야노우라다케 정상을 밟고 조몬스기를 보고 오는 이 종주 코스를 권한다. 여러 봉우리를 넘어야 해서 길이 좀 험하지만 야쿠시마의 진정한 매력을 볼 수 있다.

야쿠시마를 방문하는 대다수 관광객들은 이런 종주 코스보다는 당일 코스로 7000년 된 나무 ‘조몬스기(繩文衫)’를 보고 오는 방법을 선택한다. 시라타니운스이(白谷雲水) 협곡의 등산로 입구를 통해 다녀오는 왕복 22㎞ 코스인데 8~9시간이 걸린다(식사와 휴식 시간 포함). 이 길을 통해서도 야쿠시마 숲의 신비로움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야쿠시마에서는 수령 1000년 이상 된 삼나무를 ‘야쿠스기(鹿兒杉)’라고 부르는데 왕복 코스 여기저기에 이 고목들이 포진해 있다.

시라타니운스이 계곡은 물이 풍부하고 깊다. 맑은 물소리와 함께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쓰치 고개(979m)까지 가는 오르막길에서는 좁은 계곡들을 만나게 되는데 돌에 이끼가 끼어 있는 모습이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트롤과 비슷하게 생겼다. 쓰치 고개에서는 왕복 트레킹 코스를 잠시 벗어나 전망대에 올라 야쿠시마 섬의 전경을 보고 오면 좋다. 고개를 넘어 구소가와 갈림길까지는 내리막이다.

ⓒ김응용 제공시라타니운스이 협곡
‘아낌없이 주는’ 그루터기, 쉬어가기 좋구나

구소가와 갈림길에서 윌슨 그루터기로 가는 갈림길까지는 산림철도로 쓰이던 길을 걷게 된다. 해발 700m 정도 지점에서 해발 900m 지점까지를 오르는 길이지만 워낙 길어서 평지를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깨 위의 짐을 내려놓을 수는 없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산책하듯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산림철도에서 만나는 첫 번째 야쿠스기는 삼대삼(三代衫·산다이스기)이다. 첫 삼나무가 죽고 난 뒤 썩은 그루터기에서 두 번째 삼나무가 자라고, 두 번째 삼나무가 부러져 죽은 그루터기에서 세 번째 삼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파괴가 바로 재창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나무다.

윌슨 그루터기는 세상에서 가장 쉬기 좋은 그루터기다. 보통은 그루터기 위에서 쉬지만 이 그루터기는 안에서 쉰다. 윌슨 그루터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불전 건축에 필요한 목재로 쓴다며 삼나무 둥치를 베어버린 뒤에 남은 거대한 그루터기인데 안이 상당히 넓다. 믿기 어렵겠지만 유치원 교실만 하다. 한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다른 한쪽에는 조그만 제단이 있다. 그루터기 상단 구멍을 특정 지점에서 찍으면 하늘이 하트 모양으로 나와서 관광객들이 꼭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보통 조몬스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윌슨 그루터기 주변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도시락을 먹다 보면 낯선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야쿠시마 사슴 야쿠시카다. 일본 본토 사슴보다 체구가 작지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원숭이를 마주치기도 하는데 야쿠시카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별로 경계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윌슨 그루터기에서 조몬스기까지 가는 길이 오래된 ‘야쿠스기’가 가장 많은 곳이다. 대왕처럼 우뚝한 대왕 삼나무(大王衫·다이오스기), 두 나무가 붙어서 2000년 넘게 해로했다는 부부 삼나무(夫婦衫·후후스기)를 지나면 드디어 조몬스기가 나온다. 나무 옆으로 흰 주름이 있어서 마치 할머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나무다.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물게 만든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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