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시사IN 한향란정동영 후보를 ‘곶감 동영’이라 공격한 유시민 의원(왼쪽). 유시민 의원 저격수로 나섰던 정청래 의원(오른쪽).
열린우리당에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이 바뀌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기자들은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구도를 ‘친노 대 비노 대 반노’의 구도로 분석했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친노인 이해찬, 비노인 정동영, 반노인 손학규 구도로 나누어 경선판을 본 것이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내 친노 세력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이번 경선은 철저하게 ‘친노끼리의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격렬했던 이해찬 캠프와 정동영 캠프의 싸움은 ‘친노 세력의 내전’이었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무슨 얘기일까?

정동영 후보가 선거인단 투표에서 선전하는 데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조직은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줄여서 ‘정통들’이라고 하는 사조직이다. ‘정통들’은 조직투표와 동원투표로 초반 손학규 대세론을 잠재웠다. 그런데 이들은 원래 ‘노무현과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정통들’의 모태가 되었던 조직은 ‘국민참여1219’다. 그리고 ‘국민참여 1219’의 모태가 되었던 조직은 ‘국민의 힘’이다. 그리고 이 ‘국민의 힘’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파생된 조직이다. 즉 ‘정통들’의 뿌리는 ‘노사모’이다.

‘정통들’과 정동영 캠프에는 노무현 신화를 만든 ‘노사모’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국민경선대책위원장으로 노란 손수건과 희망돼지 저금통을 들고 전국을 누볐던 ‘미키루크’ 이상호씨가 국민통합추진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 ‘정통들’을 이끌고 있고 이씨와 함께 탄핵무효집회 사회를 보았던 노사모 부산경남 사무국장 ‘처리’ 장영철씨는 정 캠프의 운영관리팀장을 맡고 있다.

둘 말고도 노사모 출신이 즐비하다. 부산경남 노사모 대표로 노사모 밴드 리드 싱어를 맡기도 했던 ‘자유인’ 나호주씨는 ‘국민통합추진운동본부 전국본부장’을, 경기 북부 노사모 대표를 맡았던 ‘소운’ 심화섭 교수는 조직기획팀장을, 서울 동부 노사모 대표 ‘영원한 미소’ 김명렬씨는 ‘정통들’ 전국대표를, 경기 서부 노사모 대표 ‘신발’ 염종현씨는 경기 서부 ‘정통들’ 대표를 맡고 있다. 이들은 경선의 최전선에서 옛 동료들과 격렬하게 육박전을 벌였다.

이들의 반대편, 이해찬 캠프에는 ‘노사모 연합군’이 있었다. 기존 노사모 멤버들과 노사모 출신으로 개혁당에 참여했다가 개혁당이 열린우리당과 합당한 이후 참정연(참여정치실천연대)을 만들었던 유시민 의원 팬클럽인 ‘시민광장’, 노무현 대통령 직계인 의정연(의정연구센터), 그리고 청와대와 내각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참여정부평가포럼 등이 연합한 ‘포럼 광장’이 ‘정통들’과 맞섰다.

ⓒ시사IN 윤무영노사모와 친노 세력 중 참정연·의정연·참평포럼 출신들은 연합해서 이해찬 후보를 지지했다.

이해찬 캠프에 참여한 노사모 출신들은 정동영 캠프의 노사모 출신 참가자에 대해 ‘배노’라고 비난한다. 노무현을 배신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기억하는 ‘배노’의 출발은 노사모 축구동아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캠프의 한 노사모 출신 참가자는 “노사모 회원 중 축구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따로 모이기 시작했다. 대선이 끝난 후 그들은 ‘국민의 힘’ 등을 만들어 스스로 정치 행위를 시작했다”라고 기억했다.

반면 ‘정통들’의 노사모 출신들은 오히려 이해찬 전 총리를 돕고 있는 친노 세력을 ‘활노’라고 비난한다. 그들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노무현을 활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활용해서 출세했을 뿐인 사람들이 자신들을 매도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정통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친노 세력으로서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단지 유시민 의원만 반대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친노 반유’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도 상당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이 기억하는 분열의 씨앗은 이렇다.

유시민 의원에 대한 호·불호로 친노 분화

2002년 정청래 의원을 비롯해 노사모 핵심들이 ‘정정당당’이라는 인터넷 정당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유시민 의원이 독점해 개혁당을 창당해버렸다. 그리고 이후 자신의 정치 기반으로 삼았다. 그때부터 유시민 의원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할 수 없어 따로 행동한다. 이것이 ‘정통들’에 속한 노사모를 대표하는 이상호씨의 설명이다.

‘노사모 해체주의자’들이 ‘친노 반유’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기간당원제 논쟁이었다. 당시 유시민 의원을 지지하는 참정연 측에서 정동영 의장을 지지한 이들을 ‘당권파에 붙어 국물이나 얻어먹으려는 자들’이라고 비난하면서 두 진영은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유시민에게 반대하는 것이 선이다’는 암묵적 원칙이 생겼다고 회고한다.

유시민 의원 대신 이들이 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로 선택한 사람은 정동영 전 의장이었다. 이 들이 정 전 의장에게 귀의하게 되는 데에는 ‘1인 2표제’라는 독특한 당내 선거방식도 영향을 미쳤다. 전략적 제휴가 이뤄지면서 이들은 유시민 의원과 대립했던 정 전 의장과 제휴했다. 정 전 의장은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노사모를 현장에서 이끌었기 때문에 그와 함께하는 것은 거부감도 적었다.

ⓒ시사IN 윤무영노사모에서 분화된 ‘정통들’은 정동영 후보를 도우며 조직선거·동원선거를 진두지휘했다.
노사모의 분열에 대한 양쪽의 일치된 기억도 있다. ‘노사모 해체주의자’들은 ‘국민의 힘’과 ‘국민참여1219’를 거쳐 ‘정통들’이 되었고 ‘노사모 존속주의자’들이 이후 안티조선 운동, 탄핵 반대 운동 등을 통해 역량을 유지하다 참여정부의 통치이념을 계승하는 이해찬 후보를 지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사모는 대략 4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쳤다. 지난 2000년 총선에서 ‘지역감정 종식’을 주장하며 부산에서 출마했다 세 번째 낙선한 노무현 후보를 위해 팬클럽이 만들어지던 시기가 1기다. 이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두 번째 확장이, 대선 과정에서 세 번째 확장이 있었다. 마지막 네 번째는 탄핵 이후 ‘탄핵무효 집회’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노무현 당선 이후 노사모 내부는 사수론과 해체론으로 양분되었다. 해체론을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현실정치 참여에 의지를 밝힌 회원들이 ‘국민의 힘’을 조직했다. ‘안티조선’ 운동과 ‘탄핵무효 집회’를 하는 동안 노사모와 함께했던 이들은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 등 당내 선거를 치르면서 점점 분화되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다른 길을 걸었던 ‘정통들’과 이해찬 후보를 지지하는 친노 세력을 비교해보면 다소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비교해보았을 때 정 후보를 돕고 있는 ‘정통들’은 노무현 정부의 혜택을 그다지 못 봤던 사람들이 많은 반면, ‘의정연’ ‘참정연’ ‘참평포럼’ 등 이 후보를 돕고 있는 친노 세력은 노무현 정부의 혜택을 누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친노 세력의 분파라 할 수 있는 ‘정통들’이 이 후보의 ‘노사모 연합군’보다 더 화력이 좋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정통들’에는 노사모 지역조직 대표들이 대거 참석하고 있다. 당내 선거를 여러 차례 치러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조직표를 야무지게 끌어 모았다.

상대적으로 이해찬 캠프의 ‘노사모 연합군’은 조직 역량이 미흡했다. 노사모 출신 활동가들을 다시 끌어 모으고 안희정씨가 전국을 돌며 조직한 참평포럼 등이 총출동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노사모의 손발이었던 ‘정통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에 노사모의 머리였던 참평포럼이 완패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통들’의 완승에 대한 평가는 야박하다. ‘국민참여1219’의 창립 멤버였지만 ‘정통들’에 동참하지 않았던 김갑수씨(현 문국현캠프 사이버대변인)는 “2002년의 선거는 감동과 진정성을 조직적인 힘으로 이끌어낸 선거였다. 그러나 이번 경선에서 ‘정통들’은 감동과 진정성이 없이 오직 조직으로만 승부하는 선거를 치렀다. 더 큰 승리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라고 비판했다.

어찌되었건 이제 경선은 끝났다. 각기 다른 캠프에 속해 치열한 육박전을 치르고 상처투성이가 된 노사모와 친노세력도 다시 한 배를 탔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된다’는 정치 격언을 실현시키며 이들이 다시 함께 해서 2002년의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