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을 계기로 ‘선별복지’ 담론이 고개를 드는 듯하다. 여론조사를 보면 ‘선별 급식’에 대한 지지도 상당하다. 한정된 교육예산 환경을 감안한 응답으로 해석된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이를 계기로 ‘보편복지’의 토대를 허물고 싶어 하지만, 이미 흐르기 시작한 보편복지 물결을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편복지의 핵심인 무상보육도 예산 책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지만 보육 비용을 사회가 책임진다는 공감대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는 보편-선별 논쟁을 반복하기보다 시민들이 복지국가를 상상할 수 있도록 논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 이미 시민들은 급식, 보육, 기초연금에서 나름 복지를 체험하면서 질문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복지가 지속 가능한지, 이를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대체 복지국가란 어떤 것인지. 향후 논의 활성화를 기대하며 몇 가지 복지국가의 미래상을 그려본다.

첫째, 재정 혁신은 최우선 과제다. 이는 재정 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라를 정상화하는 일이다. 제대로 세금을 거두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국가가 공적 주체로서 제자리에 서고, 시민들이 공동체 일원으로 자부심과 책임의식을 지니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보편복지 진영은 지출 구조 개혁에서 증세 정치까지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경제의 선순환에 기여하는 복지 확대

둘째, 보편주의를 기본 원리로 삼아야 한다. 예산이 부족하니 선별복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데 오히려 보편주의 노선이어야 재정 장벽도 넘을 수 있다. 부잣집 아이, 재벌 회장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이유는 시민 권리로서 복지를 자리매김하고 이를 근거로 상위 계층의 재정 책임을 이끌어내려는 데 있다. 선별복지가 ‘약한 복지-약한 재정’ 덫에 머무른다면, 보편복지는 권리로서 복지를 제공하고 의무로서 누진적 세금을 부과해 ‘강한 복지-강한 재정’을 구축할 수 있다.

셋째, 강한 복지가 경제도 키운다. 과거에는 복지가 제공되면 사람들이 일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정말 그럴까? 다수 시민들이 복지를 근로와 독립적인 권리로 여길수록 이러한 주장은 근거를 갖기 어렵다. 실제로 강한 복지국가일수록 시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생산성도 높다. 한국처럼 대외경제에 고스란히 노출된 나라에서는 복지의 경제 효과가 더욱 중요하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내수시장을 경제 동력으로 삼듯이, 복지 확대는 경제의 선순환에 기여한다. 과거 시장 만능주의의 시행착오가 우리에게 전해준 교훈이다.

넷째, 앞으로 세금 토대 복지가 강화돼야 한다. 우리나라 복지는 사회보험 중심체제이다. 현재 복지 지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사회보험은 보험료 납부를 조건으로 삼는 복지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문턱을 넘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당장 노동시장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면 노동복지 영역에서는 세금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공적연금에서 기초연금 몫을 확대하고, 불안정 노동계층에 사회보험료 지원을 늘리며, 청년과 영세 자영업자 등을 위한 사회수당 신설도 검토해야 한다.

다섯째, 고령화 시대에 조응하는 예방 복지국가여야 한다. 노후 기간이 늘어나니 연금 급여율과 의료비 지출 수준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아무리 복지국가라도 오랜 노후를 현금수당, 질병 치료 방식으로만 지탱하는 건 곤란하다. 인류에게 장수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노년 세대의 경제활동 확대가 관건이다. 또한 평안한 노후를 위해서는 현금 지급을 넘어 지역공동체의 의존망이 끈끈하게 형성돼야 하고, 사회 전체가 예방의료 체계로 재편돼야 한다. 예를 들어, 담배를 팔아서 거둔 세금으로 병원비를 지불하기보다는 애초 흡연을 자제하는 문화가 더 강력히 자리 잡아야 한다.

여섯째, 미래 세대와 공존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복지 수요가 늘어나므로 세대 간 재정 책임에서 형평성을 갖추려는 현 세대의 장기 안목이 요청된다. 공적연금의 수준을 기존대로 지키자면서 그 부담을 후세대에게 미루는 것은 적절치 않다. 심지어 후세대가 앞 세대가 미리 정한 권리를 그대로 존중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을 보면, 한쪽에서는 ‘지금 줄이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원망한다’고 하고, 또 한쪽은 ‘깎으면 청년세대의 노후도 불안해진다’고 비판한다. 이 상반된 주장은 더욱 우리에게 미래 세대와 진지하게 대면할 것을 요구한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