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12일, 진도 7.0의 강진이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를 덮쳤다. 아이티 정부에 따르면, 이 사고로 22만2517명이 숨을 거뒀고 30만명 넘게 다쳤다. 220만명은 그 자리에서 집을 잃었다. 사회 인프라도 엄청나게 파괴되었다. 정부기관은 대부분 무너졌고 교육시설 1300여 개와 의료시설 50여 개가 붕괴되었다. 이로 인한 피해액은 79억 달러(약 8조5000억원)로 2009년 국내총생산의 1.2배에 달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아이티를 지원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이후 60억 달러가 재건 기금으로 쓰였다.

당시 한국에서도 아이티를 향한 성금과 구호품이 답지했다. 대한적십자사는 2010년 1월14일∼3월31일 국민성금 96억7841만940원(물품 지원 1억4013만4561원 포함)을 모았다. 인류애와 연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명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아이티 성금 66억원이 정기예금에 잠자고 있다. 성금으로 ‘이자놀이’를 하고 있다”라고 폭로하면서 대한적십자사에 대한 불신이 촉발됐다. 강 의원은 국제적십자연맹에 지원한 6억7500만원과 의료비 지원 4억원을 제외하고는 아이티 주민에게 전달된 돈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대한적십자사 제공네팔에서 활동에 나선 대한적십자사 구호대.
대한적십자사는 “아이티 정부의 구호 역량이 취약하고 재난 현장이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서 90억원이 넘는 성금을 일시에 송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라고 해명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성금은 사업이 진행될 때마다 집행되기 때문에 66억원을 예금으로 관리한다고도 밝혔다.

당시 아이티는 정치가 불안정한 탓에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유엔 평화유지군과 미주 기구, 세계은행 등 여러 국제기구 담당자가 재건을 맡은 이유다. 대한적십자사 또한 국제적십자사연맹·아이티 적십자사, 유엔과 협력해 재건 복구사업을 실시했고, 당시 모아진 성금은 2012년까지 100% 아이티 재건을 위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한 번 각인된 불신 탓인지 이번에 대한적십자사가 네이버 기부 포털 해피빈에 올린 ‘네팔을 구해주세요’를 두고 성토가 줄을 이었다. ‘우리나라에 기부해도 저 나라에는 돈 안 갈 겁니다’ ‘횡령하지 말고 제 목적에 써주세요’ 하는 식이다. 대한적십자사의 네팔 지진 모금액은 4월30일 현재 유니세프,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월드비전 등 국제 NGO의 모금액과 비교해 절반 이하에 머물러 있다. 기부가 활성화되려면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사례다.

“재난 현장은 구호 요원 위한 교육 현장 아니다”

전문가들은 비극을 겪은 나라에 성금과 구호품을 낼 경우, 어디로 어떻게 전달되는지 꼼꼼하게 지켜보라고 조언한다. 또한 피해 지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단체에 지원하는 편이 좋다는 말도 덧붙인다. 세이브더칠드런의 게리샤이에 국장은 이번 네팔 지원과 관련해 “네팔에 지부가 없거나 네팔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는 단체가 새로 활동을 시작하면 긴급 구호가 아닌 준비 활동으로 비용이 낭비될 수 있다. 지진 같은 초대형 재난 현장은 구호 요원을 위한 교육 현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진이 아이티를 강타한 지 5년이 지난 현재, 아이티에서는 자주 끊기지만 전기가 들어오고 식수도 공급받는다. 부서진 건물 밑에는 시장이 들어서서 사람들이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민을 위한 난민촌은 여전히 도심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이티 정부의 부정부패와 재건 능력 부족 탓에 외부 기금이 앞장서고, 아이티 정부는 더욱 무기력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복구는 늦어지고 있다. 아이티만큼 네팔의 상황도 혼란스럽다. 전문가들은 열악한 지역을 복구할 경우 전보다 낫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야 2차, 3차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회성으로 관심이 그치는 순간, 재건 지역은 예전으로 돌아간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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