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YTN 노조원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에 대통령 특보 출신 ‘낙하산 사장’ 저지를 위한 집회를 연다.
7월14일 YTN이 바뀐다. 대대적인 프로그램 개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사회에서 사장 후보로 추천된 구본홍씨에 대한 사장 임명이 확정되는 것이다. 구씨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언론특보를 했던 인물이다. 구씨가 회사의 상징인 사장으로 임명되면 ‘24시간 보도채널’ YTN은 ‘친이명박 방송’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판이다.

YTN의  대주주 구성을 보면 한전KDN(21.43%) KT&G(19.95%) 미래에셋(13.57%) 한국마사회(9.52%) 우리은행(7.65)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래에셋을 제외한 공기업 및 정부 관계회사 지분이 약 58.5%에 이르기 때문에 주주총회의 사장 임명 투표는 정부의 입김에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 

YTN 노조는 7월14일에 ‘낙하산’ 사장이 임명되면 YTN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언치일’이 될 것이라며 총력 투쟁을 전개한다. 지난 6월26일에는 박경석 기자를 새로운 노조위원장으로 선출하는 등 전열을 정비하기도 했다. 그동안은 임기가 만료된 현덕수 지부장이 ‘공정방송 사수 구본홍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반대 투쟁을 이끌어왔다.

구본홍 전 선대위 언론특보가 YTN 사장으로 일찌감치 내정되었다는 ‘YTN 괴담’은 지난 5월9일 구씨가 YTN 이사회의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 공모 서류를 접수하면서 현실화했다. 5월29일, YTN 노조는 이사회장을 점거해 이사회의 사장 후보 추천을 막으려 했지만 이사회는 회의장을 옮겨 기어이 구씨를 사장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

낙하산 사장 임명을 위해 상황이 가파르게 진행되었지만 노조 집행부와 일부 노조원을 제외하고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직원이 많지 않았다. 한 YTN 기자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현실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많았고 ‘실세 사장이 오니 좋은 것 아니냐’는 ‘동조론’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언론계에는 YTN의 ‘낙하산 반대 투쟁’이 곧 수그러들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YTN 노조와 연대해 돕는 언론노조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도 초기에는 ‘낙하산 사장을 막겠다’는 YTN 내부 구성원의 의지에 대해 미심쩍어했다. YTN 노조 집회에서 지지 발언에 나선 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이 “대충대충 적당히 싸우지 마라. 밥그릇을 걸고 싸우라”고 독려할 정도였다.

ⓒ시사IN 한향란일반 시민도 구본홍씨의 YTN 사장 취임 반대 운동에 동참했다.
촛불 든 시민 오자 내부 분위기 고조돼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YTN 직원의 저항에 힘이 붙었다. 지금은 아무도 “YTN 직원이 저러다 말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차장단을 비롯해 공채 1기부터 10기까지 노조원이 성명서를 내고 낙하산 사장 임명을 규탄했다. 현덕수 전 비대위원장은 “이런 성명 발표는 노조라는 조직 뒤에서가 아니라 노조원이 직접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낸다는 면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차장단도 집단행동에 나섰다. 6월20일 차장단 74명은 “구본홍 사장 내정자가 물러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성명을 냈다. 현덕수 전 비대위원장은 “이제 총의는 모아진 셈이다. 간부진은 입장 표명을 하지 않거나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는 견해이지만 그건 간부라는 특수성 때문이라 본다. 투쟁의 동력은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현실론에 안주하려던 YTN의 내부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바로 시민의 촛불이었다. 이들은 ‘막둥이 YTN 지키미(cafe.daum.net/YTNYTN)’라는 인터넷 카페까지 만들어 적극 행동에 나섰다. ‘YTN 낙하산 저지’를 위해 국민이 매일 사옥 앞에서 든 촛불이 YTN 노조원에게 각성제가 되었다. 현 전 비대위원장은 “그분들이 YTN이 정말 좋아서 지켜주겠다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YTN이 정권의 시녀 방송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해서 온 것이다. 지지자인 동시에 감시자다. 그들의 모습에 내부 직원의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6월11일 공채 2기 60명이 ‘이제는 다함께 나서야 할 때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6월12일 공채 3기 20명도 성명을 냈다. 이후 공채 1기와 4기(6월19일), 공채 5기와 6기(6월20일), 공채 7~10기(6월23일)가 연이어 성명을 냈다. 공채 12기가 아직 수습이고 공채 11기가 입사 1년차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모든 공채 기수가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공채 기수가 움직이면서 노조 집행부의 사장 임명 저지 투쟁도 탄력을 받았다. 6월17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사옥 앞에서 정기 집회를 여는데 노조원과 시민이 어우러지면서 매회 참석자가 늘어난다. 6월9일부터 시작한 청와대 앞 1인 시위도 지원자가 많아 무기한 진행할 예정이다.

사장 임명 저지 투쟁에서는 특히 젊은 기자들이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이번 기회에 YTN 뉴스의 공정성 부분도 재점검하자고 주장한다.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YTN이 좀더 확실한 목소리를 내는 ‘내부 정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YTN 노조는 주주총회가 열리는 7월14일까지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총력 투쟁에 나설 예정이다. 그래서 국민 여론을 바탕으로 사장 임명 철회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현덕수 전 비대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소통이 부족했다고 국민에게 사과하면서도 언론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면 언론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사죄하고 다시 낙하산을 거두어가도록 투쟁하겠다”라고 말했다.

7월14일 주주총회에는 YTN 노조원들도 소액주주 자격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가진 주식 규모가 미미해 표 대결로는 뒤집을 수 없다. 노조는 물리적 충돌이 있더라도 주주총회를 저지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주주총회에서 밀리면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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